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월리 지곡팔경 이야기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479

단종 임금은 왕위를 숙부인 세조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등이 다시 상왕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조리 참형을 당했다. 이에 단종은 노산군으로 (盧山君) 격하되어 머나먼 강원도 땅 영월로 향하는 유배 길에 들게 되었다.

오십 명이 넘는 호송 군사들에 에워싸여 떠나는 길이 이토록 험한 것을 어린 임금은 처음 알았다. 살아서 다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귀양길이다.

수많은 백성들은 단종이 궁궐을 떠나 한양을 벗어나도록 길거리에서 혹은 담장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엎드려 울었다. 단종도 그 광경을 보았다. 호송하는 군사들과 왕방연도 묵묵히 백성들의 통곡소리와 탄식을 들었다. 하지만 새로 왕위에 오른 세조임금의 왕명이 지엄한 이상 먼 귀양길을 서둘러 가야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이곳까지 실려 오길 벌써 꼬박하루 흔들리는 가마 속에서 깊은 절망과 시름에 잠겨 이 나라의 왕손으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였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여봐라, 물 좀 다오?”

유월의 햇볕은 그늘에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죄인에게 주는 최소한의 음식만 제공받을 뿐 단종은 물 한 모금도 마음대로 먹지 못해 목이 타고 머리가 아팠다. 상왕에서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의 몸으로 바뀐 단종은 가마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밖은 말발굽소리와 군사들의 발소리만 부산할 뿐 대답이 없었다.

내말을 못 들었느냐? 물 좀 다오?”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질렀을 때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마 옆으로 다가섰다.

마마, 송구하옵니다. 왕명으로 일체의 음식물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고정 하옵소서,”

왕방연의 이마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새 임금의 명령을 어길 때는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어린 상왕을 유배지로 모시고 가는 처지가 그는 한없이 송구했고 고통스러웠다. 왕명을 거역했다가는 그도 가문도 대역죄로 몰려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화를 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정은 어린 임금을 내쫒은 자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상왕의 배후를 캐느라 혈안이 되어있었고 유배길 내내 전 임금에게 죄인에게 내리는 음식이외의 어떠한 음식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 터였다.

단종임금이 숙부에게 권좌를 빼앗기고 머나먼 영월 땅으로 귀양을 간다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분노와 두려움에 떨었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섬기는 조선의 백성들이다. 한양을 벗어나자 여지없이 흰옷을 입은 백성들이 나와서 엎드려 통곡을 했다.

백성들은 어린 임금이 가는 귀양길을 보려고 찐 감자나 미수가루 설기떡 등을 해서 갖고나왔다. 그들 앞을 군사들이 가로막았다. 죄인에게 함부로 음식을 건넨 자에겐 죄를 묻겠다는 서슬 퍼런 칼날이 앞을 막았다.

허허, 말세로세 어찌 숙부가 어린 임금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임금을 저리 혹독하게 귀양을 보낸단 말인가?”

아이고 불쌍해서 못 보겠네, 돌아간 선대임금님들이 어린 왕 한분 못 지키다니··· 쯧쯧······.”

여보게, 말조심하게 지금이 어느 때라고 새 임금을 비판하나 자네 목이 서너 개는 되나?”

나직한 말소리였지만 백성들이 하는 소리를 금부도사인 왕방연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못 들은 체 군사들에게 일체의 민간인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느덧 삼전도를 거쳐 경안역을 지나면서부터 단종은 운명을 체념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말씀도 없이 고요했다. 나무그늘에 쉬면서 불볕이라도 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긴 하루가 일행이 지월리로 들어서면서 산그늘이 길어지고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다. 길가의 백성들도 민가도 드문 적막한 산골마을이었다.

호송대장 왕방연은 이 마을에서 오늘밤을 유숙하리라 생각하며 군사들과 산굽이를 돌았다. 깊은 산중에 쉴 곳이라고는 이 마을밖에는 없을 것이다. 낮게 엎드린 십여 채의 민가에서 저녁밥을 짓는지 초가지붕 굴뚝으로 연기가 흩어졌다. 점심에 주먹밥 한 덩이를 먹은 뱃속이 무섭게 시장했다. 죄인인 왕도 군사들도 모두 자신처럼 시장할 것이다.

마을이 시작되는 동구 밖 몇 백보 앞에 큰 나무가 보였다.

저 나무아래서 오늘밤은 쉬어가겠다.”

그의 명령에 군사들의 발걸음이 부산해졌다. 단종임금도 감았던 눈을 뜨고 마을을 바라봤다. 쥐죽은 듯 조용한 마을이다. 몇 몇 촌로들이 정자나무 그늘아래 모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일행이 다가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일행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도 볼 수 없는 갖가지 음식들이 넓은 멍석에 가득 차려져 있었다.

상왕전하, 오시는 길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소인들은 이 마을의 백성들 입니다. 부족하지만 상왕전하의 수라상을 마련했사오니 옥체를 생각하셔서 조금이라도 잡수시옵소서.”

갓을 쓴 선비가 단종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를 따르는 하인이며 촌로들도 모두 엎드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감히 누가 왕명을 어기고 음식을 차렸느냐? 거기 엎드린 그대는 누군가?”

추상같은 왕방연의 물음에 엎드렸던 선비가 고개를 들었다.

장군, 이 마을에 사는 생원 강첨이라 하옵니다. 죽을죄를 짓는 줄을 알면서도 하늘같은 상왕전하께 이 나라 백성의 마지막 충성이라 생각하고 조촐한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미련한 백성의 충정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엎드렸다.

장군, 이 미련한 것이 장군의 허락 없이 음식을 대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내 집 앞을 지나치시는 상왕전하께 백성 된 도리로 어찌 냉수 한 그릇이나마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추후 반드시 죄를 받겠사오니 부디 차린 음식을 전하와 군사들에게 대접할 수 있도록 눈감아 주시옵소서 장군!”

통곡에 가까운 선비의 말소리가 단종임금의 귀에까지 들렸다. 한창 혈기왕성한 열일곱 살의 청년의 허기진 뱃속이 음식을 보자 꼬륵꼬륵 요동치는 것을 막을 힘이 없었다.

잠시 왕방연은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선비의 말은 옳았다. 하늘로 머리 둔 백성이라면 어린 임금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 참담함에 가슴 아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잘 알았다. 너의 충정을 굳이 막을 생각은 없다. 네가 마련한 이 음식을 전하께 올려라, 나와 군사들도 먹을 것이다 너의 갸륵한 정성이 후세에는 충정으로 기록될 날이 반드시 온다고 하더라도 내일 당장 누군가 포도청에 밀고를 해서 너에게 죄를 묻더라도 내 원망을 말거라.”

장군, 황공합니다. 소인의 죄를 달게 받겠사오니 어서 음식을 상왕전하와 드시옵소서.”

말을 마친 선비는 가마에서 내린 단종임금을 멍석위로 모셨다. 인절미, 닭백숙부터 구절판까지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본 임금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 이 마을의 행세하는 집안인 듯 선비의 지시에 따라 하인들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전하, 아무걱정마시고 이 자가 대접하는 저녁수라를 드십시오. 나라의 녹을 받지 않는 백성의 충심입니다. 저도 군사들도 다 함께 먹겠사오니 안심하시고 오늘밤은 여기서 쉬어가겠나이다.”

임금을 어버이로 떠받들던 백성이 차려 논 음식상까지 치우라고 할 만큼 모진 마음이 왕방연에게는 없었다. 이 음식상이 어쩌면 상왕의 마지막 잔칫상이 될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수라상과는 별도로 군사들의 음식도 푸짐하게 마련한 듯 했다. 주린 배를 움켜쥔 군사들의 간절한 눈빛을 금부도사 왕방연이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뱃속도 허기에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백성은 충성심이 지극하여 집 앞을 지나는 상왕마마께 수라를 올린 것이다. 죄가 되는 줄 모르는 백성의 마음을 어떻게 거절 하겠는가 나중에 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야 할 것이니 너희들도 이 음식으로 배부르게 저녁을 먹어라.”

금부도사의 말이 끝나자 단종임금이 수라를 들었다. 깔깔한 입안을 물로 행구고 천천히 배불리 치밀어 오르는 분노조차 꾹꾹 눌러가며 밥을 먹었다.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의 국밥을 먹고 이틀을 걸어 온 군사들은 선비가 차려 논 음식이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너도나도 기름진 이밥에 닭고기가 둥둥 뜬 국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모처럼 떡이며 부침개 막걸리까지 한 잔씩 마신 군사들은 들판에 세운 장막에서 잠을 청하고 일부는 보초를 섰다.

그날 밤 선비는 단종을 집으로 모셔갔다. 달이 휘영청 뜬 밤이다. 모내기를 끝낸 논배미의 잔잔한 못물에서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듯 떼거지로 울어댔고 못물위에 뜬 달빛이 교교한 거울속의 환상처럼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달빛에 뒷산 그림자가 길게 선비의 사랑채까지 내려와 앉는 광경을 바라보는 임금의 용안에 눈물이 맺혔다. ‘, 내 신세가 농사를 짓고 사는 백성의 처지만도 못 하구나, 지금쯤 왕비는 어떤 곤경을 치르고 있을까,’ 가슴을 난도질 하듯 왕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혼례를 올린 지 3년이 지났다. 세상에서 가장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단종과 왕비였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조용히 상왕으로 살려고 했던 부부였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를 복위시키려다 죽은 사육신이 귀양길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미웠다. 통곡하다가 혼절하는 왕비, 다시 살아서 만날 수 있을지 누구도 나서서 위로하는 자가 없던 궁궐이다.

수양을 왕으로 추대한 무리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한 단종의 목숨은 죄인 아닌 죄인으로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앞산에서는 짝을 찾는 부엉이가 길게 울었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끝없이 밀려오는 서러운 상념을 견디지 못해 눈물이 흘렀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선비가 식혜를 받쳐 들고 단종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상왕전하,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미처 준비를 못해서 이런 험한 곳으로 모시게 되어서 송구하옵니다.”

아니오, 그대의 충정이 훗날 후환을 만날까 두렵소, 그대 같은 백성이 사는 이 마을 이름이 무엇이오?”

상왕전하, 이 마을은 지월리라고 하는데 산천이 수려하고 아름다워 시인들과 풍류객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이 마을은 광주에서도 이름난 절경이 많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은 마을입니다.”

그렇소, 남한산성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 이 마을 이야기나 들려주시오, 잠도 안 오고 시름이나 덜 생각이오.”

황공하옵니다. 상왕전하 시름을 거두시고 침소에 드시는 시간까지 무료하신 어의를 제 부족한 이야기로나 달래옵소서.”

선비는 새파랗게 젊은 상왕의 잠 못 이루는 너무 많은 슬픔을 잘 알았다.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뻘 밖에 안 되는 어린 임금이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첩첩산중 오지인 영월로 귀양을 간다는 것은 하늘이 무심한 처사였다. 밤을 새더라도 말동무를 해드리면 기나긴 밤이 흘러갈 것이다. 선비는 황공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상왕전하, 이 마을은 지월리 마을의 팔경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여덟 군데 있사옵니다. 두어 군데에 얽힌 이야기만 올리겠습니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선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상감마마, 지월리 팔경 중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경수(鏡水)마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이 마을에 묵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정신없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소피를 보려고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 앞 연못에 달빛이 하얀 면경처럼 비추더니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비는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으나 아름다운 선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나무 뒤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연못에 엷은 안개가 깔려있어서 그 모습은 황홀하면서도 신비했더랍니다. 잠시 후 목욕을 마친 선녀가 옷을 입고 나비처럼 물위를 사뿐사뿐 날아가는데 선비가 홀린 듯 선녀 뒤를 쫒아갔습니다. 사방은 고요하고 모내기를 끝낸 논머리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구리도 울음을 그쳤으며 못물위로는 자유자재로 춤을 추며 날아가는 선녀의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답니다. 선녀는 두물머리 부근의 절벽인 낙화암에 사뿐히 앉더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며 날개를 다는 것이었습니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선비가 그때 하필이면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더랍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선녀는 그 자리에서 낙화암 깊고 깊은 물속으로 풍덩 빠졌습니다. 이승사람에게 함부로 몸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옥황상제님의 명을 어긴 선녀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지요. 선비 또한 너무 놀라고 허전해서 뒤 돌아서서 주막으로 돌아오는데 달빛에 비친 못물이 눈이 내린 것처럼 차갑고 환하더랍니다. 서리가 새하얗게 내려앉고 연못주위를 빙빙 돌며 주막을 찾지 못한 선비는 바로 코앞에 주막을 두고 얼어 죽었지요. 보름날밤이면 연못에 선녀가 내려오고 그러나 선녀를 본 사람은 이상하게도 죽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조심을 했으나 나그네인 선비는 그 걸 몰랐던 거지요 그래서 벌을 받은 겁니다. 또 다른 말씀을 올릴까요. 상왕전하

다정하고도 나직한 자애로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재미있구려, 또 무슨 말씀이 있으시오?”

, 상왕전하, 이 마을 뒤에 작은 절이 있사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절이 있는 산을 낀 두 마을이 겨우 보리농사로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월 대보름달이 뜨면 산봉우리가 마을까지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그림자가 말머리 형상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 말머리가 동쪽 마을을 향하고 있으면 동쪽 마을에 보리흉년이 들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또 남쪽으로 말머리가 향하면 남쪽마을이 보리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말이 자라나는 보리 싹을 뜯어먹어서라는 그럴듯한 말이 떠돌았습니다. 그래서 양쪽 마을사람들은 정월대보름날 산의 말머리 그림자가 자신들의 마을로 향하지 못하도록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람 먹을 양식도 없는데 보리가 자라기도 전에 말이 먼저 먹어치우니 흉년이 든다고 믿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서낭에 빌기도 했고 굿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어느 쪽으로 든 보름달 산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었지요, 이렇다보니 절의 신도는 줄어들고 시주를 낼 곡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스님이 묘안을 떠 올렸지요 그래 산의 정상에다 돌탑을 쌓는 거야 그러면 산의 지형이 바뀔 것 아닌가.’ 그날부터 스님은 가사장삼을 걸치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돌을 주워 모아 정성껏 돌탑을 쌓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커다란 돌탑을 완성시킨 스님은 너무나 자신을 혹사시켜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탑아래 쓰러져 죽었습니다. 얼마 후 정월대보름날 양쪽 마을사람들은 달이 뜨고 산의 그림자가 떠오르자 그림자가 자신들의 마을로 향하지를 않도록 간절히 빌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말머리가 아닌 스님이 고깔을 쓰고 바라춤을 추는 아름다운 그림자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해서 산을 올라가자 스님이 거대한 돌탑을 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쪽마을을 살리려고 탑을 쌓고 열반에 든 스님, 그 후로는 달빛이 돌탑에 걸려 다시는 말머리그림자가 마을로 비추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두 마을 사람들이 싸우는 일도 없어졌고 스님을 위해 부도를 세워주었습니다. 이 마을 국수봉의 유래입니다. 상감마마

임금은 백성들이 어떻게 자연을 숭배하며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깨달았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며 주인이라는 말은 임금이나 권력을 쥔 벼슬아치들이 그들을 더 옭아매는 구실에 불과했다.

 

그만 물러가 쉬시오, 그대의 이야기가 많은 위안이 되었소, 궁궐 안에서만 지내다 바깥으로 나오니 비로소 백성들 사는 모습도 보고 산천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건만 내 신세가 한심하고 박복해서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이라는 것이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이오.”

상왕전하, 너무 심려 마옵소서. 돌아가신 선왕마마들이 전하를 굽어 살피실줄 아옵니다. 아무 생각 마옵시고 침수에 드소서.”

선비는 공손히 큰절을 올리고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모시등걸이 진땀에 젖어있었다. 선비가 물러가고 얼마나 깊은 시간이 흘렀을까. 새벽녘이 돼서야 단종은 겨우 눈을 붙였다.

어지러운 꿈자리였다. 자신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는 흉몽이었다. 모든 권력을 쥔 무섭고 섬뜩한 숙부와 숙부에게 죄인으로 낙인찍혀 멀리 귀양을 간 수 많은 종친들의 얼굴도 스쳐갔다. 자신을 다시 임금으로 추대하려다 김질의 밀고로 모두 목이 베인 사육신의 피비린내 나는 얼굴들이 악몽처럼 겹쳤다.

비몽사몽에서 헤매던 단종이 군사의 호각소리에 눈을 떴을 때 희붐한 아침이 밝아 왔다.

전하 갈 길이 머옵니다. 단단히 수라를 드시옵소서.”

선비가 아침밥상을 들고 와 수저를 올렸다. 북어 국과 더덕구이 도토리묵 산채나물이 올라있는 정갈한 밥상이다. 입맛이 깔깔했지만 단종은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밖에서 군사들이 가마를 대령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어서 좋은 날을 기다리십시오.”

선비가 큰절을 올렸다. 굵은 눈물이 마른자리로 뚝뚝 떨어졌다.

그대에게 크게 신세를 졌네, 다시 돌아올 기약이 있다면 꼭 잊지 않고 자네를 찾아오겠네.”

말을 마친 임금이 차마 떼어지지 않는 발길로 가마에 올랐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큰 칼을 차고 말을 탔다. 다시 군사들이 왕이 탄 가마를 메었다. 가마 양옆으로 호송 군사들이 늘어섰다. 일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선비를 비롯한 몇 안 되는 백성들이 멀리까지 따라왔다.

흔들리는 가마 밖으로 단종은 마을 풍경들을 비로소 자세히 바라보았다. 어디인지 알 길은 없으나 매우 아름다운 산세와 백옥같이 깨끗한 물길이 너럭바위 아래로 흘러내리는 절경이 눈길을 사로잡는 마을이었다.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연못인지 알 수는 없으나 푸른 물길을 가둔 큰 연못위로는 아름다운 연꽃도 피어있었다.

개울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거나 아이들이 어울려 고기잡이를 하는 정겨운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늦은 아침을 짓는지 모락모락 흰 연기가 오르는 초가집도 보였다. 한없이 평화롭고 순박한 농촌풍경들이 궁궐에서 숙부의 감시를 받으며 불안한 삶을 영위하던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달라서 단종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일지도 모른다.

며칠이 걸렸을까 단종은 영월 청령포라는 외진 곳으로 유배되었다. 삼면이 푸른 강으로 둘러싸인 귀양지였다. 배 없이는 건널 수 없고 육지와 붙은 산 아래 천길 절벽으로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땅이었다.

단종은 그곳에서 두 달 후 장마로 불어난 물을 피해 영월 관아 관풍헌에서 왕방연이 들고 온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아니 왕방연은 차마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지 못했다. 사약을 쏟고 자결할 결심을 하려는 그를 눈치 챈 관아의 군졸이 단종의 뒤에서 활시위로 단종의 목을 졸랐다. 단종이 죽은 것을 확인한 군졸이 활시위를 풀었다. 군졸은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죽었다.

 

세조의 명을 어기고 단종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영접한 강첨은 경기도 수군절도사를 지낸 강효정의 아버지로 지금도 지월리의 매봉 산기슭에 그의 자손들과 묻혀있다.

목록 글쓰기 답글 수정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