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수선생 묘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203
지정일 | 1988년 3월 21일 소재지 | 오포읍 신현리 산120-1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98호(보호구역 면적 : 6,168㎡)

김자수(金自粹, 1350~1413)는 고려가 망하자 이를 비관하여 자결한 고려의 충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중(純仲), 호는상촌(桑村)이다.
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 우왕(禑王) 초에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었는데, 왜구 토벌의 공으로 포상 받은 조민수(曺敏修)의 사은 편지에 회답하는 교서를 지으라는 왕명을 거절하여 전
라도 돌산에 유배되었다. 1392년(공양왕4) 충청도관찰사·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개국된 뒤 태종(太宗)이 형조판서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여 고려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김자수선생 묘의 봉분은 원형봉토분으로 상하쌍분이다. 봉분 앞에 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이 위치하고 있다.
묘역 좌우로는 석양(石羊)을 배설하였으며, 옛 석물로는 망주석 1쌍과, 문인석 2쌍이 있다.
상석 좌우에 세워진 문인석은 높이 80㎝로 작은 크기이며 고졸(古拙)한 느낌이다. 양식
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생각되며, 묘역 앞쪽의 문인석은 관모와 관복을 착용한 금관조복(뿠冠朝
服)의형태로 17세기중반에건립된것으로보인다.
묘비는 그의 유언에 따라 세우지 않았다가 조선 효종 대에 이르러 7대손 김적(金績)의 발의에 따라 신도
비를 마련하였으나 생전에 남긴 훈계가 지엄하였기에 묘 아래쪽에 묻어두었던 것을 1926년에 후손들이
발굴하였다. 그러나 비문의 마모가 심하여 신도비를 새로 건립하였고, 옛 신도비는 그 옆에 눕혀놓은 채
난간석을 둘러서 관리하고 있다. 옛 신도비는 1926년 건립된 신도비의 추기에 의하면 1654년 채유후(蔡
裕後)가비문을 짓고, 8대손 김홍욱(뿠弘郁)이 글씨를 썼으며, 여이징(呂爾徵)이 전액을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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