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사지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1013
지정일 | 1989년 12월 29일 소재지 | 중부면 산성리 198-1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119호(보호구역 면적 : 11,573㎡)

개원사(開元寺)는 남한산성역사관에서 남서쪽으로 300m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1624년(인조 2)에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승도(僧徒)들
을 총지휘하는 본영 사찰(本營寺刹)로 창건되었다. 남한산성 내에는 원래 있었던 망월사(望月寺)와 옥정사(玉井寺) 외에 7개의 절이 더 창건되었는데, 개원사는 본영
사찰로서 조선 승병의 총지휘소가 되었고, 나머지 8개 사찰은 각 도의 승병(僧兵)이 주둔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종묘의 위판과 원종의 영정(影幀) 등을 법당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그 후 1894년(고종 31) 의승방번(義僧防番)이 폐지될 때까지
270여 년 간 승총(僧總)이 주재하는 사찰로서 전국 사원들의 승풍(僧風)을 규찰하는 규정소(糾正所)가 설치되는 등 명실상부한 조선불교의 총본산 역할도 담당하였다.
『중정남한지』에 의하면, 1637년 서호(西湖)에 닿은 배에 사람은 없고 대장경 책함만이 들었는데, 함 위에 ‘中原開元寺開刊(중원개원사개간)’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인조는“사람이 배를 이끈 것도 아니면서 배가 갑자기 스스로 왔으니, 이는 영묘하고 괴상한 일이다. 이 책이 중국 개원사에서
나왔으니 우리 사찰에 같은 이름을 가진 절을 찾아서 길이 간직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조선에서유일하게개원사란이름을 가졌던이 절에 대장경을금란보(뿠 褓) 열 벌에 싸서 봉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1666년(현종 7) 사찰 내의 화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갑자기 반대 편에서 바람
이 일어 불을 껐다고 하며, 1694년(숙종 20)에도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저절로 꺼졌기 때문에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산성 내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파괴 할 때 법당· 누각 등의 부속건물과 함께 대장경도 전소되었고, 곧 폐사되고 말았다.
그 후 작은 건물 1동이 남아 있었으나, 1976년 선효화상(禪曉和尙)이 주지로 부임하여 신도들과 함께 10여년에 걸쳐 대각전(大覺殿)·요사(寮舍) 등의 건물을 신축하면서 조금씩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군기고지(軍器庫址), 누각지(섪閣址), 종각지(鐘閣址) 등에는 주춧돌, 돌계단, 박석(薄石) 등이 남아 있어 옛개원사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짐작케 한다.
또한 사찰에는 남한산성 축성과 산성수호 승군들이 사용했던 놋쇠항아리 1점과 석장(石杖)·옹기(甕器)·함지 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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