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149
조선시대에는 광복동光福洞과 동지벌말이라 불리는 동대동東垈洞의 2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광복동의 ‘광光’과 동대동의 ‘동東’을 따서 광동리
光東里가 되었다.중부고속도로 광주 나들목에서 45번 국도를 따라 도마치 고개를 넘어가면 도마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서 광동교光東橋를 건너면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337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오리를 거쳐 남종면 분원리고, 서쪽으로는 정지리亭支里와 맞닿아 있으며, 325번 도로를 따
라 정지리와 원당리, 초월읍 무갑리로 갈수 있다. 또 영동리와 양평군 강하면 방면으로 향하는 88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관음사거리에서 천진암 방향으로 직진하면 관음리, 우산리와 연결된다.
광동리는 퇴촌의 중심 마을로, 퇴촌면행정복지센터, 경찰지서, 우체국, 농협 등 각종 기관과 편의시설이 입지해 있다.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마을의 일부
가 수몰되어 농경지는 많이 줄었지만, 교통과 생활의 편의성 때문에 상가와 빌라,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광동교光東橋
도마리에서 광동리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다리이다. 예전에는 작은 다리였는데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물이 많아졌고 확장 공사를 해 큰 다리가 되었다.
■광복동光福洞, 광백이
해마다 농사가 풍년인 복을 받은 마을이라 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래전부터 산수가 아름답고 들판이 넓어 사시사철 햇볕이 가득해 광지촌光之村이라고 했
으며, 주민들은 ’광백이‘라고도 부른다. 광동2리다.
■동벽소東壁沼
광동리와 도수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있던 큰 소沼로, 동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물이 깊었으나 지금은 하천이 변형되어 없어졌다.
■동지벌말동대동, 벌말
퇴촌농협과 88번 지방도로 사이에 있는 마을로, 경찰지서와 우체국, 농협 등이 있는 광동리의 중심 마을이다.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 수어
청은 전국 각지로부터 군량미를 거두었는데, 이곳이 넓은 농경지였기 때문에 광주에서 가장 많이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동쪽에 있는 넓은 마을이라고 하
여 ‘동지벌말’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동대동東垈洞’이라 했으며, ‘벌말’이라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부처골
광동리와 정지리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어린아이 모양의 동자 불상童子佛像이 있었는데, 서울의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살구지
광동리에서 정지리 방향으로 가면서 왼쪽에 있는 지역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살구나무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살곳이들
경안천변에 살구지 앞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들판을 말한다.
■삼태기산
광복동광백이에 있는 응달말의 야트막한 뒷산이다. 생김새가 삼태기 같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양지말
광복동광백이의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다.
■웃광백이 마을
광복동의 위쪽으로 산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광백이 위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응달말
광복동광백이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해가 덜 드는 음지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터
8·15광복 후 5일장이 섰던 곳이다. 한때 폐장되었다가 광동사거리와 동지벌말 인근에 새로 개장되었는데, 원래의 장터에는 주택이 들어서 있다.
■탑골
퇴촌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마을이다. 익산 임씨의 집성촌이었으며, 예전에 탑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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