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흔남 묘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108
지정일 | 2008년 4월 21일 소재지 | 중부면 산성리 124-1
지정사항 | 광주시 기념물 제6호


서흔남(徐欣南, ?~1667)은 광주에 살던 사노(私奴)로,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온 후 청군에 포위되자 외부와의 연락을 위해 자원하여 승려 두청(斗淸)과 함께 성 밖의 도원수 김자점(金自點), 황해병사 이석달(쐥碩達), 전라감사 이시방(쐥時昉)의 장계를 성 안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서흔남은 적진도 정확하게 정탐하였는데, 택당 이식(李植)도 그를 통해 가족들이 피난했던 지역이 청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서흔남은 훗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면천되고 관직을 제수받았다. 숙종과 정조도 그의 공을 기려 후손을 등용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그의 행적은『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중정남한지』를 비롯한 각종 문집에 실려 있다.
비석은 2기가 있는데, 하나는 1667년(현종 8) 3월 13일에 건립한 것으 로앞면에‘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徐公之墓’라 하여 비석의 주인이 누구인지 적고, 뒷면에는‘康熙六샳丁未三月十三日쒩’이라 하여 건립 시기를 적었다. 다른 하나는 절단되어 상단이 없는 상태로, 앞면에‘…… 大夫同知中樞府事 …… 徐欣男之墓 …… 韓氏 左’라 하여
묘주(墓主)를 적고, 뒷면에는‘…… 五샳八月十五日’이라 하여 건립시기를 적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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