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리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1219
삼합리三合里는 조선시대에는 지음리知音里, 징골, 야포동冶浦洞, 풀무께, 국정포동國井浦洞, 국정개 등 3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세 마을을 합쳐 삼합
리가 되었다. 곤지암읍 만선리에서 유사리를 지나 마을이 위치하며, 곤지암읍과 여주시 산북면의 경계 마을이어서 갈고개를 넘으면 여주시 산북면 송현리이다.
삼합리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상도 안동으로 갈 때, 경안역을 거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그때 공민왕이 마셨던 우물이 있다고 하여
국정포國井浦, 국정개, 호위 무사의 병기를 만들던 곳이어서 야포동, 공민왕이 불경을 읽으며 기도 하던 곳이어서 지음이란 이름이 각각 생겼다고 한다. 또
한 국정개의 앞산은 공민봉恭愍峯이라 부르고 있다.

■갈고개
삼합리에서 여주시 산북면 송현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1970년대 초까지 서낭당이 있었으나 새마을사업으로 인한 도로 확장 때 없어졌다.
■공민봉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이 발생하자 공민왕은 안동으로 피난을 갔는데, 도중에 이곳 국정개마을에 묵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이천시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의
앞산을 공민봉恭愍峯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국정개國井浦
삼합리의 중심마을이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가다가 이곳에 머물 때 새로 우물을 판 후 그 물을 마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날기터골
만선리에서 유사리를 지나 여주시 산북면 송현리로 넘어가는 길 왼쪽에 있는 전원주택지이다. 예전에 나씨가 살던 집터라 원래는 나가대곡羅家垈谷이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날기터골이 되었다고 한다.
■넘말국정개 넘어
국정개마을 너머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독박골
국정개마을 서북쪽 골짜기에 항아리독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독바위골이라 하였으나 발음이 변하여 독박골이 되었다고 한다.
■망재
국정개마을 동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여기를 넘어가면 여주시 산북면이다.
■바깥말빈지골
삼합리마을징골의 바깥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사리와의 경계에 있다.
■소넘이골소노골
독박골 옆의 골짜기이다. 소노골이라고도 부른다.
■소시랑봉
삼합리의 남쪽에 있는 큰 산봉우리이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쇠스랑 발처럼 여러 산줄기가 내려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산
빈지골과 징골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봄나물이나 버섯이 많이 나와 봄철 춘궁기에 마을 주민들이 많이 의지하던 산이라 안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야포풀무깨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난을 갈 때 국정개마을에 들렀는데, 이때 호위 군사들의 무기를 만들거나 수리하기 위해 이 마을에 풀무를 설치했다고 한다. 즉
매일 풀무질을 하면서 무기를 생산하거나 수리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향개지원향개
국정개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예전에 지池씨가 살던 곳이라 지원향개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전원주택지로 변하였으며, 보통은 원향개라 부른다.
■지음智音, 징골
국정개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흙이 질어서 진골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곳에 피신하였던 공민왕이 나라의 안녕을 빌면서 불사佛事를 매
일 같이 열어 징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하여 징골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참사골
지음동마을 동쪽에 있는 산골짜기이다. 도랑이나 논에서 찬 샘물이 많이 나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큰골
소시랑봉 아래에 있는 큰 골짜기로, 행정구역으로는 유사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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