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소와 할애비소 설화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613

퇴촌면 관음리는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관음 3리는 천진암이 있는 우산리 바로 아래 마을로 앵자봉까지 이르는 긴 계곡을 끼고 있다. 이일대의 경관이 수려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인근 계곡에 할미소, 할애비소라는 이름의 깊은 가 있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무슨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여서 자못 흥미를 느끼게 한다. 여름철이면 행락객들이 줄지어 찾아들어 이 일대가 혼잡을 겪는데, 지금은 음식점이 이 를 차지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기에는 다소 부담이 가는 장소가 되었다.

 

예부터 천진암 일대는 농지가 없는 산촌이라 대부분 나무를 해다 팔거나, 나물을 채취하는 등 산에 의존해 살았으므로 살림이 그리 넉넉칠 못했었다.

이 작은 산골 마을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유난히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는데 나이 쉰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가난한 처지라 양자를 들일 입장도 못 되어 서로를 의지한 채 쓸쓸히 살고 있었다. 다행히도 금슬이 유난히 좋아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여서 자식 없는 쓸쓸함을 부부간의 정으로 메울 수 있었다.

아내 나이 쉰이 되던 해, 어느 날부턴가 한 달에 한번 하는 달거리가 끊어지더니 허리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여자로서의 한도가 찬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배가 불러오더니 배 속에서 무언가가 자꾸 꿈틀거리기 시작 했다. 몸은 자꾸 노곤해지고, 식욕도 떨어지는데다가 무엇이든 먹기만 하면 올려내서 중병이 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점차 쇠약해져서 결국 몸져눕게 되었는데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아내는 그것이 태동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마을 사람들도 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봐요, 난 인제 죽으려나 봐요. 나 죽는 건 괜찮은데 당신 땜에 어떡해요?”

뭔 소릴 하는 겨? 기운 차려. 임자 죽으면 나도 끝나는 겨.”

남편은 죽기 전에 한이라도 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살림이긴 했지만 돈을 마련하여 의원을 불렀다.

태기가 있네요. 벌써 댓 달이나 된걸요. 몰랐나요?”

뭐라구요? 애기라구요? 참말 애기예요? 죽을병이 아니구요?”

부부는 뜻밖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다 뛸 듯이 기뻐하며 금세라도 털고 일어날 것처럼 기운을 차렸다. 그날부터 좋다는 것은 다 구해먹으며 몸을 돌보았고, 드디어 열 달 만에 아기를 낳았다. 그 기쁨이 어찌나 큰지 인근 마을까지 소문이 파다했다.

세상에 쉰둥이여. 그 나이에 참 용하기도 햐. 아들이라잖어.”

그러게 말여. 다행이지 뭐여. 말년엔 그래두 자식이 있어야지. .”

마을 사람들은 자기 일인 양 기뻐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오래오래 살라고 이름을 장수라고 지었다. 부부가 쏟는 공은 말로 다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어서 금이야 옥이야 다루는 바람에, 마을 아이들이 놀다가 행여 줘 박기라도 하면 마을이 떠나갈 정도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누구든지 우리 장수를 건드리기만 해봐라. 가만 안 놔둘 겨.”

부부의 극성이 유난스럽긴 했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나름대로 이해하는 가운데 오순도순 정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수가 마을 아이들과 마당에 나와 흙장난에 한참 마음을 팔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색 초라한 노스님이 아이를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혼자말로

아홉 해를 타고 났구먼. -…….”

하며 혀를 차는 것이 아닌가. 아이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키우던 장수 어미가 곁에서 키질을 하다가 이 이상한 소리에 그만 놀라서 급히 일어나 저만치 가는 스님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스님! 시방 뭐라고 하셨어요? 그게 뭔 소리여요?”

뉘신가요? 저 아이와 무슨 연고라도?……

우리 아들이구먼요. 근데 아까 하신 말씀이 무슨 소리여요?”

스님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아이가 타고난 명이 아홉 해라고 했다. 장수 어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다고 화를 냈으나 한편으론 한없이 불안해서 무슨 방도가 없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혹 부처님께라도 바친다면……. 아홉 수, 아홉수만 잘 넘기면…….”

나무아미타불......”

스님은 혼 잣 소리를 남기며 모퉁이를 돌아 이내 산속으로 사라졌다.

부부는 한동안 근심에 싸이다가 여러 곳으로 수소문을 한 끝에 시오리 밖에 있는 깊은 절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이가 다섯 살이니 앞으로 한 오년 절에 가서 살면 부처님의 가호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여 집을 친척에게 맡기고 아예 절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절로 입산한 다음부터 아이를 동자승처럼 삭발을 시키고 빨간 두루마기를 만들어 매일 그 옷을 입혔다. 그것은 일체의 잡귀가 침범하지 말라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빨간 옷이 주술적 의미로서의 부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여 아이는 늘 붉은 옷을 입게 되었다. 아이는 별 탈 없이 자랐고, 산속에서의 생활에도 나름대로 적응을 해 그런대로 즐겁게 생활하게 되었다. 스님들은 아이에게 글공부도 가르치고, 불경도 가르쳐서 날로 바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참에 아예 장수를 입적 시키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그래도 좋은 배필 만나 아들 딸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해유. 대신 부처님을 열심히 섬기죠.”

스님들의 권유를 부부는 극구 사양 했다.

그들이 입산한 지 어느덧 5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겨울은 한껏 깊어져 산간엔 눈이 자주 내리더니 근래 들어 가장 많이 내릴 만큼 산은 눈 일색이었다. 산사의 겨울은 절을 찾는 신도들도 발길이 뜸한데다, 유독 눈이 많이 내려 적막하기 이를 데 없어 바람과 풍경소리만 빈산을 울렸다. 겨울은 거푸 깊어지고 있었다. 이 겨울만 무사히 보내면 장수나이 열 살이 되는데다, 아홉 해만 넘기면 괜찮다고 했으므로 부부는 어느 정도 안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큰일은 긴장을 놓는 순간 벌어지는 법이 아닌가. 늘 바늘에 실 따라다니듯 장수를 따라 다니던 그의 어미는 긴 하품을 하며 오랜만에 겨울 오후의 아늑함에 젖어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비몽사몽 잠에 빠져들어 정신이 혼미했다.

엄마 나 뒷간 가구 싶어.”

어느 정도 긴장을 놓은 상태라 장수 어미는 그리 하라고 허락을 하고 말았다.

그랴, 얼릉 다녀와. 조심해야 되는 거 알지? 에미가 여기서 문 열고 보고 있을 테니까 얼릉 다녀와.”

!”

그런데 장수가 뒷간에서 볼 일을 보고 막 문을 나서자 하얀 토끼 한 마리가 힘없이 마당구석에 앉아 장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수는 아무리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 해도 어른들과의 생활이었기에 늘 심심함을 느꼈는데, 난데없는 토끼가 나타나자 그만 그 귀여운 모습에 정신을 팔고 말았다. 토끼를 잡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뒤를 좇았는데 야생토끼인지라 사람을 낯설어 해서 금세 절 뒤쪽으로 달아났다.

장수에겐 토기를 쫓는 것 자체가 놀이였다. 아홉 살 장수는 아직 위험에 대한 판단력보다는 토끼에 대한 끌림이 더 클 나이이므로 무작정 토끼를 쫒아갈 수밖에 없었다. 장수 어미는 혼곤한 잠속으로 이미 빠진 상태였다. 절 뒤쪽으로 달아난 토끼는 쌓인 눈 위에 앉아 마치 장수를 홀리듯 눈을 대록 거렸다. 장수는 눈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은 분간하질 못했다. 절을 몇 바퀴 돌며 씨름을 하는 동안 오기까지 발동된 상태였다. 바람에 밀려 눈이 덜 쌓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올라 있는 힘을 다해 토끼를 향해 날쌔게 달려들었는데, 여러 날 굶어서 힘이 없는 토끼는 마침내 장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절 뒤편으론 깎아지른 벼랑이 있었는데 평소 밧줄을 매어 놓아 위험을 알리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그 지점에서 토끼를 붙잡는 바람에 발이 미끄러지며 절 아래로 그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

장수의 비명과 바람소리가 산을 울렸으나 계곡이 너무 깊어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곤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다. 절이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스님들도 다들 제각기 들어 앉아 불경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눈은 계속 내려 장수와 토끼의 흔적을 지우다가 갑자기 뚝 그쳤는데, 어처구니없게도 햇살이 눈 위를 짱짱히 내리비춰 화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깜빡 잠에서 깬 장수 어미는 장수가 곁에 없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뒷간에 갔던 것을 기억하고 아이를 부르며 뜰로 내려섰다.

아직 다 못 눴어? 장수야, 장수야.”

그러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 아이를 부르며 뒷간 문을 연 장수 어미는 아이가 그곳에 없자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뒷간 안으로 휑하니 뚫린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그곳에도 없었다. 부름은 어느새 울음이 되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한 그는 중심을 잃고 횡설수설 하고 있었다. 절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모든 스님들이 동원 돼 장수를 찾아봤으나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뜩이나 침울한 겨울이 감쪽같이 사라진 장수로 인해 절은 그야말로 절간이었다. 날마다 이성을 잃은 장수 어미의 울음소리만 빈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장수야, 우리 장수야. 이 에밀 두고 어디 간 겨?”

그의 울음은 차가운 바람에 섞여 산을 휘저었지만 장수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무심하게 시간은 흘렀다. 그간 부부는 죽지 못해 사는 지경이 되었고,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겨울은 어느새 막바지로 치달아 눈이 녹기 시작했다. 그간 부처님이 장수를 데려가신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던 장수 아비도 어쩌면 산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틈만 나면 산을 헤맸다. 장수를 잃은 마당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죽음의 원인조차도 모르고 시신 또한 찾지 못한 채 절을 떠난다는 것은 아이를 두 번 잃어버리는 것 같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그날도 장수아비는 무작정 지게를 지고 산을 올랐다. 날씨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절에 우두커니 있는 것도 견디기 어려워서 답답한 심사를 도끼날로나 풀어보고자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절 뒤를 따라 막 산을 오르려는데 산 아래서 붉은 것이 눈에 띄었다. 장수 아범은 생리적으로 그곳으로 마음이 끌렸다. 한발 한 발 조심스럽게 짚어 내려가던 그는 가까이 갈수록 어떤 확신에 이끌려 다리가 떨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곳엔 장수가 미처 녹지 못한 눈 위에 토끼 한 마리를 끌어안은 채 주검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천진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장수야!

뼈에서 나온듯한 외마디 울음소리가 깊은 계곡을 울렸다.

 

고통은 죽음이 데려가지 않으면 시간이 데려간다. 그리고 그 시간은 고통을 다른 것들과 뒤섞어 농도를 흐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미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고, 뒤섞일 다른 이유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장수를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주고 그 혼백을 법당에 안치한 후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가을을 맞고 있었다.

그냥 여기서 지내시죠. 장수도 부처님 전에 바치셨는데 함께 하면 덜 적적하시지 않겠어요?”

스님들은 그냥 함께해도 좋다고 권했으나 워낙 곧은 성품들인지라 그럴 수 없다고 짐을 싸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아이와의 추억이 곳곳에 고스란히 묻어있어 더욱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일상은 시오리 넘는 절을 오고가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부턴가 극도로 쇠약해진 아내는 절을 방문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남편만 혼자 절로 떠나게 되었다. 아내는 죽은 장수에게 죄책감도 들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곧 겨울을 맞이할 산들은 우수수 나뭇잎들을 지우고 있었다. 휘청이며 싸리문을 나와 집 앞 계곡에 이르러 소 위에 있는 다리를 엉금엉금 건널 때였다. 깊은 물속에 장수가 나타나서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장수야~. 장수, 우리 장수야.”

장수 어미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어떤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그곳이 어디든 장수가 있는 곳이라면 마다할리 없었다. 소를 향해 허겁지겁 손을 휘젓더니 이내 물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멀리서 길을 가던 나그네가 이 광경을 보고 급히 달려왔으나 이미 주검이 된 후였다.

장수아비는 절에 가서 장수의 혼백을 만나고 어둑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혼자 있을 아내를 생각해 서둘러야 했으므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통 먹지를 못하는 아내를 위해 손에는 고등어 한 손이 들려 있었다. 앞으로의 삶이 막막했지만 아내를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늘 굳은 마음을 먹곤 했었다. 그들의 나이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어서 얼마 안 있으면 저승에 가서 장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아내를 달래곤 했다. 마을 입구에 막 이르렀을 때였다.

안됐어. 장수 어머니 말여.”

그러게. 장수가 불러갔지 뭐.”

지나가는 사람을 통해 장수 아비는 그만 비통한 소식을 듣게 되고 말았다. 순간 그는 온 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떤 슬픔도, 노여움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장승처럼 그저 서있었다. 비명도, 몸부림도, 울음도 다 그 다음의 행위이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노인의 시신은 다음날 아랫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의 비운에 대해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들의 운명적인 인연에 대해서는 깊이 감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쓸쓸한 노후를 생각해 일찍 장수가 데려간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다. 이후 그들이 몸을 던진 깊은 소를 각 각 할미소, 할애비소라고 불렀는데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는 홍수를 겪었음에도 메워지지 않고 그때의 아픈 사연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저승에서도 장수가 심심할까봐 염려해서인지 가끔 이 소를 통해 아이들을 불러간다고 해서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엔 언제 세웠는지 모를 퇴색된 푯말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이곳은 익사할 위험이 있으니 접근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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