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마을과 이룡산 설화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401

평화롭던 한 옛날, 전국의 마귀할멈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삼각산을 만들 만한 산들을 끌어 오너라.”

그 중에 한 마귀할멈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마땅한 산을 물색하던 중 이천시 마장면 목리에서 발길을 멈췄다. 해발 349미터의 도드람산 마루에 우뚝 솟은 괴암절벽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귀할멈은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이 정도라면 삼각산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로다!”

마귀할멈은 마음이 급했다. 행여 다른 마귀할멈이 먼저 당도할까 걱정이 되었다. 도드람산 정상 괴암에 구멍을 뚫어 소코뚜레에 얽어매고 재촉을 하며 끌고 가던 중, 힘에 부친 소가 이천시 신둔면에 위치한 진잔등(아주 나지막한 산등성이 하도 길다하여 붙여진 이름)을 거쳐 용면리(지금의 용미리 저수지)를 지나 이천과 광주의 경계지점인 각씨봉 끝부분의 능선고개를 넘어오다 넘어졌는데 그만 이가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소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마귀할멈이 진땀을 빼고 일으켜 세우는 사이에 벌써 삼각산이 완성되었다는 기별이 왔다. 그 후부터 도드람산은 옮기지도 못하고 소의 이만 빠졌다 하여 그 고개를 소치고개 또는 우치고개라 부르며 그 마을의 이름을 소치마을 또는 우치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 뒤편으로는 나라를 생각하며 오르내리던 산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부르는 산이 있고 이 우치마을 동남쪽에는 각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하여 각씨봉이라 부르는 높은 산이 있으며 그 옆으로는 생김새가 마치 용 두 마리가 엎드려 있는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룡산이란 산이 있다. 그 중 이룡산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는 자식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 중에 특별히 기대를 하고 애지중지 하는 오누이 한 쌍이 몰래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뜯어 말리고 떼어 놓으려 하여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아 이에 노한 옥황상제가 남매에게 벌을 내렸다.

너희가 땅의 나라에 떨어지는 순간 온 몸에 부스럼이 덕지덕지 붙은 징그러운 구렁이로 변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때부터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진흙물 속에 몸을 담그고 천년을 속죄해야 종기가 나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씻기 위하여 땅의 세상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을 잘 참고 이긴다면 다시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이 옥황의 패를 몰고 오너라.”

땅으로 떨어진 남매부부는 기가 막혔다. 천상의 선남선녀가 삽시간에 진물이 줄줄 흐르는 구렁이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팔매질을 하고 달아나니 이런 수모를 어찌 견디며 천년을 기다리겠는가? 남매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울며 운명을 한탄하였으나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천년을 기다려서라도 다시 하늘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기운을 내고 지상에서의 힘겨운 삶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울면서 찾아간 곳이 광주시 도척면 진우3리 우치마을 어귀에 있는 일명 지장골’ <현재 진우 저수지>이란 곳이었다. 원래 지장골이란 이름은 황톳물을 휘저어 가라앉힌 물이란 뜻으로 예부터 그런 물이 해독에 제법 효험이 있다고 전해지기도 하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이곳은 사철 물이 절절 흐르는 제법 큰 내로, 조용하고 은신하며 살기엔 안성맞춤이라 남매부부는 그런대로 평화롭게 하계에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긴 장마가 지나고 모처럼 햇살이 쨍한 어느 날 남매부부는 신록이 우거진 푸른 세상천지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온갖 산새들과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정다웠으며 시원한 바람이 선들선들 불며 발목을 잡았다. 마침 그날이 보름날이라 수양버들이 하늘거리는 사이로 환하게 보름달이 떠오르니 가히 장관이었다. 남매부부는 비스듬히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며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은은한 노랫소리와 재잘재잘, 깔깔깔 행복한 웃음소리에 남매부부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아니,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언니며 동생들을 예서 보다니······!’

 

남매 부부는 한걸음에 달려가 반겼으나 놀란 선녀들은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하늘로 올라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누님!”

언니~”

목이 터져라 불러도 아무도 알아듣기는커녕 뒤도 안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구렁이로 변한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금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다음부터는 나서지 않고 몰래 얼굴만이라도 훔쳐보며 그리움을 달래리라 다짐을 하였다. 그 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목이 빠져라 선녀들을 기다렸으나, 구렁이 남매가 자신들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선녀들은 다시는 지장골에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일이 없었다.

 

서로를 의지하며 하계에서 천년을 지내기엔 남매 부부는 너무나 외로웠다.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그리하여 부부는 밤마다 옥황상제를 향하여 빌고 또 빌었다.

노여움을 푸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 부부에게 자식을 내려주시옵소서.”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마침내 남매 부부는 아들을 낳았다. 하늘에라도 올라 부모형제를 만난 양 기뻤다. 오로지 그 외동아들만이 삶의 전부인 남매부부는 새끼의 재롱을 보며 혼신을 다하느라 상계에서의 행복했던 시간들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 몰랐다. 아들 뱀도 건강하게 자랐으며 부모를 향한 효심도 지극하였다.

 

꿈같은 세월은 흘러 어느덧 새끼 뱀이 성장하여 짝을 맺게 되었다. 며느리 뱀을 대하는 순간 애지중지 기른 외아들의 배필이라 생각하니 더없이 사랑스럽고 그저 좋기만 하였다. 그러나 며느리 뱀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하고 착해보였으나 마음은 아니었다. 외아들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면 공경할수록, 귀여움을 받으면 받을수록 시기를 하는 것이었다. 먹는 것도 아까워 한다는 둥, 일을 하도 부려먹어 골병이 들었다는 둥, 심지어는 욕설에 때리기까지 하였다며 날이 갈수록 시기심이 모함으로 번졌다. 아들 뱀 앞에서는 선량한 척 양의 탈을 뒤집어쓰고 훌쩍훌쩍 우는 등 작정을 하고 이간질을 하니 처음에는 설마설마 하던 아들도 베갯머리송사에는 어쩔 수 없었는지 점점 부모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부모를 멀리하고 자기말만 믿어주고 떠받드는 남편을 보며 재미가 붙었던지 하루는 제 몸에 상처를 내고 노인네들이 그리하였다고 몸져누워 엄살까지 부리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해도 너무들 하신다며 점점 심술을 부리는 등 퉁명스럽고 거칠어져 갔다. 그럴 때마다 남매부부는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사생결단이라도 내고 싶었으나 부모와 아내의 사이에서 크게 마음 아플 아들 뱀이 불쌍하고 또 불쌍하여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들의 옳지 않은 사랑으로 옥황상제께서는 얼마나 큰 상심을 하셨는가를 참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은 죄가 무거워 그 값을 치르는 것이려니, 어서 죄 값을 치르고 하늘에 올라 부모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고 못 다한 효도를 하리라 다짐을 하였다.

그렇게 고초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이 남매부부는 늙어 손자를 보게 되었다. 며느리는 며느리고 손자는 손자인지라 해산을 도우며 자신이 자식을 낳았을 때와는 또 다른 한층 더 미묘하고 깊은 사랑이 우러났다. 그러나 속이 포악스러운 며느리는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부모 소중함은 깨닫지 못하였다. 자식의 일이라면 숨도 못 쉬고 껌뻑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시부모에게는 해준 것이 없다는 둥 늙어서 냄새가 난다는 둥 여러 식구 살기에는 집이 좁다는 둥 여전히 불평불만으로 괴롭혔다. 할 수 없이 쫓겨나듯 집을 비워 준 남매부부는 아들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힘겹게 비좁은 움막을 마련하였다. 늘 손자가 보고 싶어 애간장이 탔지만 아들 내외는 여전히 불효를 하며 드러내놓고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세월은 여전히 흘러갔다.

 

장대비가 억수같이 며칠을 쏟아지고 지장골 내에는 맑은 물이 절절 흘렀다.

여보 이제 내일이면 우리의 죄가 씻기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네요.”

정말 그렇구려. 어서 올라가 못 다한 효도도 하고 형제들과 재미나게 살아야 하는데······.”

아들 내외와 손자에게는 어떻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우리가 옥황상제의 자식이라 상계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알면 아마 상심이 클 거예요.”

“············.”

그 날도 아들 내외가 외출을 한 터라 남매부부는 손자를 불러 마지막으로 헤엄치는 법을 가르치며 흐뭇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손자도 즐거워하며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저녁때가 되어 아들내외에게 내일 새벽이면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별의 정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에서 손자에게 어서 돌아가자고 재촉을 하였으나 손자는 더 놀자고 막무가내였다. 서로 가자거니 놀자거니 잡아당기다가 그만 잘못하여 손자의 손을 놓쳐 버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가야, 아가야!!!”

손자는 떠내려가며 소리를 쳤고 남매부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쫓아가며 잡으려 하였지만 기력이 미치질 못하여 구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부부는 커다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급류에 휘말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잃고 있던 남매 부부에게 어디선가 근엄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쌍한 것들······. 큰일 날 뻔하였구나.”

그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부부는 물었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정신을 겨우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남매부부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아버지!”

그래 여기는 하늘나라다. 이젠 우리와 함께 천년만년 살자꾸나.”

아버지께서 주신 패를 하계에 두고 왔는데, 저희가 어떻게 여기를······.”

너희는 나의 아들딸이다. 내 어찌 너희를 세상으로 내쫓고 마음이 편했겠느냐. 단 한시도 너희를 지켜보지 않은 날이 없었느니라. 위험에 처한 너희를 하늘의 방식으로 구했고, 너희 또한 불가피하여 하늘의 패를 두고 왔지만 너희들 역시 땅의 나라에 두고 온 자식이 그립지 않겠느냐. 다행히 너희 아들 내외가 패를 물고 올라온다면 하늘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흑흑

남매부부는 쭉 둘러서서 환영하는 형제들을 얼싸안았다. 그리고 달밤에 목욕하러 내려온 언니들을 만났던 사연, 보름밤마다 그리움으로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서러운 지난날을 들려주며 다시 만난 기쁨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편, 새끼를 잃은 며느리는 천길 만길 펄펄 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질렀다. 며느리는 필시 늙은이들이 노망이 나서 손자를 데리고 어디로 도망을 갔으리라 여겼다. 그러다가 하늘의 패를 발견하고 그분들이 옥황상제의 자손임을 알게 되었다. 옥황의 패를 손에 쥔 아들 내외 뱀은 잃어버린 아들만을 애통해 하며 일생을 보내기는 너무 억울하였다. 그래, 용이 되어 이 패를 가지고 하늘에 오르리라 작심을 하고 지장골 물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하였다.

부모님 대신 저희 부부가 하늘나라에 올라 행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욕심이 많고 악착스러운 며느리 뱀을 따라 아들 뱀도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저희는 자식마저 잃은 천애고아입니다. 부디 이 불쌍한 부부를 하늘에 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빌고 빌어 드디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온 천지에 비를 내리게 하고 불을 내뿜으며 기세등등하게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게 어인일인가! 하늘 문이 열리자마자 부모님들이 마중하며 환하게 웃고 계시지 않은가! 소스라치게 놀라 하늘의 패를 떨어뜨리고 두 내외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 땅에 엎드리고 말았는데, 그러는 사이 해가 뜨고 하늘문은 이미 닫혀버렸다. 그리고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려던 아들 내외는 엎드린 채 그대로 굳어져 산이 되어버렸다. 그 후 이 산의 형상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엎드려 있는 듯하다 하여 이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낮에는 동네 꼬마들과 청년들이 미역을 감던 놀이터였고 밤이면 동네 처녀들의 목욕터였던 지장골 내는 흔적도 없다. 다만 5·16 군사정권 시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데 일조를 하였지만 지금은 낚시꾼들만 모여들고 있어 지장골 내와 이룡산에 얽힌 설화마저 잊혀져 가고 있다. 또한 이 지장골 내에는 물뱀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 설화와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편, 지금으로부터 한 30여 년 전 이 동네에 사는 김진철<70>이란 분이 동네 젊은이들에게 이르기를

이 동네에서는 아직까지 면서기 한사람도 나오지 못하였으니 아마도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실패한 저 이룡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저 산을 이룡산이라 부르지 말고 문필봉이라 부르자. 이제부터 우리 동네에서도 공부를 하여 나라의 녹도 받고 글로써 출세도 하도록 비는 마음으로 우리 마을에서만이라도 문필봉이라 부르자.”

고 하였다.

그때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룡산을 문필봉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실지로 그 이름을 지어 부른 뒤부터 이 마을 출신들에게 경사가 이어졌다. 불과 5가구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점점 변화가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세월의 덕도 있겠지만 문필봉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정녕 이 이야기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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