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원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467
분원리分院里는 조선시대에 왕실용 도자기의 생산과 관리를 담당하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있어서 탄생된 이름이다. 퇴촌면 광동리에서 337번 지방도로를 따
라 금사리를 지나 망조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마을로, 현재 남종면사무소가 있는 면소재지이다. 예전에 수로를 통해서 서울로 집중되는 대부분의 물품이 한강 뱃길
로 운송될 때는 크게 번성하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5일장이 서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활발한 지역이었다. 아울러 한강변의 비옥한 농경지에서는 품질 좋
은 야채들이 많이 생산되어 서울 등 인근 대도시는 물론, 군인들에게 보내는 김장용배추를 이곳에서 조달하기도 하였는데, 1970년대 초 팔당댐 조성으로 농지 대부분
이 팔당호에 잠겨 지금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거의 없다. 한편, 조선백자 요지가 발견된 곳에 분원백자자료관을 설립해 백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감투바위소당
망조고개에서 분원리로 넘어가는 길 왼쪽에 있는 바위다. 생김새가 감투를 닮았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며, 소당이라는 별칭이 있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분원 백자 요지
도요지는 자기나 도기를 굽는 가마터를 말한다. 광주 조선백자요지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백자 가마터로 분원리를 중심으로 광주시 거의 전역에 있다. 분원리
의 경우 2000년 초 발굴을 한 후 분원초등학교 인근에 현재의 분원백자자료관을 세웠는데, 분원 도요지에서 만들어진 도자기의 모습과 발굴할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망조고개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정승이었던 조영무는 말년에 퇴촌에 와서 살았는데, 그가 이고개에 올라 태종이 있는 한양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고 해서 망조고개라 불렀다.
■소내촌
팔당댐이 건설되던 때 우천리에 홍수가 났었다. 이때 주민 8가구 정도가 지금의 분원교회 아래로 피난 나와 모여 살면서 이름을 소내촌이라고 불렀다.
■육당
망조고개에서 분원리 방향 오른쪽 마을 뒷산에 있다. 온수물원수물이란 약수터가 있었는데 위장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팔당댐
‘팔당八堂’은 팔명당八明堂 터가 있던 곳이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본래 한강가의 넓은 나루여서 바댕이·바다나루·바다이·바대이·바당이 등으로 불렀으
며, 일제강점기 전에는 바댕이라 불렀고, 이후에는 팔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유래로 뱃사람들과 관련된 것도 있다. 배가 지나다니는 곳에 두미협곡이 있었는
데, 물살이 빠르게 휘돌아 쳐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뱃길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당집을 세웠는데, 8집이나 되어 팔당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 외에 우리말 ‘바다이’, ‘바대이’‘바당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팔당이 되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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