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6 조회 : 1173
허난설헌의 가계>
허난설헌(許�雪軒, 1563~1589)의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유고집『난설헌집(�雪軒集)』
이 있다.
양천 허문(陽川許門)은 고려와 조선조를 통해 정승(政丞) 16인, 중추원사(中樞院使)6인, 학사(學士) 9인, 호당(湖當)과 청백리(淸白吏) 각 6인, 공신 9인, 봉군(封君) 36인
등을 비롯하여 많은 훌륭한 인물을 배출했다. 형제 정승에다 청백리로 이름난 충정공(忠貞公) 허종(許宗)과 문정공(文貞公) 허침(許琛), 대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초당공(草
堂公) 허엽(許曄)과 허성(許筬), 허봉(許 ), 허균(許筠), 허난설헌(許�雪軒), 불멸의 명저『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편찬한 동방의 의성(醫聖) 양평군(陽平君) 허준(許俊),
높은 학문으로 정승에 오른 부훤당(負暄堂) 허욱(許頊)과 묵재공(默齋公) 허적(許積) 그리고 학문과 문장, 서예에 뛰어나고 유림으로부터 청의의 사범 도덕군자로 숭앙받
는 문정공(文正公) 허목(許穆) 등은 모두 허씨 문중을 빛낸 공암의 후손들이다.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1517년(중종 12)~1580년(선조 13) 때의 인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조로부터 20세손이다. 자는 대휘(大輝). 호는 초당(草堂). 시호는 문
간(文簡)이다. 허엽은 화담 서경덕(徐敬德)과 퇴계 이황의 제자였으며, 청렴결백한 대학자로 정3품인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까지 올랐다. 경상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동서분당 때 동인(東人)의 영수가 된 인물이다. 청백리에 등록되었고,개성 화곡서원(花谷書院)에 배향되었다.
허난설헌보다 15세 위였던 큰오빠 허성(許筬, 1548~1612)은 이조∙병조 판서까지 지냈고, 작은오빠 허봉(許 , 1551~1588)은 강직한 성격으로 임금에게 직언하기를 두
려워하지 않았던 학자로 이조 판서와 홍문관 전한(典翰)을 지냈다. 허난설헌보다 12세 위로 천재적 재능을 지닌 문장가였으며 난설헌에게 많은 문학적 가르침을 주었다.
동생 허균(許筠, 1569~1618)은 허난설헌보다 여섯 살 아래로 형조∙예조 판서를 지냈다. 매우 총명하고 지식이 막힘이 없었으며 개혁 의식이 뚜렷했다. 허균은 봉건적 사
회제도의 개혁을 부르짖은 소설『홍길동전(洪吉童傳)』의 작자이며, 후일 혁명을 준비하다 역적의 누명을 쓰고 50세에 처형당했다.
허씨 5문장으로 알려진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당대를 주름잡던 뛰어난 문장가였다. 허엽, 허성, 허봉, 허
균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수정산 기슭에 모여 있고 허난설헌만 남편 김성립과 합장되지 못한 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그의 두 아들과 나란히 묻혀있다. 1986
년 9월, 경기도 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되었다.

<허난설헌의 생애>
허난설헌은 1563년(명종 18)에 태어나서 15세에 안동 김씨 김성립(�誠立)과 결혼하여 살다가 1589년(선조 22) 3월 19일, 27세로 사망했다. 27년의 짧은 생애에 213수의 한시를 남겼으며, 동생 허균의 도움으로 사후 조선조 최초의 여성시집『난설헌 집』을 남기게 되었다. 동양 3국의 최고 여류시인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명성을 얻었다. 허난설헌은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천품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엔 동생 허균과 함께 이달(�達)에게서 글을 배웠는데, 8세에「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초희라는 이름을 장성해서까지 사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허균의『학산초담(鶴山樵談)』에“난설, 이름은 초희이며 자는 경번”이라고 기록되었다. ‘희’는 쌀 2,000석의 봉록을 받는 관직명이기도 한 걸로 보아 여성 관직을 동경해서 지었다고 보는 설이 있다. ‘경번’이라는 자는 허난설헌 자신이 중국에서 예부터 전해져온 여선(�仙)인 번부인(樊夫人)을 사모하여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난설헌이라는 호의 유래는 직접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고 다만 난초(�)의 이미지와 눈(雪)의 이미지에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속세를 떠나 신선(神仙)의 세계로 가고자 한 시「유선시(遊仙
詩)」,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와 여성적인 섬세한 감각으로 자아낸 시「추
천가( 韆歌)」,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견흥(遣興)」등이 있다. 그녀의 작품
일부를 허균이 명(明)나라의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난설헌집(�雪
軒集)』이 간행됨으로써 격찬을 받았고, 1711년(숙종 37)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야 지
로[文台屋次郞]에 의해 간행되어 널리 애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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