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정씨소평공파 종중 묘역 및 석물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236
지정일 | 2013년 10월 15일 소재지 | 장지동 산64-1
지정사항 | 광주시 기념물 제10호


동래정씨소평공파(東萊鄭氏昭平公派) 종중 묘역은 소평공 정광세(1457∼1514)와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정충량(1480∼1523) 부자를 위시하여 모두 7대(代)에 결
친종중의묘역이다.
정광세는 1479년(성종 10)에 승사랑으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홍문관부수찬·사간원 정언·헌납(獻納)·사헌부 장령(掌쎂) 등을 거쳐 시강원보덕으로 서
연관(書筵官)이 되어 대가(代加)를 받자 3품관으로 승진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개성유수를 거쳐 형조참판을 지냈으며, 강원도관찰사·안주선위사를 거쳐 중종대에 형조판서·평안도관찰사·지중추부사·공조판서·경기관찰사등을지냈다.
정충량은 1501년(연산군 7) 생원·진사시를 거쳐 150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에 임용된 뒤 대교를 거쳐 1507년(중종 2) 봉교가 되었다. 이때 동료 김흠조(金欽祖)와 함께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사람의 신원(伸寃)과 사관(史官)의 직필(直筆)을 보장해줄 것을 주청하기도 하였다. 전적·헌납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으나, 사헌부·사간원으로부터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탄핵을 받아 곧 이조참의로 옮겼다. 기묘사화가 일어나 대간의 탄핵으로 공조참의로 논척을 받아파직된 후 벼슬에서 쫓겨나 있다가 죽었다. 광주 장지동 동래정씨의 입향조이다.
장지동 산64-1번지에 위치한 동래정씨 소평공파 묘역은 원래 김포 통진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장되었고 원래의 문인석도 옮겨왔다. 정광세 묘의 문인석은 중종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16세기 초반의 문인석이 많지않은 상황이므로 보존가치가 높은 자료로 평가된다.
정충량 묘에는 묘갈 2기와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다. 처음 세워진 묘갈은 하얀 대리석을 사용하여 비문의 상태가 불량하지만 김안국이 비문을 짓고, 당대의 명필이었던 김희수가 글씨를 썼다. 운룡문을 조각한 이수의 조각이 우수하여 석비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비석의 전액은“정공신도묘갈(鄭公神道墓碣)”이라 하여 신도비와 묘갈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비석의 마모가 심해지자 광주의 대표적인 학자인 순암 안정복의 도움으로 1776년(영조 52) 방부개석 양식의 비석을 다시 만들어 나란히 세웠다. 정충량 묘의 문인석은 금관조복 양식으로 1776년 묘갈을 다시 세울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석인(石人) 역시 흔치 않은 것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정충량 묘 밑으로 배치된 정수후, 정인수, 전주이씨, 정사민, 정홍보, 정공원 등의 묘에도 조선 중기 이후에 제작된 문인석을 1쌍씩 세웠고, 방부하엽 양식의 묘표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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