신립장군 묘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278
지정일 | 1986년 5월 7일 소재지 | 곤지암읍 곤지암리 산1-1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95호(보호구역 면적 : 8,813㎡)


신립(申砬, 1546∼1592)은 조선 선조 때의 무장으로, 북방에서 여진족 니탕개를 격퇴하고 계속되는 침입을 막아낸 용장이
지만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패하여 자결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이다.
선조가 즉위한 해인 1567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83년(선조 16) 니탕개를 격퇴한 후 계속되는 여진
족의 침입으로부터 6진을 지켜낸 공로로1584년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었고, 1590년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자 충청·전라·경상의 3도 순변사로 임명되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대결하였으나 싸움에서 크게 패하자 남한강에 투신자결하였다.
훗날영의정으로추증되었다.
묘의 봉분은 원형봉토분으로 부인 전주최씨와의 단분합장묘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로 동자석·망주석·문인석이 각 1쌍씩 두루 갖춰져 있다. 봉분 왼쪽에는
네모난 받침의 기대(基臺)에 비신(碑身)을 놓고 그 위에 지붕돌을 얹은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의 대리
석으로 된 묘갈이 있다. 지붕돌은 팔작지붕 형태로 지붕 부분에 용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용마루
양쪽 끝에 용구를 설치한 평산신씨 묘갈의 특징을 보여준다. 기대의 측면에는 당초문(唐草紋)이, 상부
모서리에는 연화문(썱花紋)이 장식되었다. 규모는 총높이 224㎝, 비신 높이 162㎝, 너비 47㎝, 두께 20
㎝이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신익상이 글씨를 써서 1703년(숙종 29)에 세운 것이다. 문인석은 관모와
관복을 갖춘 금관조복 양식으로 둔중한 인상을 주며, 높이 158㎝정도이다. 봉분 앞 높이 116㎝의 동자석
은 총각을 표현하였고, 높이 159㎝규모의 망주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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