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123
조선시대에는 초월면 원당리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퇴촌면으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 때 이 마을에 자[尺]를 보관하던 금척원金尺院이 있어서 원당元堂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다른 유래로는 옛날에 이 마을 출신의 유명한 장수가 있었는데, 마을의 으뜸 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집을 원당이라 했고, 마을
이름도 ‘원당이’ 혹은 ‘원댕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마을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 으뜸 되는 연못이라는 의미로 원지元池
라 했으며, 여기에서 원당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남쪽으로 초월읍 무갑리, 북쪽으로 정지리 및 광동리와 맞닿아 있으며, 동쪽으로 관산에서 내려온 산자락을 경계로 관음리가 있고, 서쪽으로 경안천을 사이에
두고 초월읍 서하리와 마주하고 있다. 큰마을원당1리에는 돈수왕자敦壽王子의 태와 선조의 아들 경평군慶平君의 태를 묻은 태봉이 있으며, 작은마을원당2리에는 일제강
점기에 일본군 성 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함께 거주하는 나눔의 집과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가새골가생이골, 작은마을
가새골은 원당리의 가장자리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가생이골 또는 작은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입구부터 주변의 산등성이까지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으며, 나눔의 집과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다.
■능넘어
원당리 북쪽에 있는 산을 넘어가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왕실에서 능 자리로 잡았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순천 김씨의 묘와 재실이 있다.
■뒤태봉胎峯
마을회관 바로 뒤에 솟아있는 동산이다. 원당리에는 조선 왕실 왕손의 태胎를 묻은 산을 일컫는 태봉이 둘 있다. 각각 ‘앞태봉’과 ‘뒤태봉’이라 부르는데, 뒤태봉은
1961년에 마을 사람들이 태함胎函을 도굴하던 도굴꾼들을 붙잡아 관에 신고하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백자로 만들어진 태항아리와 대리석으로 만든 지석誌石이 나왔다. 이때 발견된 것이 돈수왕자의 태항아리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명탁골
원댕이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원당천이라고 하고, 그 주변을 명탁골이라고 한다. 지금은 마을이 형성되어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무럭골
양지말에서 남쪽 산을 넘으면 나오는 마을이다.
■무턱골
원당리와 초월읍 무갑리 사이의 산 옆으로 있는 골짜기이다. 지금은 작은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송문골
나눔의 집 근처에 있는 들판이다. 원래는 송문들이었으나 발음이 변하여 송문골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주택이 들어서 있다.
■앞태봉胎峯
마을회관을 등지고 앞을 바라보면 조금 멀리 붉은 벽돌집 뒤로 봉긋하게 솟은 동산이 있다. 평지에 동그란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앞태봉이다. 1934년 일본인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지석에 따르면 선조의 11왕자인 경평군의 것이다.
■양지말
원댕이의 중심 마을로 함양 박씨가 대를 이어 살아온 곳이다. 해가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다.
■원댕이큰마을
원당리의 중심 마을로 원당1리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태로 뒤쪽으로는 관산에서 뻗은 산자락이 에워싸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경안천이 흐르고 있다.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태의 좋은 터에 생긴 마을이지만 예전에는 도로가 없어 교통이 불편했다. 지금은 마을 앞 경안천을 따라 325번 지방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주민
들의 생활도 편리해졌다. 경사진 길을 따라 전원주택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으며, 대안학교인 발도르프푸른숲학교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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