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절 설화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192

남종면에서 퇴촌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오다 보면, 퇴촌이 내려다보이는 왼쪽 지점에 국사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 중턱에 사만절이라는 이름의 골짜기가 있다. 예전부터 이 일대는 산수가 아름답고 들판이 넓어 항시 밝은 빛이 비취는데다, 해마다 풍년이 들어 복 받은 마을이라 하여 광복동(지금의 광동2)’이라 불릴 만큼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을 때 군량미를 보급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으뜸일 만큼 벌이 넓어, 동쪽에 있는 넓은 벌이라 하여 동지벌(지금의 광동1)’이라 부르기도 했다. 국사봉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도수리, 남쪽으로는 광동리, 서북쪽으로는 오리, 북쪽으로는 금사리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사방이 탁 트여서 조선시대 퇴촌으로 낙향한 선비들이 이 국사봉 정상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며 나라 일을 걱정했다고 한다.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한창 번성하던 고려 중엽, 이 국사봉 중턱엔 사만절이라는 이름의 절이 한 채 있었는데, 승려의 수가 무려 사만 명에다 신도의 수도 헤아릴 수없이 많아 이 절을 사만절이라 불렀다 한다. 퇴촌은 이 절 외에도 관음리, 절골, 탑선리, 부처골, 탑골마을 등 유독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많아 이 일대가 한 때 불교가 번창했던 지역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사만절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들끓는 빈대로 인해 절이 망하게 되었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고려 적 사만절에는 중생을 위해 주야불철 예불을 드리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이 절의 주지로서 항시 마음이 고요하여 거울처럼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를 찾을 곳이 없다.”라고 말 할 정도로 그는 수양이 잘 된 사람이었다. 하여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남 달랐고, 따라서 신통력 또한 대단해서 그의 교화를 흠모하는 신도들이 전국 방방곳곳에서 모여들어 문 밖엔 항시 신발이 그득했으며, 그로 인해 국사봉 골짜기는 밤낮없이 목탁소리에 잠겼다.

스님은 혼자 예불을 드릴 수 있는 법당을 따로 마련하고, 남이 다 잠든 자정에 홀로 예불을 드리는 습성이 있었는데, 그의 위엄이 저절로 높아 그가 예불을 드리는 동안은 누구도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달빛이 흐드러진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스님은 자정 예불을 드리기 위해 촛불을 밝히고 법당에 꿇어앉아 조용히 독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더니 법당 주변을 맴돌며 회오리쳤다. 웬만한 일에는 꿈적도 않는 스님인지라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계속 독경을 하고 있었는데, 법당 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리더니 긴 꼬리를 단 바람이 스님 앞을 지나쳐 촛불을 홱 낚아채는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스님은 다시 불을 밝히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바람은 홀연히 불어와 촛불을 끄곤 했다. 스님은 기이한 생각이 들어 예불을 중단하고 법당 밖으로 나왔다. 밖은 바람과 무관하게 깨질듯이 맑은데다 달은 높이 떠서 빛이 천지간에 그득했다.

기이한 일이로고. 이렇게 고요한데 어디서 바람이 불어왔단 말인고?”

스님은 혼자 중얼거리며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이절 뒤편엔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는데. 그 절벽 아래엔 커다란 오동나무를 배경으로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연못이 하나 있어 스님들이 그곳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곤 했다. 연못으로 흘러내리는 키 낮은 폭포도 있어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만 워낙 후미진 곳이어서 일반 신도들의 사용은 금하고 있었다.

스님이 법당 모퉁이를 돌아 막 연못 근처에 이르렀을 때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연못 근처에 난데없는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었는데, 그 안개 한 가운데로 무언가 움직이는 물체가 언뜻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 물체는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필시 사람일 것이라 생각 돼 조용히 다가가보니 여인이 돌 위에 옷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너무도 놀라 발걸음을 옮길 수도, 뒤로 돌아설 수도 없어 가만히 숨을 죽인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여인은 안개 속에서 한참을 물로 몸을 씻더니 옷을 입기 위해 연못 가장자리로 나왔다. 스님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황급히 자리를 떠서 요사채로 돌아왔다.

기이한 일이로고, 웬 여인이기에 이 한밤중에 경망스럽게 절에서 목욕을 한단 말인가?”

아마도 백일기도를 올리는 아낙이 몸을 개운히 하기 위해 남의 눈을 피하느라 밤중에 목욕을 하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은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설치게 되었다.

 

새벽이슬은 아직 깨어나지 않는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도 삼라만상에 깃들어 반짝이고 있었다. 밤새 잠을 설친데다 어제 밤에 본 일이 기이하기도 해, 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치고 연못으로 갔다. 연못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적에 싸여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한 바퀴를 둘러보던 스님은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제껏 보지 못했을 만큼 커다란 지네가 새벽이슬에 몸을 축축이 적시며 여러 가닥의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도 흉측스러워 금세라도 처치하고 싶었으나 생명은 다 존중한지라 살생을 할 수 없어 그냥 그곳을 지나쳤다. 가만히 되짚어 보니 지네는 어제 여인이 옷을 벗어 두었던 그 자리에 길게 몸을 늘이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스님은 지네를 본 이후부터 왠지 모르게 꺼림직한 생각이 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직도 깨달음에 대한 완성도가 떨어져 가 낀 것이려니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자정 예불을 드리기 위해 법당에 들었다.

행 불행이 제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요, 다만 사람의 생각이 지어낸 헛 느낌이니…….”

한참 목탁을 두드리고 있는데, 홀연히 법당 문이 열리더니 한줄기 바람이 또 법당 안으로 들어와 어제처럼 촛불을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정체가 무어란 말이냐?”

크게 바람을 향해 꾸짖었으나 바람은 두어 차례 연이어 촛불을 껐다. 그 바람에 스님은 하는 수 없이 어둠 속에서 그냥 독경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흐트러진 마음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라 마음은 중심을 잃고 머리는 잡념이 파고들어 더 이상 예불을 드릴 수가 없었다.

스님은 법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달빛은 여전히 밝았으며, 바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방은 검푸른 빛을 띤 채 서늘한 기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연못으로 옮겨 안개에 싸여 목욕을 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현상은 생각의 파편이거늘 내 어찌 이리 혼란스럽단 말인가?”

스님은 애써 눈을 돌리려 했다. 그때 어디서 불어왔는지 바람 한 줄기가 홀연히 띠를 두르고 불어오더니 삽시간에 안개를 걷어냈다. 그러자 달빛 아래 여인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달빛에 드러난 여인의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허리선과 흰 젖가슴은 달빛에 뽀얀 살빛을 풀어 아슴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고, 소슬바람은 그 위에 황황히 부딪치다 이내 사라졌다. 그 바람에 오동나무 잎새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스님은 몸서리치며 그곳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스님은 잠을 설친 채 여러 날을 번뇌에 시달렸다.

불혹에 이르도록 색을 멀리 해서 이제는 그것으로부터는 자유롭다고 생각했거늘 내가 왜 이런담?”

스님은 그런 자신이 야속하기도 하고, 요망한 여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한번 흐트러지면 다잡기가 쉽지 않으니 그 또한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가?

그 후로도 그런 상황은 달포나 계속되었다. 딱히 여인을 범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여인의 알몸이 머리에 어른거려 예전처럼 정진할 수가 없었다. 수양이 덜 된 자신을 탓하며 정신일도에 온 정력을 쏟았는데 그래서인지 스님은 나날이 수척해졌다. 날로 신경이 예민해져 여느 때 같으면 허허하고 그냥 넘어갈 일도 손아래 스님을 불러 꾸중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요즘 큰 스님이 좀 이상하지 않어요?”

그러게 좀 예민해지신 것 같어요.”

스님들은 나날이 수척해지며 어딘가 예전과 달라진 것 같은 큰스님을 보며 나름대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깨달음이 큰 그야말로 큰 스님인지라 스님들만 약간의 예민함을 느낄 뿐 신도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신도들은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들었다. 그러는 동안도 바람과 연못 속의 일들은 계속 진행이 되었고, 스님은 그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몰래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행여 인기척이라도 느끼게 해서 여인의 경망함을 꾸짖어 주려고 하면 이내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타이를 수도 없었다. 스님은 번뇌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스님,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으신가요?”

정진에 힘쓰는 것도 좋지만 건강을 해치시면 그 또한 옳은 일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큰 스님을 걱정하는 우려의 말들이 스님들로부터 나날이 쏟아졌다. 그러나 큰스님은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반복되는 일상이 달포 쯤 지나는 동안 스님의 건강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척으로 다가가 헛기침을 했다. 이번엔 자취를 감추고 안개만 남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험, , 헛허엄…….”

여인은 인기척을 느끼자 삽시간에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스님이 잠잠한 연못에다 대고 위엄이 있는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뉘시오? 뉘시기에 이렇게 가당찮은 짓을 한단 말이오?”

안개 속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달빛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그런데 좀 전까지도 여인의 옷이 놓여있던 돌 위에 아침마다 보았던 지네가 여러 갈래의 발을 발발 거리며 흥건한 물기를 뒤집어 쓴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순간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마다 연못가 돌 위에 징그러운 긴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지네를 보게 되어 기분이 언짢았던 데다가, 혹 여인과 어떤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의혹이 생기는 터였는데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으니 스님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네가 둔갑을 한 게로군. 요망한 것 같으니라구. 감히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다니…….”

스님이 한동안 쏘아보자 지네는 스르르 돌 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먼동이 트자 스님은 삽을 들고 연못으로 향했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지만 요물이라면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 밤새 작정을 단단히 한 터였다. 스님이 연못으로 다가가자 지네는 바위틈에 긴 꼬리를 묻고 태연히 이슬을 받고 있었다. 스님을 보자 경계를 하는 듯 몸을 한번 꿈틀 틀었다.

도대체 네 정체는 무엇이냐? 무엇이기에 사람으로 둔갑을 해 이리도 마음을 현혹시키는 게냐?”

스님이 고함을 치다시피 크게 나무라자 지네는 곧 연못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스님은 그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스님들을 불러 차라리 연못을 메워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영적으로 둔한 어린 승들이 자기 말을 믿어줄지도 걱정되었고, 그러다 자칫 경내에 흉흉한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신도들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도 있다 염려되어 일단 조용히 일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스님은 그날 밤을 고스란히 새고, 이른 새벽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일찍 연못으로 갔다.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가까이 다가가자 지네는 어제처럼 그 자리에 여전히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스님은 아무런 말없이 지네를 향해 삽을 두어차례 내리쳤다. 지네는 순식간에 세 동강이 나고 말았다. 몸이 보통 지네보다도 열 배나 큰지라 동강이 난 채로 한자는 튀어 오르더니 버둥을 치다 이내 연못 속으로 굴러 떨어져 내렸다. 그때였다. 연못이 삽시간에 붉은 피로 변하더니 파문을 일으키며 크게 한번 소용돌이를 쳤다. 대범한 스님도 이쯤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그만 비명을 냅다 질렀다. 일찍 마당을 쓸던 스님들은 큰스님의 비명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연못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맑은 물로 변했고, 예나 다름없이 파문을 지우며 잔잔히 출렁였다. 원인 모르게 나날이 수척해지는 큰스님을 걱정하던 작은 스님들은 삽을 든 큰 스님이 얼이 나간 채 연못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라워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가 지나친 게야.”

그러게, 큰 스님이 저리 되실 줄 몰랐네.”

스님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거들며 큰 스님을 숙소로 모셨다. 일시적인 충격으로 잠시 아득했던 스님은 몹시 피곤함을 느꼈다.

다행히도 그 이후론 법당을 교란시키는 바람도, 연못을 휘감았던 안개도 나타나지 않았고 스님도 차츰 건강을 회복하며 다시 정진에 힘쓰게 되었다.

 

닷새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자정 예불을 드리다 스님은 앉은 채로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연못 속에서 목욕을 하던 바로 그 여인이 나타나 소리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루만, 단 하루만 참아주셨더라면 저는 물론, 스님과 이절에 관계된 모든 중생들이 큰 복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여인은 말을 이었다 끊었다를 반복하며 그간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여인은 본디 하늘의 선녀였는데 옥황상제의 심기를 상하게 하는 죄를 저질러 지네로 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일동안 인간 세상에 내려가 깨끗한 물에 죄를 씻으면 잘못을 용서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는데 그날이 바로 백일 되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시기하던 다른 선녀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바람을 만들었고, 바람의 유인 때문에 스님이 자신을 보게 된 것이며, 스님이 자신의 몸을 동강을 내는 바람에 영영 선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어깨를 들먹였다.

스님은 꿈에서 깨어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살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깨달음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연못에서 여인이 목욕을 하든 말든,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그렇게 독을 품을 이유도, 혼란스러워 할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무릇 생명이란 다 제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고, 삶의 방식 또한 다른 법이므로 그것을 인정하면 그 뿐, 구태여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었고, 마음을 한 곳에 두지 못한 것 또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스님은 고통 때문에 살생을 한 자신의 행위를 크게 뉘우치며 그날 이후 두문불출하고 법당에 들어앉아 정진하기 위해 참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절 경내엔 그때부터 빈대가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천정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달라붙어 물어뜯는 바람에 남아나는 것이 없을 지경이었다. 작은 돌 틈이나 바위틈에도 들추기만 하면 우글거려 견딜 재간이 없었다.

이 소문은 차츰 먼 곳까지 퍼져 급기야는 신도들이 발길을 끊게 되었고, 견디다 못한 스님들도 하나씩 절을 뜨게 되었다. 다만 주지승만 달이 바뀌도록 법당에 들어앉아 참선과 염불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빈대는 점점 성해 절 근처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빈대들이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누구도 접근 할 수가 없었다. 큰 스님도 이미 그 곳을 떠났을 것으로 판단한 마을 사람들은 절을 불태울 것을 의논했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한 곳으로 모아지자 어느 한 날을 잡아 횃불을 들고 사만절로 갔다. 사람들은 근처까지 다가가 절을 향해 일제히 불을 던졌다. 절은 서서히 불이 붙더니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야릇한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가운데 사찰건물은 불더미 속에 휩싸였다. 빈대 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사람들이 혀를 차며 구경을 했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 후 절은 폐허로 변해 버렸고 그 근처엔 한동안 나무도 자라지 않았다 한다. 그리고 여름 장마가 그곳을 휩쓸고 지나갔는데, 비에 불의 흔적조차 떠내려간 법당 자리엔 구멍이 숭숭 뚫린 부처 형상의 돌이 발견되어 사람들은 입을 모아 큰스님일거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그 후 세월 따라 돌부처도, 빈대도, 절터도, 사만절의 영화도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한 때 번성했던 시절의 이름만 남아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때 그 연못은 어느 해 산사태로 매몰 되고, 그 물줄기가 산 아래로 흘러 그 아래엔 꽤 깊은 소가 형성되었었다. 지금도 천진암 골짜기에서 흐르는 내가 이곳을 지나쳐 팔당호로 흘러들고 있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철이면 행락객들이 야영을 하며 즐기기도 했었다. 옛날 전설 따위는 까맣게 잊고 말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생명의 가치는 인간의 잣대로 감히 가늠할 수 없으니 그 또한 신의 영역이라.

또 크게 깨달았다고 자랑하지도 마라. 그 깨달음조차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나니,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 충실할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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