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리 느티나무에 관한 전설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585

이 우라질 눔아! 거기서 정승도 판사도 다 해먹어라. 이눔아, 그깟 양반이 뭐라고 이 세상을 버리고, 이 에밀 버리고 너 혼자 간단 말이냐~. 이눔아, 이 빌어먹을 누~~

 

복돌 어멈은 우물 앞에 나란히 벗어 놓은 짚신을 안고 우물 안으로 절반은 거꾸로 몸을 처박은 채 피를 토하듯 절규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들 복돌이에게 퍼붓는 말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생의 모순과 부조리를 향해 악다구니를 퍼붓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깊은 우물은 복돌 네의 한 서린 말들을 가득 품었다가 쩌렁쩌렁 하늘로 내뱉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우물가로 모여들어 술렁거렸다.

복돌네 왜 그려. 무슨 일이여?

복돌이가 어티기 된겨?”

이거 복돌이 신이 아녀? 설마 우물에 빠진 건 아니지?”

마을 아낙들은 울부짖는 복돌 어멈을 떼어다가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힘이 빠진 복돌 어미는 손가락으로 우물을 가리키며

저어기, ~어기, 우리 복돌이가 빠져~…….”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우물 일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장정 서넛이 긴 사다리를 들고 나와 우왕좌왕하더니, 그 중 가장 힘이 센 사내가 사다리를 걸치고 우물 안으로 내려갔다. 곧이어 사내의 비명 소리가 좁은 우물둘레를 타고 깊은 파장으로 울려나왔다.

복돌이여! 복돌이가 여기 있어.”

우물은 폭이 좁아 한 사람 외에는 더 이상 들어갈 수 가 없었다. 사내들은 끈을 내려 보냈고, 한참 만에 복돌이의 시신이 끈에 묶여 우물 밖으로 건져 올려졌다. 스무 살의 건장한 복돌이가 물에 흠씬 젖어 막 목숨이 끊어진 채 거기 누워 있었다. 복돌이의 몸은 아직도 따듯했고, 준수한 얼굴과 결연한 의지를 담은 입술은 시신에서조차도 기품과 아름다움이 느껴져 마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번천에서 팔당호 쪽으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첫 번 째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 마을(도마리)에 수령 55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광주시 보호수 제 77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데, 마을에선 오래 전부터 이 나무를 크게 위했다고 한다. 이 느타니무엔 운명에 죽음으로 맞선 비운의 청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마을은 삭녕 최 씨의 세거지로 여 말, 조선 초기의 학자인 최항 선생의 후예들이 사는 마을로써 양반으로서의 권세와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린 마을이었다. 그러나 부귀영화의 이면에는 언제나 그것들로부터 소외 되고 홀대받는 처절한 운명들이 있기 마련이니, 복돌이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복돌이는 어려서부터 남 달리 영리했다. 최 씨 가문의 사랑채에 기거하는 이 집 하인의 아들로 그의 아비는 김가 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복돌이가 점차 자라는 동안 복돌이의 생부가 김가가 아니라는 입소문이 근처로 퍼져나갔다. 항간엔 주인마님을 빼다 닮았다는 둥, 하는 짓이 예사롭지 않다는 둥 태생에 관한 소문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가족들은 그의 태생을 불문율에 부치곤 했다. 다만 두리실 네만 제 아들 복돌이 녀석이 남보다 유난히 영리한 게 오히려 마음에 걸려 남 몰래 한숨지었다.

주인댁에는 복돌이와 동갑네인 최 도령이 있었는데, 그 또한 영리한지라 둘이 서로 뜻이 상통해 신분이 다름에도 늘 친구처럼 지냈다. 최 도령보다는 복돌이가 좀 더 머리가 명석해 어깨 너머로 배운 글이 최 도령을 능가할 정도였고, 세상에 대한 이치에 대해서도 날로 깨달음이 커서 둘은 마치 친한 형제처럼 사이가 좋았다. 그들의 나이 열다섯이 되자 학문과 세상에 대한 포부를 펼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그러나 복돌이는 천민이었다. 그의 욕구가 크면 클수록 신분에 대한 절망은 배가 되어 그의 앞을 캄캄하게 했다.

도련님! 세상은 왜 신분을 미리 정해 놓고 기회를 함부로 박탈하는 걸까요?”

그러게, 안타까운 일이지. 언젠가는 시정해야 할일이 아니겠느냐?”
천민의 신분으로 감히 내 뱉을 수없는 말이었지만 최 도령의 인간 됨됨이가 워낙 트인지라 흉허물 없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글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최 도령을 마중하는 길엔 망초꽃이나 엉겅퀴꽃이 들판 가득 피어 풋풋한 내음을 풍기곤 했다. 복돌이는 그런 들꽃들을 대할 때마다 자기의 삶도 저 들꽃처럼 아무렇게나 피다 스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 자신도 모르게 발끝으로 풀대궁을 툭툭 차며 길을 걷곤 했다. 복돌이의 마음을 알아 챈 최 도령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하늘만 보고 걷거나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복돌아! 우리 재종 형님네 언년이 어떠냐? 고것이 요즘 한창 물이 올라 실하지 않으냐?”

그러나 복돌인 시큰둥하니 대답을 피했다. 복돌이에겐 여자 따윈, 그것도 자신처럼 천한 신분을 가진 여자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밤새 글을 읽는 복돌이에게 그의 어미는 성화를 부려댔다.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어 복돌이만 보면 늘 마음이 아픈 데다 신분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영리한 복돌이 때문에 이래저래 속이 상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곧잘 끓어 붓곤 하는 것이었다.

이눔아 그깟 글공부는 해서 뭣에다 써. 과거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짬에 새끼라도 한 줄 더 꼬면 살기나 편하지. 어쩔려고 그려. 글이 밥을 멕여주냐, 옷을 입혀주냐? 다 소용없는 짓이여.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사는 거여. 이눔아, 철 좀 들어

밤마다 두리실 네의 잔소리는 늘어났지만 복돌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글공부에 빠져 있었다. 그는 글공부 자체만으로 자신의 환희 가운데 푹 빠져 있었으나, 그의 어미는 근심으로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분수를 지켜 소박하고 진실 되게 사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아직은 너무 어린, 치기에 들 뜬 청춘이었다. 복돌이의 번민은 날로 늘어갔다. 신분이라는 것을 양반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에 급기야는 애꿎은 최 도령에게로까지 적개심이 생겼는데,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점점 관계가 서먹해지고 있었다.

 

열여덟이 되자, 최 도령은 건너 마을 안 씨 문중의 양반 아가씨와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평소부터 복돌이를 마음에 두었던 언년이는 봄이 되자 싱숭생숭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공연히 혼자 들 떠 복돌이 주변을 얼씬 거렸다. 그때마다 꽃다운 열다섯 청춘의 향긋한 체취가 물씬 복돌이를 향해 날아갔으나, 복돌이는 언제나 표정이 굳은 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복돌오라버니! 서방님 혼례를 치르고 나면, 우리 엄니가 오라버니 하고 나하고의 혼사도 생각해 본다던데…….”

홍조 띤 볼로 눈을 상큼하게 치켜뜨곤 복돌이의 눈치를 살폈으나 복돌이가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자 혼자 애를 태웠다.

난 혼사 같은 덴 관심 없다.”

그런 게 어딨어. 장성하면 다 혼사를 치르는 거지. 쓸데도 없는 글공부만 하다 몽달귀신 될껴?”

어느새 뽀루퉁해진 언년이가 새침을 떨며 볼멘소리로 투정을 부렸지만 복돌은 냉담하게 곁을 주지 않았다.

 

진달래 피는 봄날 최 도령은 안 참판 댁 낭자와 혼례를 치렀다. 그날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붉어 온 세상이 불타는 것처럼 환했다. 두리실 네는 복돌이가 산으로 오르자 앞을 가로막고 한마디 건넸다.

일손이 딸리는데 좀 거들지, 생경 맞게 웬 지게여. 작작 속 좀 끓여라. 이 에미가 속이 타 죽겄다.”

하루가 다르게 말 수 가 줄어드는 아들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두리실 네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제 아들에게 비범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껴져 자랄수록 아들이 어려워졌다. 하여 그럴 때마다 오기를 부리듯 마음에도 없는 악다구니를 퍼부어 제 심사를 본의와는 반대로 표출하고 있었다.

 

4월의 바람은 부드럽고 따스했다. 연분홍 꽃잎에 보라색 꽃술을 단 진달래는 골짜기에서 꼭대기까지 산 어디나 붉게 피어 마치 봄을 탄생시키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의 새로운 출산은 정갈하고도 튼튼했다.

이렇게 만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을 왜 인간들은 차별을 두어 높낮이를 재는 걸까?”

복돌이는 신분의 벽이 너무나도 두껍고 단단해서 천하의 그 무엇으로도 그 벽을 깰 수 없다는 절망감에 치를 떨었다.

낫을 시퍼렇게 갈아 막 물을 차고 오르는 나무 가지들을 사정없이 쳐 내렸다. 가슴에 쌓인 울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지들을 자르고 쓰러트리며 몸부림을 쳤다. 왠지 모를 서글픔과 울분이 뒤범벅이 되어, 손마디가 찢어져 나가도 아픈 줄 모를 만큼 오래도록 낫을 휘둘렀다. 얼마간 힘을 빼고 나서 나무 둥치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새들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포로롱포로롱 복돌이 근처로 날아다니며 제각기 떠들어댔다.

평생을 큰 뜻 한 번 못 펴고 주인댁 일만 하다 죽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지.”

복돌이는 힘없이 혼자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갈등과는 무관하게 자연은 정교하게 질서를 지키며 계절을 이동시켰다. 그러는 사이 이듬해 봄, 나라에는 방이 붙었다. 인재를 등용하고자 과거 시험을 치르니 유생들은 참가하라는 방이었다. 오래 동안 글공부에 전념한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속속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떠나기 전날 저녁 오랜 만에 최 도령과 복돌이는 자리를 함께했다. 한동안 서먹하게 지내던 터라 별 할 말은 없었지만 복돌이는 과거 시제에 대해 예상되는 몇 마디 말을 최 도령에게 전해 주었다. 최 도령은 복돌이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지만 복돌이가 한사코 만류하는 바람에 다른 하인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복돌이는 소리 없이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곧 이 마을에 또 한 번의 경사가 생겼다. 합격자의 명단에 최 도령의 이름이 들어 있었으니 가문은 물론, 최 도령 개인에게도 크나큰 영광이었다. 다만 복돌이만이 가슴 안쪽에서 질투라고 하기엔 좀 다른 미묘한 감정이 들어 아무 표정도 짖지 않았다. 최 도령은 그런 복돌이를 미워할 수 없는 처지라 서로 담담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인댁 서방님이 말을 타고 궁궐로 입궐하는 날 마을엔 잔치가 벌어졌다. 영광스러운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주인댁에서 잔치를 베푼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 일인 양 들뜨며 기뻐했다.

복돌이는 간간 최 도령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여 말을 타고 귀향하는 꿈을 꾸곤 했었다. 머리에 어사화를 꽂고 마을로 들어서면 천지가 덩달아 신이 나는 그런 꿈을 남몰래 꿔 보며 기분을 달래곤 했었다. 벼슬이라는 영광도 좋지만, 그가 아는 지식으로 세상을 통치해 보고픈 사내장부다운 포부가 있었으나 그 꿈이 가당치 않다는 것 또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처지가 날로 한심하게만 생각되었다. 최 도령의 영화 뒤엔 쓸쓸한 복돌이의 삶이 초라하게 지게 위에 얹혀 있었다.

서방님이 입궐하기 위해 길을 떠난 날 복돌이는 방 한 켠에 쌓아 두었던 책들을 모조리 불살랐다. 복돌이는 활활 타오르는 불더미 앞에서 책들을 낱낱이 뜯어 불 속으로 던지고 있었다. 불은 세상을 삼킬 듯이 타올랐다. 두리실 네는 이제야 복돌이가 철이 드나보다고 내심 반가워하면서도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덜미를 잡아 복돌이의 동태를 자세히 살피곤 했다.

아침이 되었다. 서방님은 길을 떠나고 사람들은 잔치 뒷치닥거리를 하기 위해 주인댁으로 모였다. 복돌 어멈도 안채로 들어갔으나 가는 내내 복돌이가 마음에 걸려 마음이 온통 집으로 향해 있었다. 어제 저녁부터 굶은 복돌이가 아침도 거른 채 침통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붕 꼭대기에서 막 서쪽을 향해 넘어갈 때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두리실 네가 복돌이를 주기 위해 지짐이 한쪽을 앞치마에 싸는 순간 뒤채에 있는 복돌 네 거처 쪽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났다. 남들은 떠들썩한 가운데 남은 음식을 나누느라 아우성이어서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두리실 네 귀에는 너무도 선명히 들렸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급히 집을 행해 달려갔다.

복돌아~!”

두리실내는 땅인지 허공인지 헛다리를 짚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미 복돌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때 우물가에 짚신 두 짝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복돌이 것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황급히 들여다보니 우물은 이미 사람을 집어 삼킨 뒤 시치미를 떼고 이무기처럼 시커먼 어둠을 한 입 베어 물고 있었다.

 

저만치 건너다보이는 냇가엔 버드나무와 미루나무가 물이 오른 채 연둣빛 잎사귀들을 하나 둘씩 매달고 아련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잔잔히 흘러가는 물결 위로 끊임없이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동쪽으로 부옇게 먼동이 텄다. 산과 마을과 나무의 실루엣이 선명해지면서 밤새 고단한 잠을 자던 세상은 복돌이의 아픈 운명과는 아무 상관없이 서서히 아침을 열고 있었다.

 

집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자 대궐에서 돌아온 최 도령은 한동안 침울해했다. 그런 아들을 침통함에서 빼내기 위해 주인은 서둘러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 후로도 최 도령의 마음의 충격은 오래 갔는데 잠을 자면 꿈에서 복돌이가 관복을 입고 그 우물자리 한가운데 서 있곤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흉물스러운 우물 근처엔 근접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옛 우물 한가운데 싱싱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 도령은 그 느티나무를 복돌이의 혼이 담긴 나무로 생각하고 주변을 말끔히 정리를 한 뒤 정성껏 키웠다.

 

그 후 500여년이 지나도록 이 마을엔 느티나무가 울면 마을에 일제히 도둑이 드는 등 느티나무의 태도에 따라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곤 했다고 한다.

그토록 세상을 높고도 넓게 바라보고 싶어 했던 복돌이가 느티나무로 자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의 그늘 아래 품는 것이라고 마을사람들은 생각했다고 하니, 누구에게나 골고루 기회가 주어진 오늘날에 그가 살았다면 아마도 큰 자리 하나쯤은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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