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086
영동리嶺東里는 조선시대에도 영동리였다. 조선 초기에 광주 목사가 이곳을 지나면서 퇴촌면의 동쪽에 있는 큰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영동리라 하였다
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거먹골, 구룡동, 석둔 등 3개가 있다. 관음사거리에서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양평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오르막을 가다보면 나오는 염치고개영동고개를 넘어 내려가면서 좌우에 있는 마을이다.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충주 지씨가 대를 이어 사는 곳인데, 지금은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거먹골거북골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염치고개영동고개, 염티고개를 넘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다. 구룡동의 반대편이며,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와 맞닿아 있다. 거먹골에는 마
을 한가운데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 속에 큰 거북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려고 하면 모습을 나타내 미리
알려줬고, 마을 사람들은 흉사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영험한 거북이가 살고 있어서 마을 이름을 거북골이라 불렀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거먹골로 변했다고 한다.
■구룡동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염치고개영동고개, 염티고개를 넘어가면 왼쪽에 있는 마을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거먹골과 반대편이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에 이곳이 바다였는데 육지가 되면서 용 아홉 마리가 사는 커다란 연못이 생겼다고 한다. 어느 날 열흘일설에는 나흘 동안 밤낮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온 마을이 물에 잠길 정도였는데, 그때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구룡동九龍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군두봉
영동리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라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석둔
옛날에 이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돌로 진을 쳐서 적을 크게 이겼다고 한다. 이후 석진石陣이라 부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하여 석둔
石屯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유래로는 석石씨 성을 가진 장군이 싸움에서 공을 세웠고, 그의 후손들이 마을에 집단으로 거주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마을 뒷산에서 돌이 아주
많이 나서 석둔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석둔고개
석둔에서 남종면 수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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