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 묘역 및 신도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219
지정일 | 2011년 7월 26일 소재지 | 초월읍 신월리 산22-1, 산22-2
지정사항 | 광주시 기념물 제9호


여성제(싛聖齊, 1625∼1691)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희천(希天), 호는 운포(雲浦),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할아버지는 관찰사 여우길(呂祐吉), 아버지는 부사 여이량(呂爾싒), 어머니는 영돈령부사 한준겸(韓浚謙)의딸이다. 참판여이징(呂爾徵)의 양자가 되었다.1650년(효종 1)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1654년 가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된 후 여러관직을 거쳐 1689년(숙종 15) 좌의정이 되고 이어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제 묘역은 남종면 수청1리 마을 뒷산에 위치하며, 주변 일대에 함양여씨 묘역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봉분은 원형 봉토분으로 주변의 사산(四山)이 확실한 명당터이다.
봉분 앞에는 계체석이 봉분의 지름 정도 길이로 놓여 있다. 봉분 앞으로 혼유석·상석·향로석·장명등이 차례로 있고, 좌우로는 망주석·동자석·문인석 각 1쌍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표가 좌측에 세워져 있다. 혼유석은봉분과맞닿아있고, 상석이바로연접해있다. 상석은계체석과 2개의고석으로받쳤는데,근래에 고석이 교체되었다. 상석 전면에‘領議政呂公床石’이라 주인을 새겼다. 4각으로 된 장명등은 4면으로 화창(火窓)을 내었고, 지붕돌은 4모 합작지붕 형태이나 파손된 상태이다. 8각의 망주석 몸체에는
세호가 조각되어 있는데 좌측은 올라가는 모습이고, 우측은 내려가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동자석은 소매와 허리띠, 옷주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문인석은 금관조복형태로 금관이 과장되게 표현되었으며, 얼굴과 홀이 붙어 있다. 묘표는 사각 받침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방부개석 형태로, 비문은 외손자인 황해도관찰사 오명준(吳命峻)이기(記)하고, 친손자인 사간원 정언 여광주(呂光周)가 글씨를 썼다. 신도비(神道碑)는 1704년(숙종 30)에 묘역 입구에 세웠으나 현재는 가옥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태이다. 비석은사각의 받침대에 비신을 세우고 상단에 이무기가 조각된 방부이수형태로, 거의 4m에달하여 장중한 느낌을 준다. 받침인 대석에는 4면에 연화문을 돌리고 상단에 복련을 시문하였다. 이수는 쌍룡쟁주(雙쐋爭珠) 형태로 구름에 둘러싸인 천상 세계에서 이무기가 여의주를 놓고 다른 이무기와 다투다가 여의주를 잡은 형상으로 발톱은 5개로 표현되었다. 비신은 청색이 도는 오석으로 비문은 남구만이 짓고, 유상운이 글씨를 썼으며, 전서는 생전에 여성제가 남긴 글씨 가운데서 집자하여 모사하였다. 이수와 방부에서 당대 최고 수준의 조각 솜씨를 확인할 수 있으며, 비문의 상태도 양호하게 남아 있어 조각사와 서예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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