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장군과 곤지바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2812

역사의 위대한 인물은 그 시대가 지닌 불행한 정황 속에서 영웅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역신(逆臣)이 되기도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하고자 애쓴 충신 신립장군, 역사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죽음으로 스러진 그의 이름을 영웅으로 자리매김하며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곤지암(昆池岩)이 조선시대의 명장 신립 장군으로부터 유래된 역사와 전설과 유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귀한 우리고장의 자랑이다.

 

충주를 떠나 이천 땅으로 접어들면서 상여를 멘 군사들이 장군을 불렀다.

장군님?”

오냐, 에헴!”

믿기지 않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가끔씩 장군을 부르는 소리가 상여를 흔들었고 상여에서는 생시처럼 대답과 동시에 큰 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경사가 심한 고개는 가팔랐고 군사들은 내리쬐는 햇빛아래서 땀에 흥건히 젖은 몸으로 장군의 시신을 담은 상여를 메고 오르느라 숨이 가빴다.

대장군님?”

상여 앞의 군사가 다시 대장군을 불렀다.

에헴!”

대답처럼 들리는 장군의 목소리가 현실인지 환청인지도 분간키 어려운 지경이었다. 극도의 허망함과 슬픔에 사로잡혀 군사들은 오히려 장군이 자신들을 끌고 간다고 여겼다.

충주 들녘 너른 벌판을 호기롭게 말을 달리는 대장군의 환영이 금방이라도 상여를 열고 나올듯한 분위기였다. 구척장신의 장군의 몸은 무거웠다. 수십 명의 군사들이 걸머멘 상여가 벌음을 뗄 때마다 휘청거렸다. 앞장서서 요령을 흔드는 군사가 애달픈 진혼가를 부르면

~, ~.”

군사들이 구성진 소리로 화답하며 느린 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신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던 장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적군에게 패한 장수가 되어 지금 영원한 안식처로 가는 길이다. 꼬박 사흘을 메고 오는 상여였다. 군사들은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제대로 먹지 못해 비틀거리면서도 정신만은 강물처럼 맑았다.

가끔 구경나온 백성들이 음식과 물을 건네주는 마을도 있었지만 광주로 가는 길은 큰 고갯마루 두개를 넘어야했다. 첫 번 고갯길을 상여를 메고 올라가던 군사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아무래도 한참 쉬어야 기운이 날판이었다. 요령을 든 군사가 걸음을 멈췄다.

여보게들 이 고개에서 쉬어가게나?”

그러세 아직 장지인 곤재 까지는 삼십 리도 더 남았지 않았나?”

우리와 함께 오시는 장군님도 잠시 쉬어 가셔야 힘이 날걸세

군사들은 고갯마루에서 상여를 내려놓고 곤지암으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을 바라보았다.

상여에는 적군에 쫓겨 충주 달천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신립장군이 누워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검을 부정하듯 상여길 내내 군사들이 부르면 기침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 또 떠나세 오늘 해 안으로 장지에 당도해야 할 걸세.”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군사들은 또다시 상여를 메었다. 흰 바지저고리 차림의 촌민들이 간혹 지나다니는 고갯길 양옆으로는 하얀 싸리 꽃이 피어있었다. 밥풀 같은 하얀 꽃이 허기를 참으며 걷는 군사들의 눈에 이밥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장군의 염력이 자신들을 꼼짝없이 지휘하는 마당에 배고픔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한동안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고개를 내려오도록 계속되었다. 얼마를 더 왔을까 눈앞의 이 큰 고개만 넘으면 평평한 대로가 이어진 곤재 쪽이라고 군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웅성거리는 틈새에서 누군가가 상여를 향해 장군을 다시 불렀다.

장군님?”

일순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긴장감으로 더 조용해졌다.

, 이상하다. 대장군님?”

또 다른 군사가 더 큰 소리로 장군을 불렀으나 메아리처럼 돌아온 건 그 소리뿐이다.

, 장군님이 대답을 안 하시네? 완전히 돌아가신 거 아냐?”

누군가 비감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러게 장군님 넋이 하늘로 오르셨나 보네.”

여기저기서 아우성과 탄식소리가 들렸다. 군사들이 상여를 내려놓았다.

이 고개 만 넘으면 장지가 가까운 곤지암인데 돌아가시다니?”

장군님이 여기서 아예 하늘로 오르셨네, 이 고개 넘기가 힘들어 우리 장군님이 북망산천으로 가셨다네.”

비통한 어조로 말을 마친 군사가 통곡을 하며 상여 아래 엎드렸다. 그를 뒤따라

장군님! 대장군님!”

여기저기서 군사들이 장군을 부르며 통곡을 했다. 조용하던 고갯마루가 군사들의 울음소리로 낭자했다. 부모를 잃은 듯 땅을 치며 울부짖는 군사들의 슬픈 호곡소리가 멀리 마을까지 펴져나갔다. 이천 넋고개에서 영혼이 승천했다는 신립장군, 나라는 명장을 잃고 군사들은 훌륭한 장수를 잃고 백성들은 의지했던 영웅을 잃은 것이다.

 

대장군 신립, 그는 어려서부터 출중한 무예실력을 타고난 장수였다. 22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로 조선 선조임금 때 오랑캐 족인 이탕개가 그곳의 여러 호족들과 협공으로 북방을 침입해 왔을 때 출전하여 그들을 토벌하고 이탕개의 목을 베었다. 오랑캐들의 잦은 침략으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은 신립만 나타나면 환호를 하였다. 우리나라를 넘보던 적군의 장수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피해 달아났던 장군이 신립이다. 그는 함부로 조선을 넘보는 왜인들과 오랑캐를 무찌른 맹장이며 두만강 너머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하며 괴롭히는 야인(野人)들을 소탕한 명장이었다.

평소에는 자상하며 부하들을 아끼고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지만 전장에서는 감히 대적하는 장수가 없었다. 눈부신 흰 말을 타고 활과 칼을 든 비호처럼 빠르고 날랜 구척장신의 장군이 보이면 적군을 지휘하는 대장들조차 줄행랑치기 바빴다.

선조임금도 장군을 나라를 지키는 큰 성벽과 같이 신임하였다. 임금은 넷째 아들 신성군(信城君)과 신립의 딸을 혼인시키면서 부원군인 신립장군을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여겼다. 장군이 북방 호족들을 토벌할 때였다. 적으로 잡혀온 늙은 호족 하나가 장군 앞에 엎드려

장군 저에게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시집도 못간 처녀로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와 제 딸의 목숨만 설려주신다면 그 은혜에 보답코자 저의 전 재산과 딸아이를 바칠 것입니다.”

호족은 눈물로 애원하였다. 그 옆에는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허리에 달빛처럼 흰 얼굴을 지닌 아름다운 처녀가 간절한 눈으로 장군을 응시하며 아비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애원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절세에 보기드믄 미인이었다. 철의 심장을 지녔다고 믿던 장군의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의 지휘 하에 있는 전선, 또 혁혁한 전공으로 호족들의 생사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였다. 크고 검은 처녀의 눈에 그렁거리는 눈물이 장군의 젊은 혈기를 당장이라도 무너트릴 만큼 애절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은 장군은

여봐라 저 아비는 반드시 제 딸의 아름다운 미모와 간계를 앞세워 능히 한 나라라도 무너트릴 해를 끼칠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살려두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힐 터 어서 목을 치라!”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사색이 되어 벌벌 떠는 아비와 달리 처녀는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장군을 쏘아보며

장군, 내 죽은 원혼이 언젠가는 장군의 말발굽을 휘 감으리다!”

싸늘한 말과 태연한 모습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듯 차가웠다. 하지만 전쟁에서 인정은 금물이다. 처녀도 아비도 시퍼런 칼날아래 목이 잘려 쓰러졌다. 죽고 살기로 싸우는 전장에서 어찌 억울한 죽음인들 없을까 장군은 처녀의 망령을 애써 잊었다.

이때 나라는 임진년에 20여만 명이나 되는 왜적들이 쳐 들어와 조정이 갈팡질팡 하게 되었다. 자신의 영화에만 급급한 정승들의 무사안일 한 정치가 시대를 끌고 가는 시기였다. 지방 관리들이 왜나라(일본)의 심상찮은 낌새를 알고 왜적이 쳐 들어올 것이라는 예견된 보고서와 계책마저 미친 짓 이라고 내칠 정도였다.

전하, 지금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지경입니다. 얼른 신립을 대장군으로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왜적들이 경상도 땅으로 물밀듯이 쳐 들어오고 나서야 사태가 급박해짐을 깨달은 신하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한성부사로 있는 신립을 전장에 파견하도록 임금께 청원하였다. 임금은 신립이 자신을 든든히 지켜주는 신하로 남아있길 바랬다. 한시도 곁에 없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충신이며 심복이 신립이었다.

신립공은 나의 조아(날카로운 발톱과 예리한 어금니)와 같은 사람으로 나를 호위하고 보필해야 하는 사람인데 어찌 전쟁터인 사지로 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거절하였다.

전하, 어찌 전쟁을 평정하는데 신립만한 장수가 있겠습니까? 나라를 구하려면 신립이 왜적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옵니다. 윤허 하소서?”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둔 신립이야말로 왜적들을 물리치는 막강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신하들이 거듭 임금을 졸랐다. 마침내 임금은 신립에게 전쟁에 나가 싸울 마음을 물었다.

전하,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싸우는데 목숨이 어찌 구차하겠습니까? 청컨대 김여물을 제 휘하에 둘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신립은 나라를 위해 장수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무고한 죄로 옥사에 갇혀있던 김여물을 자신의 종사관으로 삼기를 청원했다. 신립이 지목한 김여물은 용맹스럽고 대담한 장수였다. 자신의 무술을 날마다 새롭게 갈고 닦았다. 손자병법에서 익힌 전법으로 군사들을 연습시키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태평성대라고 노래하는 벼슬아치들에게는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가 북방의 의주목사로 있을 때였다. 중국의 큰 장수가 압록강으로 놀이를 와 김여물을 청했다. 김여물은 백우선(白羽扇)이라는 큰 부채를 즐겨 갖고 놀았는데 그가 백우선을 한번 휘두르자 백여 명의 말을 탄 병사가 일사불란하게 강기슭에 진을 치고 부채의 움직임에 따라 향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크게 놀란 중국의 장수는 그를 무고하기에 이르렀고 조선의 정승들은 유언비어를 퍼트려 옥에 가두어 버렸다. 신립은 그를 뛰어난 장수로 알아보고 자신과 함께 왜적들을 무찌르는 선봉장으로 삼았다. 하지만 제대로 조련된 군사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드디어 신립이 임금께 출장을 알리자 임금은 손수 지니고 있던 상방검(尙方劍)을 내리면서

그대가 경상도 순찰사 이일 이하 모든 장수와 장병들을 이 칼로 지휘하며 왜적들을 물리치고 승전보를 보고하라

고 지시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충신 신립장군이 다시 튼튼하게 세워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가득담긴 칼이었다.

장군은 한양을 떠나 왜군들이 개미떼처럼 밀려온다는 경상도 쪽으로 군사들을 끌고 나섰다. 외세의 침략에 지치고 피폐한 나라, 제대로 훈련된 군사들이 아닌 여기저기서 모집한 오합지졸의 군사들을 데리고 장군이 한양을 떠나 충주에 이르렀을 때 아군은 수천 명에 불과하였다. 싸워서 이겨야겠다는 의지를 찾아볼 수없는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모인 군사들이다. 신립이 승리를 기대하였던 경상도 순찰사 이일도 상주전투에서 패하여 신립의 진지로 찾아왔다.

그대는 경상도 순찰사로 전장에서는 목숨을 내 놓고 싸워야 하거늘 어찌 패장의 모습으로 쫓겨 온단 말인가? 내 당장 죄를 묻고 싶지만 그대는 적군의 동태를 보고하고 대책을 말해보라?”

장군은 머리끝까지 치미는 노기를 누르며 이일의 목을 베려던 마음을 돌려 대책을 묻고 대비를 하기로 했다.

장군, 왜적과 우리군은 병력의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이대로 싸움을 한다면 우리군은 크게 패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싸우지 말고 한양으로 후퇴해서 병력을 모집한 후에 싸워야 승리를 잡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대는 또다시 아직 싸우지도 않은 군사들의 사기마저 떨어트리려고 하느냐? 군사들의 선봉으로 앞장서서 그대의 죄를 씻으라.”

신립의 추상같은 명령이 충주 벌판을 가로질렀다. 신립이 진을 친 탄금대 절벽은 앞으로는 넓은 벌판이 이어져 탁 트였으나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남한강 물이 흐르는 후퇴할 수없는 요지였다.

장군님 이곳은 우리에게 불리한 지형입니다. 문경 조령협곡에다 진을 치고 고개를 넘는 적군을 맞아 싸우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지형을 살펴 본 김여물이 건의했다. 충주목사 이종장도

이곳은 앞이 넓은 평지로 적에게 우리의 진지가 훤히 보입니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조령협곡에다 진을 치고 적을 유인해야 합니다.”

라며 문경새재로 옮기기를 권하였다. 이에 여러 장수들도 합세하여 말하였으나 신립은

그렇지 않다. 적을 벌판으로 끌어들여 말을 탄 우리 기병이 먼저 기선을 잡는다면 보병인 적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적이 지금 조령 밑에 와 있는데 우리가 조령으로 옮겨가다가 적이 먼저 조령을 점령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대로 배수진을 쳐야한다. 훈련 상태가 미숙한 우리군사들이 승리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하도록 해야만 한다.”

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탄금대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배수진을 쳤다.

이튿날 왜군은 조령에 조선군이 매복해 있으리라 예상하고 조심조심 고개를 넘었으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충주까지 진격해 왔다. 충주성 아래 탄금대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신립의 군대는 기병 천 여 명이 나아가 적을 물리쳤다.

! 모두 나가 적을 무찌르라! 왜놈들은 이미 선두가 무너졌다!”

말발굽아래 적군 수 백 명이 쓰러지고 목숨을 잃었다. 일시적으로 전투는 우리아군에게 우리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왜적은 벌떼같이 덤벼드는 수많은 보병들이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아군의 피해가 속출했다. 그들은 신무기인 조총과 포탄을 터트리며 열악한 신립군사들을 사지로 몰았다.

왜군은 아군들이 몰리는 탄금대를 포위하고 빠져나갈 수 없도록 조여들었다. 말을 탄 기병들이 몰려오는 적을 향해 결사적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충주벌판 너른 들녘은 전날 밤 내린 비로 말의 발목이 빠질 정도로 수렁이었다.

적은 수 십 만의 대군을 끌고 오긴 했지만 바다를 건너 온 보병에 불과 했고 우리군은 말을 타고 달리며 싸우는 기병이라서 속전속결로 적을 치고 승리를 하겠다던 신립의 계략이 물거품이 된 상황이었다. 이미 전운은 아군에게 기울고 있었다. 후퇴할 수도 진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 신립을 기다렸다. 장군은 부하들에게 마지막 최후의 공격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 뒤 김여물과 함께 적진으로 나갔다. 그의 앞에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왜군들이 속출했다.

너른 벌판이 피비린내와 죽어 넘어진 시체 주인을 잃고 울부짖는 말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태산처럼 밀려드는 왜군들이 탄금대 절벽까지 바글거렸다. 저 멀리 북방 만주벌판에서 말을 타고 나가 승승장구 싸우던 위력만 믿던 그였기에 이런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리란 것은 치욕이며 죄였다. 언젠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부녀의 정경이 떠오르고 꽃보다 아름다운 미모로 자신의 마음을 흔들던 처녀를 살려주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일순 들었다. 비정한 칼날아래 스러지며 흘겨보던 북방처녀의 원혼이 자신을 이런 사지로 끌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죽음을 각오한 대장부답게 함께 싸우던 김여물을 돌아보며

남아가 전장에서 죽을지언정 어찌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리오. 그대는 아직 젊은 나이요, 싸우다 죽지 말고 갈 길을 가시오.”

신립은 최후의 말을 마쳤다. 김여물이 살아나갈 것을 당부하는 말이었다.

나도 장군을 따르겠소. 대장부가 나라를 위한 죽음을 아껴 무엇 하리오.”

김여물 역시 죽음을 각오했다.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왜적 수십 명을 목 베였다. 그 순간 신립이 타고 있던 말과 함께 수십 길 탄금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찰나의 순간 김여물도 허공을 가르며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시퍼런 강물이 첨벙 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두 사람을 받았다.

대장군과 부하장수가 탄금대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것을 본 군사들이 줄줄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왜군에게 죽기보다 스스로 몸을 던지는 죽음이었다. 싸움에 진 군사들에 이어 아낙네들까지 더러운 왜놈의 발아래 목숨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물고기 밥이 되자는 비참한 심정으로 탄금대 절벽을 뛰어내렸다. 낙엽처럼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들과 신립, 김여물을 비롯한 수많은 시체들을 삼킨 강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드넓은 벌판은 자욱한 포성연기로 뒤덮였고 주인 잃은 말들의 슬픈 울음이 너른 벌판을 채웠다.

 

신립장군은 곤지암이 내려다 대석동 유택에 안장되었다.

멀리 태화산으로 부터 흘러온 개천과 남이고개 아래로 흘러온 물이 만나는 마을이 곤지암이다. 이 마을에 꼭 고양이처럼 생겨서 묘()바위라 불리는 묘한 바위가 있다. 마을에 흉년이 들거나 변고가 있을 때면 마을 사람들이 달빛이 환한 보름날 밤, 집집마다 쥐를 잡아 자루에 담아 바위 밑에 묻는 성황당 바위였다. 또 쥐띠에 태어난 사람들은 쥐날이 되면 혹시 화를 입을까 우려하여 바위 앞을 피해 멀리 돌아다니는 게 마을의 전통이었다.

그런데 장군의 묘소를 쓴 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묘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면 영락없이 말이 움직이지 않아 내려서 걸어야만 하는 변고였다. 급히 한양으로 올라가야하는 파발이나 물품도 별수 없이 내려서 바위를 지난 후라야 말이 움직이는 괴변이 이어졌다.

어느 날 담력이 센 장수가 묘바위 앞을 지나게 되었다. 휘하에 거느린 부하들이 여러 명이어서 인근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수가 탄 말이 바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수는 아차 싶었지만 다른 길이 있을 리 없는 외길이다. 과연 장수가 말에서 내려 걸어갈까 하는 구경을 하려는 백성들이 길거리에 떼거리로 모여 있었다. ‘내가 이 바위 앞을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면 두고두고 조롱감이 될 것이다. 무슨 묘책이 없을까장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온 몸의 기를 모았다. 크게 한번 호통이라도 치고 지나가야 체면이 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큰 칼을 차고 갑옷을 입은 당당한 풍채의 장수가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호령을 했다.

신립 장군은 들으시오! 그대는 왜적과 싸워서 진 패장이오. 아무리 장군의 원통함이 크다고 하나 염력을 통해 이 바위 앞을 지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무슨 온당치 못한 처사란 말이오? 장군은 당장 원혼을 거두시고 장군의 체통을 지키시오!”

쩌렁쩌렁 울리는 호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햇빛이 쨍쨍하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검은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구름은 순식간에 캄캄한 천지를 만들더니 세찬 비바람을 뿌렸다. 하늘에서는 큰 용 두 마리가 엉겨 붙어 싸우는 듯 천둥을 치고 번개를 날렸다. 사람들이 이 무슨 변고냐고 기겁을 하고 물러났다. 그 순간 뇌성벽력을 치는 천둥번개가 바위를 번쩍 때렸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꺼지는 엄청난 힘이었다. 바위는 두 동강이 나면서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얼마나 천둥벼락이 컸는지 바위를 둘러싼 낮은 평지가 움푹 파이며 큰 연못이 생겼다. 비바람은 연못에 물을 가득 채우고서야 그쳤다.

얼마 후 연못에 선 두 갈래의 바위 중 큰 바위 갈라진 틈새에서 향나무 한그루가 자라났다. 장군의 기개처럼 올곧고 늘 푸른 기상을 지닌 나무였다.

현재 곤지바위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6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그 후 연못은 복개되어 곤지암 초등학교와 주민들의 주택지로 변질되었다. 바위틈에서 자란 향나무는 400년이 넘는 수령을 지닌 채 광주시 보호수로 역사의 궤적을 묵묵히 가지마다 피워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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