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1리 해동화놀이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379

이 마을은 섬처럼 생겼다하여 '섬뜰'이라고 불러 왔는데, 한자로 표기 하기를 '도평'(島坪)이라고 하였다.
조선조 말까지는 상도평(上島坪)ㆍ하도평(下島坪)으로 2개 마을이었으나,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개편하면서 두 마을을 합쳐 '도평리'(島坪里)로 하였다.
곤지암천이 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데, 마을을 휘돌아 흐르므로 마을의 형태가 마치 섬이 물 위에 있는 것처럼 보여 '섬뜰'이라고 불러왔다.
대쌍령리에서 동쪽으로 진입도로를 따라 1km 정도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마을 전체가 아파트촌으로 변하였으나 하도평은 아직도 농촌풍경이 남아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때 대쌍령리와 더불어 전투(戰鬪)가 치열하였던 곳으로, 현재까지도 마을에서 그때 전사(戰死)한 군졸(軍卒)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매년 음력 10월에 위령제(慰靈祭)를 마을 제사로 지내고 있다.

(2) 제의절차

① 동화의 제작과 형태

이 마을에서는 과거에 집집마다 정월 열 나흗날 깨끗한 나무를 정성껏 준비해 놓았다가 보름날 나무를 묶어세운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마을에서 작은 나무를 구하기 힘들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직장에 다녀 주말을 이용해서 나무를 하고, 동화를 세운다. 요즘은 동화에서 쓰이는 나무를 마을 사람 20여명이 트럭을 이용하여 신월1리에서 함께 해 온다.동화에는 대개 싸리나무와 진달래나무를 사용한다. 예부터 진달래나무를 해 오면 딸을 낳고, 싸리나무를 해 오면 아들을 낳는다고 여겨 나무를 가려 해 오기도 하였다.  
동화를 세울 때 나무를 새끼줄로 묶으면 줄이 금방 타서 나무가 흐트러지므로 칡으로 나무를 묶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칡을 구하기가 어려워 중간 중간 철사를 이용한다.

과거에는 동화를 윗당과 아랫당에 각각 하나씩 세웠다. 윗당에 세운 동화는 남자라고 여겨 신랑, 아랫당에 세운 동화는 여자라고 여겨 색시라고 불렀다. 그리고 윗당의 동화를 7번 묶으면 아랫당의 동화는 5번을 묶었다. 하지만 나무를 구하기가 힘들고, 일손이 부족해서 20여 년 전부터 하나로 줄여 하천변에서 실시하고 있다.  
한편 이 마을에서는 ‘화덕진군’이라고 한글로 쓴 깃발을 만들어 동화의 꼭대기에 꽂아 놓는다. 이 깃발은 정월대보름 날 낮에 이장댁에서 마을 이장이 만든다. 이때에 특별한 금기 는 없다. 집 주변에서 얇고 곧은 나뭇가지를 꺾어 깃대를 마련한다. 그리고 ‘화덕진군’이라고 크게 적은 글씨 아래 ‘경기도 광주시 도평1리 가가호호 화재예방차 화덕진군 소멸’이라는 문구를 작게 적은 창호지를 붙이면 깃발이 완성된다. 깃발의 크기는 규격화 되어 있지 않다.

② 제의과정

마을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예부터 태화산에는 화기가 있다고 하여 이 산이 보이는 지역에서는 모두 동화놀이를 해왔다. 때문에 태화산이 보이는 도평1리에서도 매년 정월보름이면 가가호호 나무를 해다 묶어 불을 피움으로써 화재를 예방하였다.
마을에서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국전쟁 중 마을에서 동화놀이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인근 동화를 세운 마을에서는 불이 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도평1리에서는 마을 한 복판에서 불이 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동화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여기고 이후로는 계속해서 동화를 세워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제물을 준비하여 제의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제관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상을 당하는 등의 부정한 일이 있는 집에서는 나무를 내 놓지 않고, 동화놀이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어기면 부정을 타서 해를 입는다고 여겼다.
달이 떠오르면 제방 위에서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홰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홰는 싸리나무 단을 나이만큼 매듭지은 것으로 대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준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른들도 홰를 들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홰에 불을 붙이는 것은 도미노 식으로 진행되는데, 먼저 홰에 불을 붙인 사람이 옆 사람의 홰에 불을 옮겨 붙이는 방식이다. 그렇게 홰에 불이 붙으면 홰를 위, 아래로 흔들며 ‘하늘보고 절해라. 달님보고 절하고’라고 말한 다음 한 해 소망을 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홰가 탔을 때 홰를 동화에 던져 동화에 불을 붙인다.


과거에는 동화에 불을 붙이면 결혼 못 한 사람은 결혼하고, 아이 못 낳은 사람은 아이를 낳는다고 하여 앞 다투어 불을 붙였다. 그리고 타던 동화가 쓰러질 때는 마을 바깥쪽으로 쓰러져야 일 년 동안 마을에 화재가 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때문에 동화가 쓰러질 즈음에는 마을 청년들이 동화를 의도적으로 마을 바깥을 향하도록 쓰러뜨리기도 한다.


보름날 새벽에 마을 부녀자들은 개인적으로 동화가 세워진 하천에서 용왕님께 치성을 드린다. 식구 수대로 밥을 떠다 짚어다 넣고 물에 넣으며 “용의 알 들어갑니다.”라고 하며 소원을 빈다. 이 때 집에 소가 있으면 소의 몫까지도 밥을 떠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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