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곡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1066
노곡리老谷里는 조선시대에 노곡동老谷洞 또는 장항리獐項里라고 하였다. 속칭 ‘노루목’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을에서 상림리 방향으로 서 있는 산의 모양이 마치
노루가 새끼를 데리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척면사무소의 소재지로서 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며, ‘노루목’, ‘안터말’, ‘고녹골’ 등 3개 자
연마을이 있고, 곡산 연씨谷山延氏와 경주 김씨慶州金氏 등 많은 성씨가 거주한다.
마을에는 방도리를 기점으로 유정리를 거쳐 노곡리의 ‘용머리’까지 이어지는 하천과 추곡리를 기점으로 유정리를 거쳐 용머리까지 이어지는 하천이 합류해 상림
리로 흐르는 노곡천老谷川이 흐른다. 옛 지도에 노곡강老谷江으로 표기될 만큼 컸으나 현재는 작은 편이다.
노곡리에는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지서, 도척 단위농협, 우체국, 초등학교, 중학교 등의 공공시설이 있다. 이밖에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도척성당都尺
聖堂도 있다. 이 일대는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조선 후기에 천주교인들이 은거했던 곳인데, 옹기를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간말
아래 점말과 웃점말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두 마을 사이에 있다고 하여 사이 ‘간間’을 써 간말이 되었다고도 하며, 가운데말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간
말이 되었다고도 한다.
■갈고개
진우리에서 노곡리로 넘어오는 고개이다. 고개가 길고도 높아 이 고개를 넘으려면 누구나 힘에 겨워 갈증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갯물
예전부터 샘물이 많이 나는 곳이었는데, 샘물이 나는 자리가 마치 ‘개’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녹골
마을에는 용수가 풍부한 샘물이 있어 어떤 가뭄에도 물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였고, 논은 옥답沃畓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운 논에 비옥할 ‘옥沃’을 넣어 고은옥
골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줄어 고녹골이 되었다고 한다.
■고터
헉고개 밑에 있는 곳으로 예전에 사람이 살던 집터이다. 옛 집터가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돈터
복사골에서 황층황씨가 살던 곳으로 넘어가는 지점에 있는 나무꾼이 쉬어가기 좋은 편평한 곳이다. 예전에 나무꾼들이 쉬는 동안 돈치기를 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분당골
용인시 백암에서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로 질러가는 길목이다. 분원 가는 도중에 ‘당堂’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루목
노곡리에서 상림리祥林里로 넘어가는 산의 생김새가 새끼노루가 어미노루를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다.
■느다리
예전에 도랑을 건너기 위하여 판자 목으로 된 나무를 걸쳐 놓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다.
■달팽이골
산골짜기가 마치 ‘달팽이’같이 꼬불꼬불 비틀어져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골짜기가 깊어 하늘만 보일 정도로 후미지고 외진 곳이다.
■돌쪽다리
노곡리에서 유정리 가는 중간에 도랑이 있었는데, 이 도랑에 돌로 된 쪽다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대까지도 돌로된 쪽다리를 이용하였으나 도로가
확장되면서 없어졌다.
■되린개 음달
노루목마을에서 이천 방면으로 가다가 오른쪽에 있는 산이다. 하루 종일 햇빛을 볼 수 없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재
분당골에서 넘어오는 복사골 뒤편으로 작은 고개가 있다. 이름이 없을 정도로 작아서 생긴 이름이다.
■복사골
갈고개에서 노루목으로 넘어오면서 왼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인가人家가 있었고 복사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빈대박골
헉고개에서 북쪽 방향으로 나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이곳에 박 씨가 살았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서 ‘빈대박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정거리
예전에 활쏘기를 하던 궁터가 있었는데, 광주와 이천에 살던 한량들의 시합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노곡리 안산을 향하여 활쏘기 시합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박골
고녹골 왼쪽의 골짜기이다. 예전에 박 씨 3명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의 산이 모두 박씨 종중산이라고 한다.
■섭산
용머리 위쪽에 있는 산이다. 누에가 섶으로 올라가는 형국의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장봉
산의 생김새가 마치 죽은 사람의 시체와 같다고도 하고, 옛날부터 이곳에 시신을 많이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주골
옛날부터 신주골이라고 부르는데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안산
마을의 앞산으로 안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터말
노곡리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노곡리에서도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수령 약 300년 된 향나무가 있는 유명한 샘물이 있는데, 주민
들이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에 정제사井祭祀, 우물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여새여울
노곡리와 유정리의 경계에 하천이 있는데, 세차게 흐르는 여울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옻물
예전부터 옻 물이 나는 유명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약 옻이 올랐을 경우 이곳의 옻 물로 씻으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용머리
노곡리에서 사기소마을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용과 같아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과 하천변 큰 바위의 생김새가 용의 머리와 비슷하여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게다가 안터말 향나무와 샘물 바위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것이 용의 눈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은골
유정리 뒤, ‘여새’ 위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층바위
‘신주골’ 옆에 있는 바위이다. 구멍이 뚫려 있고 2층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님보
노곡리에서 가장 오래된 보洑로 비교적 몽리蒙利 면적이 광범위하다. 가뭄 피해가 심할 때에는 이 보에서 면 단위의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름의 유래는 전해
지지 않지만, 오래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란 추측만 있다.
■절골
예전에 절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돌로 만든 절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점말
예전에 옹기를 굽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5호 정도가 거주하였으나 옹기용 점토가 없어지면서 모두 떠났다. 현재도 옹기 파편이 발견된다.
■태봉
예전에 왕족의 태胎를 묻은 산이라고 하여 태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헉고개
노곡리에서 이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가 가팔라서 오가는 행인이 이 고개를 넘으려면 힘이 들어 “헉헉” 하고 넘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황층큰황층, 작은황층
예전에 황黃씨 형제가 살던 곳이다. 큰 형이 살던 곳이 ‘큰 황촌’, 동생이 살던 곳을 ‘작은 황촌’이라 하였는데 황촌이 변하여 황층이 되었다고 한다.
■횟가마골
여새에서 서쪽 방면 산기슭에 있는 골짜기로 강회를 굽던 곳이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질이 좋고 강한 소석회燒石灰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원료인 화목
火木을 구하기 어려운데다 점차 인건비까지 상승하여 수지타산이 맞지 않자 폐광되었다. 소석회를 굽던 곳이라 하여 ‘횟가마골’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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