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선생 묘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233
지정일 | 1988년 3월 21일 소재지 | 오포읍 능평리 산89-1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105호(보호구역 면적 : 4,151㎡)

김균(金 , 1341∼1398)은 여말선초의 문신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시호는 제숙(齊肅)이다.
1360년(공민왕 9) 성균시에 합격하였으며 공양왕 때에 전법판서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공신 3등
계림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보국숭록대부로서 좌찬성에 이르렀다.
김균선생 묘역은 곡장으로 둘러져 있고, 전체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분은 상하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장방형의 호석을 둘렀다.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쌍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고, 묘표가 세워져 있다.
묘표는 네모난 받침에 비신의 머리가 약간 둥근 방부원수(方趺圓首)형으로 전면에‘朝鮮開國功臣鷄쐹君뿠公 之墓’라 묘주를 밝히고,
후면에는 17세손인 김홍집(1842~1896)이 입석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문인석 2쌍은 모두 관모와 관복을 갖춘 복두공복 양식으로
16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망주석은 아무런 장식을 가하지 않은 것으로 19세기 전반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묘소의 석물 중 상석·향로석·장명등·석양(石羊) 등은 근래에 새로이조성한것이다.
묘역의 전방 약 80m 지점에는 1905년에 건립한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신도비문은 송병선(宋秉璿)
이 짓고, 윤용구(尹用求)가 글씨를 썼으며, 김영한(金寧漢)이 전액(篆額)을 올렸다. 비문에 의하면, 김균
의 묘역은 실전(失傳)되었다가 후손 김사목(金思穆)이 광주유수(廣州留守)로 부임하여 수소문한 끝에 찾
아 정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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