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1리 동화놀이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322

 마을개관
선동리는 대한제국(大韓帝國)시대까지는 선장동(仙掌洞)과 하동막동(下東幕洞)으로 나누어져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었는데, 1914년 일제(日帝)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선장동(仙掌洞)의 '선'(仙)과 하동막동(下東幕洞)의 '동'(東)을 따서 '선동리'(仙東里)라고 이름 지었다.
이 마을은 108번 도로가 마을 앞으로 개설되어 교통이 좋아졌다. 늑현리에서 108번 도로를 따라 퇴촌 방면으로 고개를 넘으면 이 마을에 닿는다.
선동초등학교가 이곳에 있다.
남쪽으로는 초월읍 늑현리ㆍ실촌읍 신대리와 연접해 있다. 곤지암천을 건너가면 초월읍 산이리(酸梨里)와 대쌍령리가 연결된다.
인구는 100호 정도가 되며, 이 중 45호가 토박이다. 경주 김씨 집성촌으로 대다수의 토박이는 경주 김씨이다.

(2) 제의절차

① 동화의 제작과 형태

선동1리에서는 마을 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정월 열 나흗날 미리 동화를 세운다. 청년회 회원이 모두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화 제작에 필요한 나무는 틈틈이 준비해 놓았다가 동화를 만든다. 동화 제작에는 대개 싸리나무와 소나무 가지, 칡이 쓰인다. 칡은 동화를 묶는데 사용되는데, 이 마을에서는 동화를 칡으로 세 번 묶는다. 완성된 동화의 높이는 3m 정도가 되고, 폭은 1~2m이다. 아랫담의 빈 논에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동화는 소나무를 지지대로 하여 고정된다.
선동1리에서는 한해의 액을 모두 풀어버린다고 하여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동화놀이를 행해왔다. 본래 이 마을에서는 지금보다 규모가 큰 동화를 웃담과 아랫담에서 각각 세웠었다. 웃담과 아랫담에서 각각 동화놀이를 할 때에는 동화가 잘 묶여 더 늦게 전소되는 마을이 이기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때문에 승리를 위해 상대방 마을의 칡을 훔쳐 동화가 잘 묶이지 않도록 방해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각각의 동화가 1․4후퇴 이후 합쳐져 현재까지 두 개의 동화를 모두 아랫마을에서 세운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동화가 처음 합쳐진 해에는 할아버지 동화만 세웠으나, 동화를 홀아비로 놓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 다음해부터는 할머니 동화도 함께 세웠다.

② 제의과정

과거 선동1리 동화의 규모는 현재보다 훨씬 컸다. 그러나 약 50년 전 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동화놀이의 세가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농악, 길놀이도 했었으나 현재에는 하지 않는다. 
 
제관은 노인회에서 정월 초 회의를 통해 그 해에 부정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대개 부정은 출산 ․ 상 ․ 성관계에 관련되는데, 최근에는 과거보다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과거 제관은 흰 도포에 갓을 썼으나, 요즘에는 평상복을 하고 제의를 주관한다.

선동1리에서는 제물로 밤, 배, 곶감, 사과, 대추와 황태포, 산적, 무나물, 술을 올린다. 비교적 간소한 제물을 올리기 때문에 제물의 준비는 이장댁에서 모두 한다.


 달이 뜨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둔 액막이 깃발을 동화의 꼭대기에 건다. 마을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각각의 동화 앞에 제상을 차린다. 부정한 일이 있는 사람은 동화놀이의 준비부터 끝마침까지 참여를 할 수 없다.
달뜨기를 기다리며 마을 아이들은 준비해 온 다북나무에 불을 붙이고 이것을 위, 아래로 흔들면서 “달님~ 달님~”하며 소원을 빈다. 그리고 다북나무가 적당히 타면 이를 어른들이 동화에 던져 불을 붙인다. 이 때 불은 할머니 동화에서 할아버지 동화 순으로 불을 붙인다.


동화에 불이 붙으면 제의가 시작된다. 제주는 술잔을 3번 돌리고 3번 절을 한다. 마을 주민들도 동화와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제의가 모두 마치면 주민들이 음복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긴다.
선동1리에 축문은 따로 없다. 마을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양식이 있어 이를 본떠 액막이 깃발을 제작하기 때문에 그 내용과 모양은 매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에는 마을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 ‘중소기업 발전’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 액막이 깃발의 글씨는 모두 한문이며, 가운데에는 망월제라고 진하고 크게 적어놓았다. 그 왼쪽에는 대세기축, 국태민안, 중소기업 발전 등 바라는 바와 소망을 적어 놓았으며, 오른쪽에는 마을의 위치와 주민들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한다. 본래 김만기씨가 독축도 담당하셨으나 현재에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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