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당리 지신밟기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517

(1) 마을개관.

조선시대에는 불당동(佛堂洞)으로 불렀다. 옛날부터 윗말 123번지에 불당(佛堂)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지금도 주춧돌과 기와편이 있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에 '불당리'(佛堂里)라고 하였다. 인근에서는 불당리 마을을 '불당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큰말ㆍ웃말ㆍ아랫말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오래전부터 세거하여 오고 있으며, 밀양 박씨(密陽 朴氏)들도 세거하여 오고 있다.
오전리에서 308번 도로를 타고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면서 좌측으로 남한산성에서 흘러내려오는 번천 상류 하천을 건너면 이 마을이 나온다. 산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오지(奧地)에 속하는 마을이다. 이 마을 다음으로 검복리(黔伏里)와 접해 있다.

(2) 제의절차

① 달집의 제작과 형태

달집은 마을 회관 앞 빈 논에 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만든다.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짚과 억새풀을 쌓는데, 그 높이가 약 7m이다. 달집의 둘레에는 새끼줄을 감고 거기에 소지를 매단다. 달집의 앞쪽 중앙에는 ‘소원성취’리고 적힌 연을 붙여 놓았다.

② 제의과정

과거 이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이면 떠오르는 달을 보며 나이 수만큼 매듭을 묶은 짚단에 불을 붙여 위 아래로 흔들면서 “달님, 달님 ~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며 한해의 무사 안녕과 가족평안을 빌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풍속을 ‘달님한테 절한다’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에는 이러한 정월보름 풍속이 단절되었다가 3년 전인 2007년부터 지신밟기 행사를 하고 있다. 마을에서 지신밟기 행사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5년 전 마을에 들어 온 권재형씨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성남에서 산도깨비라는 단체를 운영하는 그는 마을에 정월대보름 행사를 부활시킬 것을 제안하였고, 성남지역의 여러 풍물 단체와 연합하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불당리 지신밟기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달집태우기는 해가 질 무렵 시작한다. 점화에 앞서 고사를 지내기 위해 달집 앞에 제상을 차린다. 제상에는 통북어를 양쪽 손잡이에 꽂은 팥 시루떡과 사과, 배, 막걸리가 올라간다. 제물 진설이 끝나면 제상 양쪽에 세워 둔 초를 켜고 제의가 시작된다.

마을 이장이 술을 올린 후 축문을 읽고 재배 한다. 이 마을에서 제관을 특별히 선정하지 않고, 이장이 제관과 축관을 모두 담당한다. 뒤이어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시루에 돈을 놓고 절을 하며 각자 소원을 빈다. 이렇게 제의가 끝나면 떡과 막걸리를 나눠 먹으며 참석자 모두가 음복을 한다.
음복을 마치고 철상 한 후 달집 앞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줄다리기가 정리되면 달집에 불을 붙인다. 이 때 점화는 행사장 옆 언덕에서 달집까지 연결된 점화선에 이장이 불을 붙이고, 점화선을 타고 올라간 불이 점화공에 옮아 붙어 달집으로 날아가면서 이루어진다.
달집에 불이 붙음과 동시에 풍물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한바탕 어울려 노는 것으로 지신밟기 행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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