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110
관음리觀音里는 조선시대에 상관음동上觀音洞과 하관음동下觀音洞 2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관음리’로 통합되었다. 마을은 광동리에서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관음사거리에서 천진암 방면으로 직진하면서 시작된다.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길게 이어지며 형성되어 있다. 주변에서 크고 작은 암자 터가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 일대를 ‘관세음보살’의 준말이자 불교 용어인 관음觀音이라 부르게 된 연유다.

 ■가마소
관음1리에 있던 옛날 개천으로, 그때는 물이 깊었다고 한다. 어느 날 혼행婚行 길에 신부를 태우고 가던 가마가 이곳에 빠져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관음동觀音洞, 관음골, 사관골
옛날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의 관음1리다. 관음골 또는 절 ‘사寺’자를 써서 사관골[寺觀谷, 사관마을]이라고도 불렀다.
■관음백이가난백이, 넘말
관음2리의 작은 마을인 넘말의 다른 이름이다. 예전에 마을이 가난하여 관음백이 또는 가난백이라 불렀다고 한다.
■관음사觀音寺
지금의 관음목장 자리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 폐사되었다고 한다. 국사봉 아래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만절삼한절도 빈대가 많아서 폐사됐
다고 전해지는데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사유지가 되어 들어갈 수 없지만 목장 입구의 길을 따라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있으며, 가을이
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광대모이께
관음2리에 있는 산모퉁이다. 예전에 광대가 살다가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넘말늠말, 관음백이, 가난백이
관음2리의 작은 마을이다. 관음리 너머 혹은 개울 너머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늠말이라고도 한다.
■도장동都長洞, 도장골
도장동 혹은 도장골이라 불렀으며 안도장골과 바깥도장골이 있다. 도장동의 한자는 ‘都長洞’을 사용하지만 ‘道墏洞’과 ‘道長洞’으로도 쓰였음을 볼 때 불도를 닦는 ‘도장道場’이 변해서 생긴 지명으로 추정된다. 또 일부에서는 산속에 묘지의 흔적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몰래 장사를 지낸다는 뜻의 도장盜葬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지금의 관음3리다.
■명학골鳴鶴谷
관음3리의 왼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학이 많이 찾아와 그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즉 학鶴이 우는鳴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백성산白成山
관음3리의 깊은 산속이다. 예전에 백白씨와 성成씨가 산 아래에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이 깊기 때문에 난리 때 사람들이 피신했던 곳이라고 한다.
■서낭댕이
관음2리에 있는 서낭당이다. 서낭댕이는 서낭당의 방언이다.
■수천이골
관음3리에 있는 깊은 산골짜기이다.
■아들바위
관음3리에 있는 큰 바위다. 바위 위로 돌을 던져 떨어지지 않으면 아들을 낳고, 돌이 땅으로 떨어지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입꾸지
관음3리에서 천진암으로 올라가는 오른쪽 입구를 말한다.
관음3리 도장골
■작은 염티고개
관음리에서 정지2리 정자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말한다.
■절골
마을사람들이 모두 따르는 고승이 사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중투말
중간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음1리에 있다.
■큰 염티고개
관음리에서 도수리와 정지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말한다.
■하래비소
관음3리 우천牛川에 있는 소沼, 못이다. 물이 깊어 예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빠져 죽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할미소
하래비소 아래에 있는 못이다. 하래비소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물이 깊은데, 예전에 어떤 할머니가 빠져 죽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행당골고개
관음3리의 안도장골에서 양평군 강하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