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3리 해동화놀이와 산신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526

마을개관

신월3리를 개척한 성씨는 인동 장씨로, 21대째 인동장씨 집성촌을 유지해오고 있다. 현재 옥산부원군파 종가가 마을에 있으며, 인접한 마을인 선동2리에는 대종가가 있다. 집성촌답게 마을 뒤편의 무갑산 자락에는 당시의 시조 때부터 현재까지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현재 180여명 30여 가구가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주생업은 농업으로 과거에는 논농사와 밭농사의 비율이 비슷하였으나 현재는 논농사의 비중이 줄어든 현실이다. 주로 버섯과 상추 같은 특용작물의 재배가 많다.
신월3리는 숯골이라는 하나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마을로 과거부터 독자적으로 고유의 산제사와 해동화놀이를 하고 있다.

(2) 제의절차

① 동화의 제작과 형태

동화는 미리 모아 놓은 싸리가지로 높이 약 2.5m, 너비 3m의 크기로 마을 청장년들이 직접 힘으로 세운다. 일단 동화를 세우면 지지할 수 있는 두꺼운 나뭇가지를 열 개 정도 받친다. 이 후 얇은 나뭇가지로 묶어 고정을 시키면 동화세우기가 끝난다.


이 마을에서는 동화를 두 개 세우는데, 각각은 음양을 상징한다. 양쪽으로 세워진 동화의 꼭대기에는 액을 상징하는 두 개의 기가 달려 있다. 각각의 기는 동시에 달을 상징하므로 연 윗부분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원이 그려져 있다. 두 원의 색이 다른 것에 대해 붉은 색이 보름달이고 푸른색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각각이 태양과 달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존재하기도 한다. 두 연에는 마을의 안녕과 관련된 내용을 적지만 예전에는 ‘멸공통일’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내용이 적히기도 하였다. 연>


역 피라미드 모양으로 세워진 동화에는 칡넝쿨을 감아놓았는데 그 수는 12개다. 이는 신월3리의 가구 수를 뜻하는 줄로써 양 동화에 감겨져 있는 동화의 수가 정확히 마을에 있는 24가구를 표현하고 있다. 요컨대 해동화놀이는 신월 3리 모든 주민의 액막이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북은 마치 동화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모습인데, 해동화놀이가 시작되면 다북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면서 둥글게 돌리다가 동화를 향해 던진다. 다북은 동화와 마찬가지로 칡넝쿨로 감겨있다. 그러나 동화와는 달리 이 칡넝쿨은 그 집안 아이들의 나이 수만큼 감는다. 왜냐하면 동화가 마을의 복을 상징하는 반면 다북은 가정의 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만드는 날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개인적으로 만들어서 집에 보관한다.

 

② 제의과정

이 마을에서는 해동화놀이에서는 특별한 제의를 행하지 않고, 산신제를 지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근래에는 7시를 달이 뜨는 시간으로 간주하여 행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주민들 중 한 명이 산으로 올라가서 달이 뜨는 것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러 이를 알렸다. 이렇게 신호를 받고나서야 놀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놀이에 늦게 참석하는 불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달을 보고 소원을 빌기 위해 서로 올라가려 했다고 한다.

 

③ 산신제

신월3리 사람들은 산신제를 지내는 터를 ‘산신 제당’이라고 부르며 신성하게 여긴다. 과거 산신제당은 평평한 땅에 양 옆으로 돌탑이 있는 형태였으나, 10여 년 전에 돌탑이 유실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보자 장기전(남, 47세,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신월3리, 이장), 2009년 2월 9일 조사.
 돌탑을 부르는 특별한 명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이 마을에서는 두 개의 탑 사이에서 하나의 상을 차려놓고 산신제를 지낸다. 특별한 신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갑산을 바라보며 제를 올린다.


신격은 무갑산 산신으로 남신이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를 무갑산 산신제라고 일컫는다. 산신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지내고 있다. 하지만 과거 소를 제물로 쓸 때는 격년제로 지내기도 하였다.2~3년 전까지는 밤 10시에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제물을 나누고 식사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찍 지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제물을 나누다 보면 12시 넘어서 끝나기도 했는데, 소에서 돼지로 바뀐 이후에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시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해마다 변경된다.
 
지금까지 마을에서는 초상 등의 부정한 일로 인해 산신제를 거른 적이 없다. 또한 산신제를 지낸 후,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제사를 다시 지낸 적도 없다. 간혹 벼락이 떨어지거나, 마을 사람의 다리가 부러지면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여겼다.

제관은 당주 역할을 하는 소임 한 명과 소임을 도와주는 겉소임 3명을 음력 2월 7일에 마을회관에서 마을의 어른들이 생년월일로 생기 복덕을 따져서 뽑는다. 소임은 산신제에서 당주의 역할을 하고, 겉소임은 돼지를 잡거나, 제물을 사오는 등 제물 준비를 돕는다. 소임이 결정되면 소임은 집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놓는 것이 원칙이지만, 산신제의 절차가 간략해지면서 현재는 집에 황토만 부어놓을 뿐이다.
소임은 당주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때문에 부부관계, 술, 담배, 바깥출입을 금하고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를 한다. 과거에는 마을의 개울에서 얼음을 깨고 찬물로 목욕을 하였지만 지금은 집에서 따뜻한 물로 하고 있다. 소임의 가족들 또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특별한 일이 아닐 경우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게 하고, 아플 경우 약도 먹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소임이 부정한 것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겉소임을 두어서 심부름을 맡게 하는 것이다.

산신제에는 소임과 겉소임만이 참여한다. 이들은 산신제 때 마을회관에 보관 중인 도포와 두건을 입는다. 소임이나 겉소임에게 수고비는 없다.
신월3리는 현재 광주문화원에서 100만원을 지원받아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과거에는 산신제에 들어간 비용 전체를 거주하는 가구 수로 나눠서 각출하였는데, 결산은 산신제 하루 뒤인 정월 보름에 실시하였다. 광주문화원에서 받은 100만원은 산신제를 지내는 데에 부족하지는 않지만 모자라는 부분이 있을 경우 마을에서 부족한 비용을 충당한다. 제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제물인 소를 장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소 한 마리 가격이 35원 할 때는 각 가구당 각출이 쌀 한 말 이상이었다고 한다. 소 가격이 부담이 되어서 격년제로 바뀌었다가, 돼지를 쓰게 되면서부터 다시 매년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산신제에 올리는 제물은 돼지고기, 밤, 대추, 곶감, 포, 북어, 탕, 조라술(잔 하나) 등이다. 제물을 구입하는 것은 겉소임의 임무이다. 주로 광주시장을 이용해서 제물을 구입하는데 옛날에는 마차 다닐 길도 없어서 지게를 지고 다녔다. 예전에는 모든 제물을 직접 만들었으나 현재는 구입하고 있다. 떡은 방앗간에서 백설기를 시루 째로 쪄서 오고, 소임집에서 누룩을 이용하여 담그던 조라술은 시중에서 파는 정종을 구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소임집에서 만드는 것은 나물과 식혜가 전부이다. 이렇게 구입하고 만든 제물은 소임집에서 산신제날까지 보관한다.

산신제에 쓰이는 제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제육이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소한마리를 사다가 마을의 산골짜기에서 직접 도축을 했다. 소를 못 잡던 시절에는 밤에 몰래 가서 소를 잡았는데, 이것을 담당하는 것도 역시 겉소임이다. 겉소임이 도축한 소는 마을의 큰 느티나무에 걸어놓는데 이것은 산신제의 제상에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마을운동 전까지는 소를 잡던 것이 비용의 문제로 돼지로 바뀌었다.
제물에 대한 금기는 생선 같은 비린 음식과 개고기를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예전부터 메와 지짐이(부침개)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제물은 제일 4일전인 음력 2월 10에 구입하여야 한다.
제물을 담는 제기는 산신제 때에만 것으로 마을회관에서 보관한다. 제일이 되면 겉소임들이 제물과 함께 소임집에 가져다준다.
이렇게 산신제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제의 시간이 되면 겉소임 중 한 명은 산신제터를 지키고, 둘은 소임집에 가서 제물과 기타 물품을 산신제터로 운반한다. 제물이 운반되면 제물을 진설한다. 소임이 잔을 올리고 두 번 절을 한다. 강신 재배한다. 절하고 다시 절한다. 축문을 하고 마지막 절을 한 후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신령님에게 먼저 올린 후, 대동소지, 개인소지 순으로 올린다. 대동소지는 소임이 ‘연간 대동 모든 주민들이 연간 편안하고 안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올라와서 개인 소지를 올린다. 제사가 끝났다는 것은 겉소임이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종을 쳐서 알렸다. 지금은 방송을 통해서 알린다.
소지 올리는 것이 끝나면 음복을 하고 제물을 거둬서 마을회관으로 내려온다. 과거에는 소임집으로 내려가서 제물을 분배하였다. 소임집에서 불을 피워놓고 나눠먹고 술 먹고 음복한다. 고기의 분배는 정해진 규칙은 없고 제사가 끝난 뒤이기 때문에 아무나 해도 된다. 대개 고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맡게 된다. 예전에는 돈 때문에 소고기를 판적도 있다. 제물로 올린 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좋다고 해서 비교적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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