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2634
상림리祥林里는 도척면 소재지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2㎞ 지점을 기점으로 시어골 상림1리, 상림상림2리, 사기소상림3리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예전에 뽕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하여 뽕나무 ‘상桑’을 써서 상림桑林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상림祥林으로 표기한다.
면적은 넓은 편이지만 태화산과 정광산에 둘러싸여 산림이 많고 농경지는 적다. 정광산 뒤쪽에서 발원한 하천이 시어골을 거쳐 노곡천으로 합류하는 등 맑은 물,
푸른 숲, 맑은 공기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감투봉
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산의 봉우리가 마치 감투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고바위
바위 아래에 ‘보洑’가 있고, 그 아래로 흐르는 하천의 깊이가 노끈 뭉치 하나가 다 풀리어 들어갈 만큼 깊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는 ‘노고바위보’라 불렀다고
한다.
■능안
옛날에 능 자리로 쓰려고 했으나 못 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즉 능이 아니라는 말을 줄여서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당제골당제곡(堂祭谷)
옛날에 신당神堂을 짓고 당고사堂告祀를 지내던 골짜기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된쟁이들
상림과 사기소 사이에 있는 지점이다. 지명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두멍골
산의 골짜기가 마치 두멍 항아리 같이 둥글게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뒷고개
노곡리와 사기소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사기소의 뒤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아가리골
골짜기의 생김새가 마치 말의 아가리 같이 깊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매바위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매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너미골
해와 달이 넘어갈 때 이곳으로 바로 넘어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바로너머골’이라 불렀으나 발음이 변하여 ‘바로너미골’이 되었다.
■밤성골
산의 골짜기가 깊어 밤처럼 어둡고, 산세가 험하여 성城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방아골
골짜기의 생김새가 일자로 내려오다가 양 갈래로 뻗쳐있는데, 그 생김새가 마치 방아다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벌덕산
산의 형세가 편평하면서도 뒤로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풍바위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이 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
절골 근처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불당佛堂을 지었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기소砂器所, 상림3리
사기그릇을 굽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의 동쪽은 노곡리, 서쪽은 상림2리며, 남쪽은 유정리, 북쪽은 도웅리다. 마을 일대에는 조선시대에 사기를 굽
던 도요지陶窯址가 있는데, 지금도 땅을 파면 사기 조각이 발굴된다고 한다.
■사태난골
된쟁이들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지만 예전에 사태가 자주 났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산제당
예전에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산제山祭를 지냈는데, 이곳에 당집을 차리고 산제를 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상거북바위구정암(龜頂岩)
산의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검은 바위를 일컫는다. 이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거북이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위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장선이
라는 처녀의 애틋한 전설이 전한다. 왕건이 궁예에게 쫓겨 도망칠 때 며칠을 굶으며 산 속을 헤매다가 바위 근처에 도착했다. 인근에는 노인과 꽃다운 손녀가 살았
는데, 사경을 헤매던 왕건을 거두어 한 달 이상을 보살폈다. 그리고 기력을 회복한 왕건과 처녀는 사랑을 나누었고, 왕건은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그
곳을 떠났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왕건이 돌아오지 않자 처녀는 식음을 전폐한 채 매일 상거북바위구정암에서 기다리다가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 시간이 더 흘
러 마침내 왕건은 고려를 개국하였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처녀를 찾아왔으나 이미 그녀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는 것이다.
■상능곡上稜谷, 화초바위
마을 산의 능선이 길어서 이를 구별하여 맨 위쪽에 속하는 능선을 ‘상능곡’, 아래쪽을 ‘하능곡’이라고 부른다. 이 일대에는 바위가 많은데, 이끼가 덮고 있는 모습이
마치 화초 같다고 하여 ‘화초바위’라고 부른다.
■상림마을상림2리
마을 뒷산이 마치 누에처럼 생긴데다가, 뽕나무가 잘 자란다고 하여 ‘상림桑林’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상서로울 ‘상祥’자로 한자를 바꾸어 지금은 상림리祥林
里가 되었다. 동쪽으로 사기소마을이 있고, 서쪽에는 정광산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도웅리가 있다.
■승방터
시어골 입구이다. 예전에 승려들이 시주를 하고 절로 돌아갈 때 여기에서 쉬어 가곤 했는데, 승려들이 쉬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어골
양달말·응달말·구청말로 구성된 마을로 상림1리에 해당한다. 상림마을에서 약 2㎞ 들어가는 산골짜기로, 산세가 험하고 예전에는 맹수들이 많아 무서워서 살
기가 싫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즉 ‘싫어골’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하여 ‘시어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물 맑고 산이 좋아 별장지나 전
원주택지로 각광 받는 곳으로 바뀌었으며, 여름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주 김씨, 진주 강씨, 안동 김씨 등이 대성을 이루고 있다.
■싸리골
예전부터 골짜기 전체가 꽉 차도록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우고개
사기소와 유정리구름우물 사이에 있는 산이다. 예전에 이 고개에 여우가 자주 나
타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산골
평산 신씨平山申氏가 산신령을 모시는 제를 지내던 골짜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녀봉
시어골의 산봉우리 생김새가 마치 옥녀가 머리를 풀고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용두(龍頭)
노끈 뭉치 하나가 다 풀리어 들어갈 만큼 깊은 곳에 있어 붙여진 ‘노고바위’가 있고, 그곳에 있는 보洑를 ‘노고바위보’라 부른다. 그런데 그 보의 머리가 용의 머리
같다고 하여 용머리라 부른다고 한다.
■이래갈이골
상림천 상류이다. 밭이랑이 이래 동안 갈 만큼 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쟁기들
사기소 왼쪽 방향에 있는 들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쟁기로 밭을 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절골
절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절은 도둑이 많이 들어 폐사되었다고 한다.
■적낙봉
용인 쪽에서 볼 때 산봉우리가 마치 곡식을 쌓은 것 같다고 하여 쌓을 ‘적積’을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광산正光山
태화산 줄기에 있는 산으로 ‘시어골’의 뒷산이다. 지명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청노들
골짜기 전체가 바위로 덮여 있는데 그 모습이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여 푸를 ‘청靑’을 써 만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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