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월리 가마소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420

송정동에서 퇴촌방향으로 2Km쯤 내려가면 지월리라는 아름다운 지명의 마을이 있다. 유난히도 달과 인연이 깊어 설월리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 앞에 곤지암 천과 경안천이 합류해 팔당호로 흘러들어가는 소가 있는데 수면으로 보면 얕은 물이어서 갑자기 빨려들어가는 수심 때문에 종종 익사사고가 생기기도 하는 장소이다. 이 인근엔 물이 유독 맑아서 맑을 경자를 쓴 경수라는 지명이 있다. 이름만큼 물속에 비치는 달빛이 환해서 달밤엔 이 일대가 유난히 환하다. 이 마을엔 아름다운 지명만큼이나 맑고도 애절한 사연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그것이 곧 가마소에 관한 이야기다. 가마소에는 하늘이 맺어준 배필을 외면하고 세속적인 연을 따르다 그만 물에 빠져 죽게 된 처녀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아주 오래된 옛날의 일이다.

 

이 마을엔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초로에 접어든 부부는 큰 벼슬을 하진 못했어도 선대부터 워낙 근면 성실한지라 꽤 많은 전답과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하인들도 여럿 두고 있었다. 부부가 다 후덕한지라 인심이 늘 훈훈했다.

보름달이 저리 환하게 떠오르는걸 보니 올해도 풍년이겠지요?”

그러게 말이오. 금년에는 박 서방 네 거처를 따로 한 채 지어야겠소.”

남편은 책력을 넘기며 새로 방 한 칸을 들일 적당한 시기를 알아보느라 아내의 말에 느리게 대꾸했다.

우리가 이렇게 편히 사는 데는 박 서방 부처의 힘이 크지요. 박 서방네나 우리나 자식이라도 하나 있으면 오죽이나 좋아. 제 덕이 부족해서 그만…….”

아내는 금세 얼굴이 저녁처럼 어두워졌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게 어디 부인 탓이오. 다 우리들이 타고난 팔자지.”

지아비의 위로는 언제나 더 큰 못이 되어 가슴에 와 박혔다. 금슬이 너무 좋으면 자손이 생기지 않는다는 옛말이 이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부엉이가 홰를 치고 날아가는지 밝은 달빛을 뚫고 엄숙하기 짝이 없는 그림자가 마당으로 지나갔다.

 

부인은 정갈하게 빗은 머리를 다시 한 번 메 만지고 하얀 버선발로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뒤뜰에 칠성단을 모셔놓고 벌써 백 일 째 치성을 드리는 중인데 내일이 정월 대보름인데다 기도 백 일 째 되는 날이라 특별히 마음이 더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쪽머리가 땅에 닿도록 수차례 다소곳이 치성을 드리는 부인의 가르마가 달빛에 가느다랗게 빛났다. 지아비의 마음은 애잔히 녹아드는 듯 했다. 그도 가만히 아내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이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듯했다.

 

달이 점점 크게 떠올라 하늘을 가득 채웠다. 부인은 그 기운이 온몸으로 차올라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창백해지며 어딘가로 자꾸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는데 흰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이 손을 잡아주는 바람에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이 마을에서 가장 깊은 곳에 다리를 놓고, 새벽에 그 다리 위에서 치성을 드리거라. 그리하면 손을 볼 수가 있을 것인즉, 장성하게 되면 신분을 생각 하지 말고 혼사를 치르거라. 만일 내 말을 거역하면 큰 화가 미칠 것이니라.”

노인은 학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부인은 온몸이 형용할 수없는 바람의 기운으로 터질 것 같았고 왠지 끝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남편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슬픔과 기쁨은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꿈에서 깬 후에도 흐느낌은 계속되었다.

참 신기한 꿈이예요. 신령님이 우리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하시네요. 정말일까요?”

당신의 지성이 하느님을 감동시켰나 보오. 너무도 기쁘오.”

그런데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남편은 좋아하면서도 염려하는 아내의 모습이 애처로웠으나 우선 자식을 주시겠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든 자식만 점지해 주신다면야 못 따를 것이 무엇이 있겠소. ! 무슨 일이라도 마땅히 따라야지.”

부부는 그날부터 물줄기 중 가장 깊은 곳을 골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다리에 쓰이는 자재를 최고로 좋은 것으로 고르고 정성을 다해 작업에 착수했다.

 

새벽 공기는 유난히 맑아서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부부는 매일을 하루같이 촛불을 밝히고 정화수를 올려 치성을 드렸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면 하늘이 온통 여명으로 붉게 물들었다. 부부는 그런 아침이 좋아 마냥 행복하게 걸었다. 풀잎도, 이슬도 천지가 맑게 깨어나는 듯했다.

치성을 드린 지 석 달 열흘, 베틀에 앉아 베를 짜던 부인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지축이 흔들리더니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누리 가득 퍼졌다. 너무도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었는데 그 빛 속에서 구슬 하나가 내려와 창문을 통해 부인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너무 놀라 흠칫 잠에서 깨어났다. 하도 기이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혹시 태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떨렸다. 어딘가에 등실 떠올라 천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러워 지아비 외에는 누구에게도 꿈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곧 태기가 느껴졌다.

부인이 산기가 돌자 하인들이 분주히 소리 없이 오고갔다. 마침 박 서방 아내도 산기가 있어 배를 앓았지만 주인마님과 함께 아이를 낳는 다는 게 민망해 입을 틀어막고 쥐 죽은 듯이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랜 산고 끝에 부인은 드디어 건강한 딸을 낳았다. 바라던 아들이 아니었지만 워낙 자손이 없었던 터라 딸이어도 그저 감지덕지였다. 박 서방 아내도 아들을 낳았다. 뛸 듯이 기뻤으나 주인댁은 딸인데 자신만 아들을 얻은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에 박 서방만 공연히 연신 머리를 조아려 민망함을 표했다.

 

봄과 여름이, 또 가을과 겨울이 격류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저 애기씬 참 영리하기도 해

그러게 말여. 인물이 훤하지?”

, 치성을 드려 얻었으니 안 그렇겠어? 이담에 누가 데려갈지 참 복 받은 겨.”

부모의 손을 잡고 외출을 할라치면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신령님으로부터 구슬을 얻어 낳았다 하여 구슬이라 이름 지었다. 금지옥엽은 나날이 어여쁘게 자랐다.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계절이 밀려갔다 또 밀려오곤 했다. 세월은 구슬이의 꽃피는 영혼에 환하게 걸려서 그의 눈매에는 푸른 바다가 그득히 깃들었다.

 

돌쇠는 새벽마다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곤 했다. 나무뿌리가 몸을 뚫고 들어와 핏줄을 따라 쭉쭉 뻗는 바람에 전신이 뻐근하게 아픈가 하면, 자꾸 구슬아가씨의 방을 훔쳐보다 들키는 바람에 도망가느라 몸이 흥건해서야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생기기 시작한 이 잠속의 몽환은 그를 야릇한 슬픔에 싸이게 했다. 돌쇠는 헌헌장부로 크고 있었다.

돌쇠는 참 잘도 생겼지. 양반님 네서 태어났으면 한자리 했을 텐데.”

그러게 말여. 인물이 아까워. -…….”

아 그래서 요즘 우리 용순이 년이 부쩍 열을 올리잖어. 구슬애기씨 혼사 치르면 날 잡아 맺어 줘야겄어.”

용순 어멈은 마치 약조라도 되어 있다는 듯 의기양양했다.

으이그, 돌쇠 짝이 되려면 우리 점이정도는 돼야지. 용순이는 좀 그렇지 않어?”

뭐라고? 우리 용순이가 어디가 어때서. 그러는 점이 네는 말이 되냐? 아직 열 살도 안 된 점이 년을 어따 찍어다 부쳐. 우리가 뭘 한다고만 하면 공연히 나서고 지랄이여.”

종당엔 서로 악다구니까지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돌쇠로서는 잘생긴 용모나 튼실한 체격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몸소 체험한 신분 차이는 구슬아가씨를 감히 올려다 볼 수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고, 그걸 깨닫는다는 건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왜 아무런 잘못도 없이 타고날 때부터 상하를 나누는 건지 일견 울분이 쌓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산란한 날이면 냇가로 나가 물고기 대신 어둠을 미끼로 자신의 마음을 투망질하다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달이 환했다. 꽃이란 꽃은 죄다 피어 눈부시게 하늘거리고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지 구슬아가씨가 뜰로 나와 마치 꽃잎 속으로 잔잔히 흘러들어가듯 조용히 걷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잠이 오지 않던 돌쇠도 종종 봄밤을 서성이곤 했었는데. 자석에 이끌리듯 자연 구슬아가씨에게로 향해졌다. 돌쇠는 한 발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돌쇠인 줄 아는 구슬이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

…….”

제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렸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가슴만 두방망이질을 칠뿐 전신이 굳어버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구슬아가씨는 조용히 웃으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돌쇠는 이대로 영영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날이 자신도 모르게 구슬아가씨를 향해 생기는 마음 때문에 주체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고, 마치 광활한 우주에 혼자 뚝 떨어진 최초의 인간이자, 마지막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섭도록 적적했다. 한 발짝 앞에 있는 구슬 아가씨가 마치 먼 하늘나라에 있는 것처럼 아득히 느껴지기도 하고, 당장이라도 와락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서 호흡은 멈추어질 듯 거칠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을 것을.”

…….”

돌쇠 나이 어느새 열여섯이었다.

 

함께 놀던 어린 시절로부터 구슬이를 먼 꽃다운 청춘으로 데려다 놓은 건 세월이었다. 어른들이 돌쇠로부터 떼어놓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엔 아득한 슬픔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채게 되었다. 구슬이에겐 언제나 초저녁의 고요함과 아침 햇살 같은 명랑함이 함께 있었다. 이미 백발이 성성해진 부부는 그런 구슬이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다. 구슬이도 나이 들면서 돌쇠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죄가 된다고 생각할 만큼 너무도 반듯한 처녀였다. 더러 가슴 한편에 싸한 슬픔이 느껴질 때면 혼자 한숨을 살포시 내 쉬어보는 것이었다.

 

산 너머 김초시댁으로부터 사주단자가 도착되었다. 가세는 그리 왕성치 못했으나 워낙 용모가 뛰어나고 똑똑한지라 인근에 수재라고 소문이 파다했다. 부부는 그만하면 만족한 사윗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애지중지하는 딸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 섭섭해서 그 후 어찌 살아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아직 꽃이 피기엔 먼 2월 중순이었는데, 2월이 좋다하여 혼사 날을 2월로 잡았다. 어느새 혼사는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구슬이는 잠을 못 이루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잠 속에서 지축을 흔들 듯 바람이 불더니 그 회오리바람 속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구슬아! 듣거라. 너는 나 옥황상제의 딸이니라. 너는 내 일곱 째 딸인데 네 부모가 하도 자식을 기다려서 너를 잠시 지상에 내려 보냈느니라. 네 배필로 하늘의 귀한 인재를 한 집에 내려 보냈으니 지금이라도 그 배필과 혼인을 하거라.

빛 속에서 그 목소리는 그간의 사연을 모두 들려주었다. 그리고 명을 어기면 돌쇠와 자신을 거둬가겠다는 말도 남겼다. 목소리가 사라지자 발밑이 푹 꺼지며 천 길 낭떠러지로 뚝 떨어져 내리는 바람에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놀라 달려 나온 부모님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부모는 아연실색을 했다. 오래 전 꿈속에서 하늘의 명을 어기지 말라했던 말이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영감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이제라도 혼사를 파기하고 돌쇠와 혼인 시킵시다.”

영감은 한동안 말없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마 아이가 긴장을 해서 개꿈을 꾸었나보오. 제집 머슴의 아들과 혼인시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오. 신령님도 노망이시지…….”

특별히 돌쇠를 아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구슬이와 짝을 맺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예기였다. 이것저것 걸리긴 했지만 아이의 꿈이 개꿈일 수도 있다 생각하여 혼사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옛날의 약속 따윈 까마득히 잊고 그저 세속적인 기쁨에만 취해 있었다.

 

초례청이 만들어 지고 꽃단장을 한, 그야말로 꽃 같은 구슬이가 초례청으로 나왔다.

모든 사람이 감탄할 만큼 실로 아름다웠다. 돌쇠는 뚫어져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식 전부를 보아 두었다. 제 사랑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뭉클 올라왔다. 초례청을 뒤엎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 받아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잔치는 인근마을이 술렁일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초야를 치른 다음날 신행길에 오른 일행은 넘어야할 산이 꽤 높은 고로 서둘러 길을 떠나기로 했다. 부부는 이루 말 할 수없이 섭섭했으나 눈물을 보이면 행여 딸자식 시집살이에 해라도 될까하여 애써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가마꾼과 혼수를 등에 멘 사람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돌쇠도 멀찌감치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평소에 잘 알던 길은 오간데 없고 자꾸 낯선 길들이 나타났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다 겨우 길을 찾아 한참을 가면 여전히 아까 가던 길로 되돌아와 있곤 했다. 앞잡이가 시원찮다느니, 어찌된 일이냐느니 일행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돌쇠도 어이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그냥 안타깝게 뒤를 따를 따름이었다.

익숙한 개울 앞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구슬이를 얻기 위해 치성을 드리던 그 다리였다. 아직 꽃피는 봄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계곡의 얼음이 녹아 개울물은 한껏 부풀어 있었고, 맑고 푸른 물은 얇은 안개로 막을 친 채 흐르고 있었다. 늦었지만 이젠 옳다구나 싶어 다리를 건너는데 달이 다리 위를 훤하게 비췄다.

일행이 다리를 중간 쯤 지날 무렵이었다. 돌연 먹구름이 달을 삼키더니 갑자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뭔 일여? 이거 원 앞을 분간 할 수가 있어야지. 미끄러워서 가마를 쥐고 있을 수가 없네. 그랴.”

어디 잘 좀 해봐, 큰일이구먼. 그러게 꽃필 때 잔치를 했으면 이런 일은 없을 거 아녀.”

일행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눈보라는 점점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일행은 극도로 긴장을 하고 조심스레 발을 옮기다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돌쇠도 먼발치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으나 이참에 가마가 아예 저 다리를 건너지 못했으면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여보게 가마 좀 단단히 쥐게. 큰일 나겠어. 나 참

아 날보고 어쩌라는 거여? 지금 최선을 다 하잖어

아차하면 가마도 사람도 개울 아래로 떨어질 판이었다. 좌지우지 하는 동안 눈은 더욱 세차게 내렸고 상황은 매우 급박해졌다. 진퇴양난의 시간을 견디다 가마꾼들은 지쳤고 급기야 신부를 태운 가마는 손을 미끄러져 나가 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첨벙

…….”

가마는 깊고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물소리는 하늘로 진동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 채 멀어져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구름은 서서히 걷히고 눈도 멈추었다. 천지는 고요하고 바람은 푸르렀다. 간간 부엉이 울음소리만 마른 풀잎으로 내려와 딱딱 부딪쳤다. 달은 하늘 높이 떠올라 시린 빛들을 쏟아 붙고 있었다.

그 후로 돌쇠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연의 내력을 아는 건 오직 부부 뿐이었다. 마을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물지었고, 그 후 구슬이가 달밤에 가마 타고 가다 빠졌다 하여 이 장소를 설월리 가마소라 불렀다.

하늘나라로 간 구슬이는 슬픔에 잠기셨을 부모님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사무치게 그립기도 해서 밤마다 옥황상제 몰래 달을 타고 나와 이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부모님과 함께 걷던 길이며, 돌쇠와 뛰어놀던 골목길. 용순이, 점이와 함께 놀던 언덕들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 날마다 이 일대를 내려다보게 되었고, 그런 구슬이의 눈물 때문에 달이 얼룩졌다고도 한다.

초월, 지월, 설월은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달이 밝은데 그것은 옥황상제께서 슬퍼하는 구슬이를 위해 이 일대를 지나칠 때는 더욱 환히 밝히게 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지금도 달이 빠진 가마소의 밤 풍경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지의 오묘한 힘은 그 영향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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