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예로부터 경기도의 중앙에 위치하며 땅이 넓은 고을이라는 뜻에서 한자로 넓을 광(廣)자와 고을 주(州)자를 썼다고 한다.
한강은 우리나라의 중앙부를 횡으로 흐르는 큰 강으로 우리 민족이 상고시대부터 서로패권을 다투던 곳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한강 유역을 점거한 나라는 번성하고 빼앗긴 나라는 쇠퇴하였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선사시대는 몰라도 이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최초의 현상은 기자 조선의 마지막 군왕인 준왕(準王)이 위만에게 쫓기어 남하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는데 그가 한왕(韓王)이 되어 세운 회안국(淮安國)이니 지금의 경안 일대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경안리 장터에 회안교 다리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세천복개 공사를 하면서 없애버린 것이 참으로 아쉽게 생각된다. 그후 회안국을 토대로 백제가 일어났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국도(國都)를 BC 18년에 광주하남 이성산 위례성에 도읍을 세웠고 동왕 14년(BC 6) 한산(韓山) 아래 <고골일대>에 도읍을 옮기어 문주왕(文周王)이 고구려에 쫓기어 공주(公主)로 천도(遷都)하기까지 104년간 남한산성이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온조왕(溫祚王)으로부터 21대 개로왕 때까지 고골, 남한산성 등 우리 광주일원에서 493년간을 백제 (百濟)가 도읍한 역사의 고장이다.
도읍을 문주왕이 충남 공주로 천도함에 광주 일대는 고구려땅이 되었다. 백제 성왕 29년(AD551)에 실지(失地) 6개군을 회복하였으나 불과 2년 후에는 신라 진흥왕에게 빼앗겨 신라의 땅이 되었다. 신라 문무왕 3년(AD663)에 한산주(韓山州)로 명칭이 바뀌고 동왕 8년에 남한산주(南韓山州)로, 신라 경덕왕 15년(AD756)에 한주(韓州)라 칭하였고 지금의 광주(廣州)란 지명이 확정된 것은 고려 태조 23년(AD940)부터이다.
고려 성종2년(AD983)에 처음으로 12주에 목(牧)을 두었는데 그중의 하나로 광주목(廣州牧)이 되었고 동 14년(AD995)에 12절도사를 둘 때에 광주를 봉국군(奉國軍)절도사로 고쳐 관내도(關內道)에 소속 시켰다.
현종3년 절도사를 폐하여 안무사(按撫使)를 삼았고 동 9년 12목을 줄여 8목으로 고칠때에도 광주목은 그대로 남았다.
조선조 인조 원년(1623)에 유수제를 실시하였으며 인조4년(1626)에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주치(州治)를 성내로 옮기었고 동 8년(1630)에는 광주 부윤을 두었으며 당시에 군세는 23개면이 있었다.
1914년에는 광주군의 일부였던 의곡면, 왕륜면은 수원군에 편입되고 양평군에서 남종면이 편입되었다.
1917년 12월에 중부면 산성리에 있던 군청을 광주면 경안리로 옮겼다. 1963년 구천면, 중대면, 언주면과 대왕면이 서울시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성남시가 신설되어 중부면의 일부와 낙생면, 돌마면이 성남시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광주면이 광주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 동부면이 동부읍이 되고1989년 1월 하남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었고, 2001년 3월 광주시로 승격되어 현재 광주의 행정구역은 3동 1읍 6면이 되었다.
한산군(고구려) - 남한산(백제) - 한산주(신라 문무왕3년) - 남한산주(신라 문무왕8년) - 한주(신라 경덕왕15년) - 광주(고려 태조23년) - 광주목(고려 성종2년) - 광주부(조선조 선조10년) - 광주유수(조선조 인조 원년) - 광주군(1906년) - 광주시(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