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평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1337
궁평리宮坪里는 조선시대에도 궁평리였다. 궁평리궁뜰라는 지명은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를 물색할 때, 이곳을 궁궐 예정지의 하나로 택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시대 왕이 사패지賜牌地로 내린 곳이라 하여 궁뜰이라고 부르다가 궁에서 내린 넓은 들이라고 하여 궁평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일대에는 선사시대약 2만 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1986년 중부고속도로 개설 공사 때 고인돌 3기와 돌무지 3기 등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고,
청동기시대 및 백제시대의 유적들도 확인되었다.
농경지가 풍부하여 예로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알려졌다.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학천 지방에서 난을 피해 정착한 순흥 안씨順興安氏가 대성을 이루었고, 능성 구씨
陵城具氏를 비롯한 여타 성씨들이 세거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웃말, 안말, 건너말, 아랫말 등이 있다.
한편, 1910년경 궁평리에 도척면사무소가 처음 설치됐었는데, 1923년에 노곡리로 이전하였다. 마을은 도척면 소재지인 노곡리老谷里로부터 약 6㎞ 거리에 있고,
도웅리陶雄里와 경계하고 있으며, 곤지암읍 곤지암리昆池岩里에서 약 3㎞ 정도 떨어져 있다.

■가장골
궁평리를 지나는 개울을 중심으로 개울 건너 가장자리에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관청고개
곤지암에서 궁평리로 넘어 다니는 고개이다. 예전에 궁평리 쪽이 관청이 있던 지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 경찰지서 터
1915년경 궁평리에 광주경찰서 도척지서가 설립되었는데, 1923년 면사무소를 노곡리로 이전하면서 도척지서도 함께 이전되었다. 이에 따라 옛 도척지서가 있던
자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 면사무소 터
1910년경 도척면사무소가 설립되어 10여 년간 행정을 관장하다가 1923년 노곡리로 이전되었다. 이에 따라 옛 면사무소가 있던 자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사령골
예전에 군대가 주둔하였던 곳이다. 관官의 명령 계통인 사령司令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궁뜰
조선시대에 궁에서 하사한 땅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행정구역 개편 때 ‘궁평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백제시대 궁주의 땅이 있던 들[坪]이
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배고개
백고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강이 있어서 고개를 넘어가려면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고개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행로 중에서 100번째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빈량뜰
토양이 나빠 곡식이 잘 자라지 않아 다른 곳보다 수확이 빈약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즉 한자로 가난할 ‘빈貧’과 양식 ‘량糧’을 써 빈량뜰이라 한 것이다.
■상지골
예전에 군부대가 있었던 곳으로 항상 보초를 서면서 지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남터
예전에 죄인들을 처형하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왜벌
햇빛이 적게 들어 눈이 더디 녹고 추워 궁평리의 시베리아로 불릴 만큼 추운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머리산용강
산의 생김새가 마치 용머리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용두산龍頭山이라고도 한다. 또한 산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는데 용머리 앞으로 흐른다 하여 용강龍江이라
고 부른다.
■윗소릿골, 아래소릿골
도곡리로 넘어가는 곳이다. 고개가 작아서 생긴 이름들이다.
■장살미
빈량뜰 위쪽에 있는 논이다. 논이 좁고 길어 논갈이를 할 때 사리가 길다고 해서 길 ‘장長’을 붙여 장살미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호덕골호덧골
궁평리의 중심으로 예전에 다래 덩굴이 매우 무성했는데,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옛날에 호랑이를 잡기 위해 덫창아을 놓았던 곳이라 하여 ‘호덧골’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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