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364
삼성리三成里는 조선시대에 과학동過鶴洞, 삼정동三政洞, 족자동簇子洞의 3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세 마을을 합쳐 삼성동三成洞이라고 하였다.
흔히 ‘삼정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세 정승政丞의 묘가 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원래는 퇴촌면이었는데, 팔당댐 조성으로 1974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남종면으로 편입되었다.
마을은 43번 국도 남한산성면 상번천리에서 퇴촌면 도마리를 지나 팔당댐 방면으로 가다가 고개를 넘으면 나온다. 팔당호가 앞에 있고 마을 뒤의 용마산에서 뻗
어 내린 여러 골짜기도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등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여러 기의 조선백자 요지와 고인돌이 발굴 된 것을 볼 때 일대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검단산黔丹山
삼성리와 이석리 뒤쪽에 있는 산이다. 백제의 승려 검단선사가 조용히 불도를 닦던 곳이라 해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에서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것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과학동過鶴洞, 괘기
먹이가 풍부하여 예로부터 학鶴이 무리를 지어 날아와 서식하는 곳이라서 지어진 이름이다. 속칭 ‘괘기’라고도 부른다. 삼성3리이다.
■삼정골[三政谷]
권진, 노물재, 안망지 등 삼정승三政承이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삼정골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소위 배산임수형의 마을로, 삼성리 마을회관이 있
다. 삼성2리이다.
■수반水畔
물가에 있는 마을이어서 불린 이름이다. 팔당수질개선본부 선착장이 있다.
■용마산龍馬山
삼성리 뒤쪽의 가장 높은 산으로 검단산 줄기이다.
■족자동簇子洞, 족동
삼성리의 자연마을 중에서 가장 크며 삼성1리이다. 조선시대에 권진의 후손이 왕으로부터 족자簇子를 하사받아, 그 족자에 그려진 대로 95칸 집을 지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족자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족동’이라고 많이 부른다.
■줄바위
용마산줄기에서 내려온 바위가 정상으로부터 맨 아래까지 한 줄로 뻗어 내려 생긴 이름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정성껏 치성을 드리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
이 있어 1960년대까지도 치성을 드리는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근래에도 신내림을 받은 이들이 기도처로 삼았다고 한다.
■호랑바위
삼성리의 어느 아낙이 치성을 드려 아들을 내리 다섯을 얻었다는 바위이다. 이렇게 낳은 아들들의 눈썹이 호랑이 눈썹을 닮아 그 바위를 호랑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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