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정 설화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290

두 사람은 이제 나에게 더 배울 것이 없을 만큼 학문을 깨쳤다. 그대들은 곧 나라를 위해 과거시험을 보고 큰일을 할 인물들이다. 나를 뛰어넘는 노력으로 배우고 익힌 학문을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바른 정치를 하는데 힘써야 한다.”

스승은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말이 없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두 무릎을 가지런히 굽힌 채 스승의 책상을 바라보던 선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스승님의 은혜는 하해와 같아서 오늘의 제가 있을 뿐입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모든 일에 행하고 따르겠습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미끄럽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너무나 평범한 덕담이라서 별로 신통한 답변을 해야 할 가치를 못 느낀다는 듯 선비의 얼굴에 미세한 실망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여자처럼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갸름한 얼굴윤곽에 초승달처럼 가는 눈썹 이제 막 가늘고 여린 수염이 돋아나는 홍안의 얼굴은 미소년의 초상화처럼 한 점 흠잡을 데 없는 귀족적인용모였다.

스승은 선비가 소리 없이 미소 짓는 웃음에서 비웃음을 보았다. 왕실 종친의 자제들과 명문집안들의 자제들이 해마다 자신의 학문을 배우러 왔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드는 제자는 처음이었다. 스승의 얼굴에 잠깐 노여움이 실리다가 사라졌다.

스승님, 미욱한 제가 스승님의 큰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기나 할지 걱정입니다. 저의 모든 행동이나 글이 오로지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각오로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저를 낮추고 조심하겠습니다.”

조용하지만 힘 있게 머리를 굽혀 말하는 또 다른 선비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깔렸다. 내 자신이 스승 앞에서 한 말을 과연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선비의 등골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앞서의 선비가 귀족적이면서도 세도를 부리는 양반가문의 자제라는 인상이 강했다면 검고 굵은 눈썹이 살아 꿈틀거리듯 떨리는 이 선비는 이목구비의 생김이 뚜렷한 선이 굵고 이마가 넓었다.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단호한 의지를 씹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 후 스승 곁을 물러나왔다. 스승은 선비들이 사라진 대문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숙(김안로의 성년이름)은 분명 일신의 영달을 위해 숱한 정적을 만들고 해칠만한 인물이 되겠구나. 그럼 성지(한승정의 성년이름)? 그는 나와 같은 길을 가겠지...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될 텐데... 안타깝구나?’ 조용히 한숨을 쉰 스승, 그는 효령대군의 증손자로 왕실의 종친이며 대 학자인 주계공 이심원 선생이었다. 당대에 벼슬을 한 제자 두 사람을 함께 가르쳤는데 그들은 타고난 생김새부터 달랐다.

김안로와 한승정, 그들은 그렇게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는 사이였다. 두 선비를 가르친 스승은 그들이 출세 길로 나서는 것을 보지 못하고 1504년 고모부인 임사홍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했다.

김안로는 스승이 죽은 두해 뒤 장원급제로 당당하게 벼슬길에 들었다. 한승정도 그 이듬해 진사시험에 합격되었다. 두 제자는 나란히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가 된 것이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패주가 되고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다. 김안로는 아들이 효혜공주와 혼인을 함으로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기만 했다. 승승장구 출세 길이 열렸던 것이다. 권력을 쥐자 김안로는 자신의 정적들을 탄핵하고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보게 이숙, 내가 벗으로 충고 한마디 하겠네, 세상의 이치가 달도차면 기울고 술도 과하면 취하는 게 맞네. 자네의 권세가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큼 부러울 게 없건만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좀 자중하세

지금 자네 나를 가르치려 왔는가? 스승님을 보세 세력이 없으면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가만히 두질 않는 세상일세. 더는 내 일에 간섭하지 말게

간섭이 아닐세. 스승님 밑에서 함께 동문수학한 정리를 가지고 자네에게 고언이라도 전하려고 찾아 온 것이네

성지, 나도 자네의 충언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개혁이란 피할 수 없는 후유증도 있네. 사림들이 정치보다는 당파에 얽힌 이해 쪽으로 기울어 갈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 손으로 처단할걸세.”

자네의 고집이 그렇다면 나는 다시는 자네를 찾지 않겠네. 이제 친구의 정을 떠나 자네와는 친분을 끊을 걸세.”

자네도 앞날을 내다보는 눈이 있다면 내 곁에 머물게. 내 편이 된다면 자네의 출세도 순풍을 탄 것이나 마찬가지 일 텐데 왜 어렵게 세월을 살려고 하나?”

뭐라고? 에잇!······. 자네의 권력에 더러운 이름을 올리고 싶지는 않네. 자네와는 앞으로 절교 하겠네! 다시 자네를 찾아온다면 스승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걸세.”

한승정이 상다리를 차며 휑하니 몸을 일으켰다. 선비로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찾아온 이숙에게 모욕을 당하다니······.’ 분노와 울화가 그의 온몸을 거슬러 올랐다. 그는 이미 함께 글공부를 할 때의 친구가 아니었다. 사랑채를 나서는 발걸음이 후둘 거렸다. 으리으리한 대갓집 아흔아홉 칸의 기와집 마당의 등불이 대낮처럼 밝았다. 문지기가 궁궐처럼 높은 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한양 드넓은 도성이 어둠에 잠겨 캄캄했다. 멀리 인왕산 아래 궁궐만 짐작으로 짚어 본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는 안 될 일이다 내가 갈 곳은 어딘가막막한 앞날처럼 굵은 빗방울이 흩날렸다. 이럴수록 스승의 전철을 밟아 곧은 절개와 지조를 지킴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절대로 욕되게 하지 않으리란 굳은 결심을 했다.

스승 이심원은 종실의 친인척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로 추앙받는 김종직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은 어른이셨다.

김안로의 그릇된 횡포를 보다 못한 한승정은 붓을 들어 김안로의 그릇된 점을 조목조목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른 군주라면 김안로가 부리는 세도를 알아차릴 것이었다. 그러나 왕은 이렇다 할 비답도 김안로를 벌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측근이 된 간신들에게 그를 모함할 빌미만 제공한 셈이 되었다.

이제 한승정은 조정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임금이 바른말을 듣는 귀가 없구나, 이런 조정에서 무슨 나라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는 임금께 사직서를 냈다. 바른말로 김안로의 비위를 거스른 이상 절교까지 선언한 그를 어느 때 김안로가 잡아들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부인, 짐을 꾸리시오, 아무래도 한양을 벗어나서 시골로 가야겠소.”

? 무슨 말씀이세요?”

이곳 도성은 내가 머물 곳이 못돼요, 지금은 때가 아니니 우리부부 낙향해서 은거하는 게 멸문지화를 안 당하는 길일 겁니다.”

영감,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김안로 대감이라도 찾아뵙고 부탁을 드리면 어떨까요?”

부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아니 부인,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그 사람과는 벌써부터 절교를 한 사이요. 다시는 그 사람 이름도 꺼내지 마시오

노기 띤 얼굴로 남편이 돌아서자 부인은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김안로의 권세였다. 모든 벼슬아치들이 싫든 좋든 아부를 하고 뇌물을 보내는 이 판국에 함께 공부를 하고 나라 일을 보는 친구인데 남편은 늘 그의 권세를 비판하기만 할뿐이었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으론 늘 집안에 궁기가 흐를 정도로 남편은 고지식했으며 성질이 대쪽 같았다. ‘짐을 싸라고 뭐 가져갈게 있어야지횃대에 걸린 옷가지 몇 벌과 낡은 이불 함지박이나 절구통 따위가 고작인 살림살이가 전부인 집안을 둘러보며 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번 말을 꺼낸 이상 남편은 내일이라도 소달구지를 불러 이사를 갈 것이다. 청렴한 선비의 아내로 산다는 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로 고달프고 힘든 세월이었다.

어느 날 마실 왔던 이웃집 부인이 장안에는 김안로대감댁 문지기조차 뇌물을 받아야만 주인을 만나게 한다는 말을 듣고 내 신세보다 낫구먼하기도 할 만큼 오로지 남편은 학문에만 온전히 미친 사람 같았다.

 

광주의 은고개를 지나서 분원으로 접어들면 왕실에 납품하는 백자를 굽는 마을이 있다. 그 분원이 관리하는 수십 개의 백자를 굽는 가마들이 있는 마을 앞으론 남한강 강물이 흘러들어 북한강과 합치며 늘 푸른 강물이 출렁였다. 또 그 강물이 굽이굽이 흐르다가 산기슭을 따라 생긴 마을이 귀여리였다. 흰 무명옷들을 입은 촌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고기잡이도 하면서 또는 사옹원 일도 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에게 한승정의 일가의 낙향은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 마을에 지체 높은 학자 한 분이 오신다면서?”

그 분이 오시면 우리 아이들도 글공부를 시켜서 출세 길을 열어줘야지 농사꾼 자식으로 나처럼 늙어가게 할 수는 없지

내 생각도 그러지만 그분이 우리자식들을 가르쳐 줄지 모르겠네.”

한양에서 벼슬을 한 어른이 이 마을로 내려온다고 풍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농사밖에 모르고 살던 순박한 사람들은 한편으론 설레기도 하고 양반님이 오셔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신분의 차이가 두렵기도 했다.

저 어른이 그 지체 높은 양반이여? 아주 귀해 보이시는데?”

그러게 말이여, 근데 살림이 달랑 책밖에 없잖어, 뭘 먹고 산대여

무신 걱정이여, 우리들이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 새경을 드리면 되잖아

자네 말처럼 저 어른을 위해 우리들이 정자도 지어드리고 아이들을 맡김 세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살림마저도 못한 한승정네 살림을 초가삼간에 내려놓으며 혀를 찼다. 올곧은 선비가 왔다고 모두들 감탄했다. 그리고 의견을 모아 아이들을 가르치고 선비가 앉아서 쉴 정자를 세웠다. 벼슬을 하던 지체 높은 어른이 살러 왔다는 소문은 인근마을까지 퍼졌다.

대감마님, 저희 자식들을 가르쳐 주십시오.”

어르신, 그저 제 이름 석자라도 쓸 수 있게 제 자식 놈을 맡아 주십시오.”

저희가 대감님 댁 양식은 대겠습니다. 아들놈이 과거시험이라도 보도록 가르쳐 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주민들이 한승정을 찾아와 부탁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미 쌀이나 땔감 그릇까지 가져다 놓고 아이들의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주민들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의 학문이 물거품처럼 흩어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아끼는 책을 들고 주민들이 세운 정자로 향했다.

너희들은 비록 농촌에서 태어나서 글공부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지만 내가 이곳에 은거하는 날까지 너희들을 가르치고 훈육하겠다.”

스승님, 저희들이 부족하긴 하지만 열심히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오냐, 배움이란 인간의 근본을 만들어주는 가장 큰 과업이다. 모두 글을 읽고 깨우쳐서 과거도 보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스승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떠꺼머리총각들이 한승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맨발이거나 버선을 신은 그들은 분원에서 경안에서 그의 학문과 명성을 듣고 찾아 온 양반들의 자제도 있었고 상민들의 아들도 있었다. 이제 마을에서도 글 읽는 소리가 귀여정 정자를 맴돌아 마을로 펴져갔다.

한승정은 이곳에서 가슴의 울분을 삭히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세월을 보내는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하얀 눈발이 쌓이는 추운 겨울이었다. 권력과 세도가 끝이 없을 줄 알았던 김안로가 조정대신들의 탄핵을 받아 귀양지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다시 한승정이 벼슬길에 들었으나 그는 곧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귀향한 후여서 귀여리 집집마다 글 읽는 소리가 낭자했다.

스승님이 위독 하시다네.”

아직 환갑도 안 되셨는데 돌아가실 리가 있는가

어서 의원을 불러오세. 스승님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네

귀여리 한승정의 집에서 마을사람들은 병세가 깊은 그의 안색을 보았다. 의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떨어진 바람벽과 빈 쌀독만 휑뎅그렁한 집안에 남긴 것이라고는 손때 묻은 책 뿐 이었다.

56세를 일기로 눈을 감은 그는 대사간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했으나 청빈한 삶으로 자신을 지키며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한 선비였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마을사람들은 마을 뒷산에 정성껏 장사를 지냈다.

 

 

강산이 바뀌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청주한씨와 청풍김씨, 두 문중의 집안들이 집성촌을 이루는 마을이 귀여리다.

두 문중은 겉으로는 평온하였으나 속으로는 조상대대로 자신의 문중이 더 양반가문이라는 자긍심을 숨기지 않았다. 과거시험을 보더라도 어느 문중이 더 합격하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과거에 합격해서 더 높은 벼슬길에 오르는 문중은 마을길을 당당하게 활보했다. 반대로 낙방이라도 한 문중은 그해에는 쥐죽은 듯 소리 없이 분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절치부심 공부를 파고들었다. 마을의 분위기가 이러니 두 집안의 청년들도 자연히 패싸움을 벌이다가 관가에 잡혀가는 곤경을 치르는 등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강 건너 수종사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강바람에 실려 오는 달밤이었다. 김씨 문중의 아리따운 처녀 금이는 애가 탔다. 단오 날 수종사 탑돌이에서 만난 도령과 오늘밤 아무도 모르게 귀여정 정자나무 아래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추석날 둥근 보름달이 강물에 뜨는 시각 꼭 나와 달라는 도령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열아홉 살 처녀가 온통 가슴을 설레며 기다리는 도령은 보기 드물게 잘생긴 미남이었다. 인근에 사는 도령이라고만 알뿐 부끄러워 이름도 묻지 못한 후회가 들었다.

휘황한 둥근달이 강물위로 떠올랐다. 금이의 눈앞에 훤칠한 도령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저 남자라면 내 일생을 맡겨도 좋으리라무남독녀 외딸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녀였다. 평생의 짝을 만나게 해 준다는 탑돌이 행사를 다녀온 그녀는 여러 곳에서 들어오는 혼처도 물리쳤다.

아가씨,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나와 주셨군요.”

도령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에 반가움과 기쁨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금이의 가슴도 두방망이질을 처댔다.

도령님, 그 약속만 믿고 오늘까지 기다렸습니다. 이제 저는 마음으로 이미 도령님을 사모하는지 오래됐습니다.”

나 역시 오늘밤이 와서 아가씨를 만나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몇 달을 보냈습니다.”

두 남녀는 손을 잡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강기슭 물레방앗간 쪽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청주한씨 문중의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라는 걸 알았을 때 금이의 가슴은 천길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물이 흘러내리며 옷깃을 적셨다. 그들도 두 집안의 알력을 진저리나게 듣고 보아온 터였다. 어느덧 달이 서쪽으로 기울 무렵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듯 도령의 굳게 다문 입술이 조용히 열렸다.

이제 우리사이는 죽음 아니면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곧 매파를 넣어 아가씨 댁에 청혼을 하러 보내겠습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그대로 따라만 주십시오.”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멀리 도망이라도 가자면 갈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도망을 가고 혼인을 못 합니까. 그대는 부모님께 매파가 가면 무조건 혼인을 하겠다는 대답만 하십시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더 이상 집안문제로 한마을에서 원수처럼 지내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혼인으로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는가 봅니다.”

며칠 후 금이네 집으로 매파가 왔다. 구변 좋은 방물장수 매파는 도령에게서 적잖은 중매 비를 건네받았다. 도령의 의견처럼 경안에 사는 한씨 집안 손꼽히는 신랑감이라고 말을 꺼냈다. 도령의 집에도 경안 사는 김씨 집안의 참한 규수가 있다는 말로 혼사를 성사시켰다.

드디어 한마을에서 두 집안의 혼사 날이 되었다. 양가는 집안의 어른들이며 아이들까지 모두모여 두 집안의 혼인날이 한 날인 것을 묘한 인연이라고 떠들어댔다. 도령은 나귀를 타고 신부의 집으로 향했다. 경안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신부 집을 지나쳐야 할 한 씨네 도령이 불쑥 신부 집으로 들어서자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집안은 깜짝 놀랐다. 모여 섰던 일가친척들이 모두 놀라서 야단인데도 오히려 신부는 태연한 얼굴로 웃음을 띤 채 초례청 앞에 섰다. 너무 놀라서 망연자실 넋을 놓은 신부의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린 신랑이 그녀와 마주보며 섰다. 신랑신부는 약속이나 했다는 듯 서로 맞절을 올렸다. 서로 합환주를 나누어 마신 그들이 마침내 초례청의 원앙을 날렸다. 혼인식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신랑이 하객들에게 큰 절을 올렸다. 어안이 벙벙한 신부집안은 아무도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천생연분인가보네 하는 말을 꺼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혼인이란 하늘이 정하는 인륜지 대사 일세, 한 씨 집안의 청년이 우리문중과 인연을 맺는 것도 하늘의 뜻 일세 별 수 없네, 신랑을 받아들이게

문중의 나이 많은 노인이 점잖게 덕담을 했다. 그 말이 불씨처럼 둘러섰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신랑의 수려한 이목구비를 칭찬했다. 이미 그들도 신랑의 됨됨이를 보고 들어서 잘 아는 처지였다.

가문을 이어갈 아들이 데리고 온 신부가 김 씨 집안의 규수라는 걸 나중에야 안 신랑 네 집도 하늘의 뜻으로 알았다. 매파가 여러 가지로 신부의 좋은 궁합만 늘어놓았던 터라 태어나는 후손이 크게 된다는 말에 마음이 끌리던 혼사였다.

집안간의 미묘한 갈등을 사랑으로 이겨낸 부부는 해마다 집안 청년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하고 정을 나눴다. 후에 귀여리 하면 한 씨 문중은 문장에 탁월한 수재들이 많이 나오는 집안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면 김 씨 문중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명필가들이 많아서 두 집안이 문장으로 글씨로 쌍벽을 이루는 명문집안으로 지금도 알려져 오고 있다.

지금도 광주주민들은 귀여리를 한문(韓文) 김필(金筆)집안들이 사는 동네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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