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동1리 해동화놀이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516

 마을개관
쌍동리(雙東里)는 조선조(朝鮮朝)말까지 소쌍령리(小雙嶺里)와 동산리(東山里)로 나누어 있었으나,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 개편하면서 소쌍령(小雙嶺)과 동산(東山)을 합쳐 쌍동리(雙東里)로 하였다. 소쌍령은 '오리나무쌍령' 이라고도 하는데, 초월읍의 대쌍령리로부터 3번 국도를 따라 곤지암 방면으로 작은 고개를 넘어서서 우측으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동산은 소쌍령에서 곤지암 방면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속칭 '도-골'이라는 마을이다. 쌍동리의 중심마을이다. 이 마을에 도곡초등학교가 있다. 전주 이씨의 세거 마을인 둔전말이 소쌍령과 동산 사이에 있다.
광주시에는 쌍령이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마을이 세 곳이 있다. 즉 경안동(전 廣州邑)의 쌍령동(雙嶺洞)이 있고, 초월읍(草月邑)의 대쌍령리(大雙嶺里)와 소쌍령(小雙嶺)마을이 그것이다.
쌍령이란 령(嶺)이 나란히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경안동의 쌍령동에서 고개를 넘어 오면서 영(嶺)이 있고, 대쌍령리를 지나면 바로 또 작은 영(嶺)이 있어 '쌍령'(雙嶺)이라고 부른다.
쌍동리는 광주시청에서 3번 국도를 따라 곤지암 방면으로 약 6km 거리에 있으며, 초월읍소재지인 대쌍령리를 북쪽으로, 초월읍 산이리(酸梨里)를 남쪽으로 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백마산을 넘으면 오포읍의 양벌리가 된다. 동쪽으로는 곤지암천을 경계로 초월읍 용수리(龍水里)가 된다.

(2) 제의절차

① 동화의 제작과 형태

동화는 11~12미터 정도의 길이에 빗자루모양을 하고 있다. 나무와 억새풀 등을 모아 큰 기둥을 세우고 칡넝쿨로 둘레를 묶은 형태의 동화는 33마디로 되어 있다. 이는 하늘의 33천을 본따 33마디를 묶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해 부터인가 한해에 두 마디씩 늘려 갔던 것이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되자 33마디로 고정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동화를 묶는 작업은 2월6일부터 실시했으며, 크레인 등의 장비가 있어 손으로 할 때 보다 훨씬 용이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70여 년 전에는 쌍동리 전체를 가로지르는 하천변을 사이로 앞마을과 건넛마을이 따로 동화를 태웠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 어귀의 적당한 공터를 찾아서 동화를 세운다.
② 제의과정

쌍동1리의 동화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양천 허씨들이 이 마을에 들어와서 살았던 때부터 세우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
수백 년 동안 이루어진 쌍동리의 동화놀이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사업으로 중단되었다가 1990년경 마을 어르신의 건의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 후 10여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매해 거르지 않고 이 행사가 지속되었으며 10년 전 부터는 동화 주위에 폭죽을 설치, 이벤트성을 강조하고 있다다.
제관은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장이 담당한다.
제의에 필요한 비용은 광주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충당한다. 제물은 돼지머리와 시루떡, 북어, 배, 감, 사과를 올리고, 제주로는 막걸리를 사용한다.
제물 진설이 끝나면 제관이 분향재배한 후 축관이 독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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