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 김윤경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1259
한결김윤경(�允經, 1894. 6. 9.~1969.2. 3)은 광주(廣州)에서 태어난 국어학자다. 김윤경의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한결. 1894년 6월 9일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고
잠리(高岑里) 3통 1호에서 아버지 김정민(金正民)과 어머니 밀양 박씨(密陽朴氏)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 때부터 사숙(私塾)에서『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
蒙先習)』등을 읽으며 한문 공부를 시작했는데 어려서부터 당찬 고집도 있어서 스승의 말씀이 시원치 않으면 대들기도 했다고 한다.
 김윤경은 조선어의 우수성을 선각(先覺)하여 조선어를 공부하고 조선어학[이하 국어학]의 기초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조선문자급어학사』는 김윤경의 여러 저술 중 가장 대표적인 연구 저작물이며, 우리나라 국어학사에 무척 중요한 자료다. 한글로 풀어서 쓰면『조선 문자와 어학사』이다 김윤경의 저작물 중에서도『조선문자급어학사』는 우리 국어학에 대한 상고(詳考) 논저(�著)가 없을 때에 우리 국어의 계통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밝혔다. 훈민정음(訓
民正音)의 역사적 연원(淵源)을 고구(考究)한 논문이라는 점에서 그 때까지 어떤 학자도 이 같은 저서를 낸 이는 없었고, 지금까지도 한국어 전공자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할
명저다.
『조선문자급어학사』초판은 서기 1938년 1월 25일에 발간되었고, 그 3일 후인 1월 28일에 재판본이 간행되었다. 초판이 간행 된지 불과 3일 만에 재판본이 간행된 것은
당시 선생이‘동우회 사건’으로 영어(�圄)의 몸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조선문자급어학사』는 언어를 계통적(系統的) 분류와 형태적(形態的) 분류로 나누어 그 특징들을 설명하였다. 김윤경이 명시(明示)한 계통적 분류는 ①인도∙게르만 어족(語族) ②함∙셈 어족 ③우랄∙알타이 어족 ④인도∙지나(支那) 어족 ⑤말레이∙
폴리네시아 어족 ⑥빤투 어족 ⑦뜨라비다 어족 ⑧아메리카 어족 등인데 이를 다시 세분하여 각 언어의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김윤경은 조선 민족의 자주성을 이 책의 저술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단군 조선의 실재(實在)와 문자의 사용을 비롯하여 부여(扶餘)∙고구려∙백제∙신라
등에도 전해지는 고전(古篆)이 있었을 것이라는 개연성(蓋然性)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단군 조선의 실재를 역사로 받아들인 것은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학자가 일제의
‘단군 조선의 신화화(神話化)’에 경도(傾倒)되어‘단군 신화’라고 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켜가려는 자주성의 발로(發露)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김윤경은 우리나라 전적(典籍)은 물론 중국의 고대 전적 기록을 일일이 조사하여 자기 학설의 타당성을 전개하였다. 단군 조선의‘신지(神誌) 비사문( 詞文)’, 부여의‘왕문(王文) 문(文)’신라의‘각목(刻木) 문(文)’‘고구려 문자’‘백제 문자’‘향찰(鄕札)’‘발해 문자’‘고려 문자(이두와 구결)’등의 전거(典據)를 일일이 명시하며 설명하였다. 그는 중국 기록이 이치에 닿지 않을 때는 다른 전거를 들어 이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등 한민족의 자주적 관점에서 시종여일(始終如一) 하였다.
훈민정음 창제(創制)의 배경과 특징, 창제 후의 사용과 연구 기록들을 자료 중심으로 논술하면서 근대의 국문 연구와 현대의 국어 사용에 관해서까지 국어사와 국어학
사 전반에 걸쳐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집성(集成)하였다.
『조선문자급어학사」는 1928년에 입교대학 졸업 논문인「조선(朝鮮) 문자(文字)의 역사적(�史的) 고찰(考察)」을 쓴 후에도 꾸준히 자료를 수집하고 수정 보완을 거쳐
10년 만에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의 첫 번째 간행물로 출판된 역저(�著)였던 것이다.
김윤경은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動亂)을 겪으며 격동의 시대를 몸으로 맞서며 살았다. 그 시대에 살았던 모두가 그렇겠지만 그의 일생도 고난과
울분을 삭이며 살아야 했던 파란(波瀾)의 생애였다.
김윤경이 일제에 처음 쫓기게 된 것은 3∙1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일이었다. 이때 그는 연희전문학교 학생이었는데 일본 경찰에 쫓겨 일 년간 고향으로 피신해 있어
야 했다. 이로 인해 그는 4년 과정을 5년 만에 졸업하게 된다.
두 번째 겪은 수난은‘수양동지회(收養同志會) 사건’이었다. 수양동지회는 독립계몽 운동을 목적하고 결성되었으나 그 의도를 일본 경찰이 눈치 채어 1937년 6월부터
1938년 3월에 걸쳐 이광수(�光洙), 김윤경(�允經), 주요한(朱耀翰) 등 181명이 피검(被檢)된 사건이다. 여러 사건 중에서도 김윤경이 겪은 가장 큰 고초는‘조선어학회사건(朝鮮語學會事件)’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기록과 연구 업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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