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동(三洞)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2.09 조회 : 1909
마을의 유래와 위치
원래 이마을은 3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었다. 즉 내곡(內谷 안가지울)ㆍ 외곡(外谷바깥가지울)ㆍ요곡(腰谷 욧골)인데,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축소개편하면서 세 마을을 합하여 ‘삼리’(三里)라고 하였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갈마치(渴馬峙)라는 고개가 유명한데, 이 고개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이고개를 통하여 서울방면으로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이고개가 남한산성(南漢山城)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이보치(또는 이배재)와 더불어아주 중요한 군사요지가 되었었다.

1970년대에 3번 국도가 성남에서 이마을 갈마치(渴馬峙)를 터널로 연결하여 건설됨으로써 산간오지에서국도변(國道邊)의 큰 마을로 변하여 급속히 발전된 마을이다. 이 마을은 예전에는내곡(안가지울)에만 마을이 형성 되었었는데, 조선 중기부터 외곡(바깥가지울)에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욧골은 지금은 뉴서울 골프장으로 편입되어 없어졌으나경주 김씨 4~5호가 집성촌으로 살아왔다.

광주시 경안동에서 3번 국도성남시 방향으로 가면서 ‘갈마터널’을 지나기 전에 있는 마을이 삼동(三洞)의외곡(바깥가지울)이고, 외곡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뉴 서울 골프장이 나오는데, 그골프장 못미처에 있는 마을이 예전부터 있었던내곡(안가지울)마을이다.
갈마터널을 지나가면 성남시 갈현동이다. 동쪽으로접해 있는 마을은 광주시 중대동(中垈洞)이며, 남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광주시직동(直洞)의 ‘새터말’이 나온다.

안가지울(內谷)
삼동의중심마을이었다. 3번 국도에서 뉴서울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마을이나오는데 이곳이 ‘안가지울’이라 한다.
가지울의 어원(語源)을 정확히 알 수는없다. 이 마을은 갈마치(渴馬峙) 밑에 있어 예로부터 왕래하는 인마(人馬)가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경안역(지금의 역동)에서 말을 바꿔 타고 이 고개를넘게 되는데, 이 마을에서 쉬었다가 넘어갔다고 한다. 산속에 마을이 형성되어있으나 문전옥답이 있어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해 왔으며, 맨 처음 입향(入鄕)한성씨는 하동 정씨(河東 鄭氏)이고 그 다음이 진주 강씨(晋州 姜氏), 평택 임씨(平澤林氏) 그리고 의령 남씨(宜寧 南氏)가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진주강씨는 통계공파(通溪公派)의 진천군(晉川君) 후손들이 조선 중기부터 입향하여살아왔고, 평택 임씨는 갈곡공파(葛谷公派) 가선대부 임대현(林大玄)의 후손들이입향하여 세거하여 오고 있다.
의령 남씨는 조선의 개국공신(開國功臣)충경공(忠景公) 남 재(南 在)의 후손으로 창명공파(滄溟公派)의 후손이 입향하여세거하여 오고 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비육우(肥肉牛)를 각 농가에서사육하여 농외소득을 많이 올렸던 곳이다. 지금은 옛 문전옥답에 주택이 들어서서800호 이상의 큰 마을로 변했다.

바깥가지울(外谷)
3번 국도에서 갈마터널을 지나기 직전에 도로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예전에는 ‘안가지울’만으로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이 곳에도 마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조선중기부터라고한다. 진주 강씨가 ‘안가지울’에서 내려와 마을을 배포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현 성남시 갈현동(독점)으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마을이 점점 커지게되었고, 지금 이 389번 도로는 2차선으로 포장되어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다. 이도로는 6. 25 전쟁 당시 UN군이 인천(仁川)으로 상륙하여 중부전선(中部戰線)으로이동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이 마을에도 농경지가 많지 않아서예전에는 화전(火田)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교통의중심지가 되었다.

욧골(腰谷)
지금의 뉴서울 골프장으로 편입되어 없어진마을 이름이다. 예전에는 이 곳에 경주 김씨들이 4~5호 살고있었다.

갈마치(渴馬峙) 고개
원래 갈마치는 ‘안가지울’ 마을에서 현성남시 갈현동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어 그 곳으로 인마(人馬)가 왕래하여 고개의위치가 ‘안가지울’이었는데, 지금은 3번 국도 갈마 터널이 있는 곳, 즉‘바깥가지울’의 389번 도로의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는『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갈마치’라고 부른 것 같다. 갈마(渴馬)란 말(馬)이 갈증(渴症)이 난다는 뜻인데,예전에 ‘갈마치’는 매우 가파른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말을 몰아 이 고개를 넘으면,말이 목이 말라 헐떡임으로 꼭 물을 먹이고 쉬어갔다고 한다.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의하면, 이 고개는 남한산성의보장지(保障地)로서도 중요시 하였으며, 조선시대의 군사요지(軍事要地)였음을 알수 있다.

갈마치골
갈마치고개를 넘어가면서 우측에 있는 골짜기를말한다.

버러니고개
‘안가지울’ 마을에서 광주시 탄벌동(벌원마을)으로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 지금은 골프장으로편입되었다.

새말골
‘바깥가지울’에서 ‘안가지울’로 넘어가는 고개 밑에있는 골짜기로서 이 고개를 넘어가면 ‘안가지울’의 새로 생긴 마을로 통한다고 하여지어진 이름이다.

웃말
‘안가지울’에서 광주시 목현동(모개미)으로넘어가는 고개 밑에 있어 제일 위쪽 마을이어서 붙여진이름이다.

화수골
‘바깥가지울’에서 새로 개통된道路(삼동~직동간)옆으로 <청명사>(淸明寺)란 절이 새로 생겼는데, 이 절이있는 곳을 말한다. 예전에는 이 골짜기에 화전(火田)이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이름이다.

절터
안가지울 응달말 뒤쪽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곳에서 옛 토기편(土器片)이 발견되고 있고, 절의 주춧돌을 가져다가 집을 지은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미당골(高美堂谷)
389번 도로를 따라갈마치고개로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는데, 약수터 위의 골짜기를말한다.

석숭박골(石崇礴谷)
3번 국도 갈마터널을 들어가기직전 우측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구람모퉁이
광주시 중대동과 삼동의경계지점에 산모퉁이를 말하는데, 지금은 3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산모퉁이가없어지고 도로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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