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하늘은 푸른 물감을 엎은 듯이 푸르렀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강변에 온통 갈대들이 너울거렸다. 그 강변 승지골 산 아래서 북소리와 징소리 그리고 방울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졌다. 굿판이 벌어진 것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강물 위로 수 십 길쯤 되는 절벽이 산기슭에서 강물로 향해 있다. 절벽 아래 빙빙 도는 용소는 불어난 물줄기를 가두지 못해 마치 몸부림치듯이 강변 옆 연못과 돌다리를 넘치게 흘러내린다. 그곳에 절벽을 타고 굿을 알리는 금줄이 강 건너 자갈밭에 까지 길게 드리워졌다. 한창 무르익은 굿판의 요란한 소리가 절벽에 부딪쳐 흩어지길 반복했다.
이 마을 집집마다 추렴을 하고 종가에서 보탠 돈으로 치르는 굿거리장단을 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몰려나온 강기슭에서 한 선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선조 숙종임금 대에 통정대부 호조참의를 증직 받은 구문찬(具文粲) 관선제(觀善薺)공이다.
큰 차일아래서 울긋불긋한 당옷을 입고 방울을 흔들며 귀신의 혼령을 받아들인 무당이 뛰었다. 온 몸이 땀에 젖은 무당은 뛰다가도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떡시루와 돼지머리와 온갖 제물들이 얹혀있는 제상 앞에 엎드리길 반복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옥황상제님께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승지골에 신령님, 뱅대 물에 용신님, 생원 댁에 터주님, 집집마다 삼신님, 이 마을의 신주님께 머리 풀고 비나이다. 억울하게 죽은 도령 혼이 되어 비나이다. 원통하게 죽은 도령 몸이 되어 비나이다.”
몇 몇 아낙이 무당을 따라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부족한 게 인간이라 상제님께 죄를 짓고 신령님께 죄를 짓고 용왕님께 죄를 짓고 성주님께 죄를 짓고 이곳에서 비옵니다. 노여움을 거두시고 이 마을에 있는 가련한 귀신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을 거두어 주십시오.”
만장이 바람에 펄렁였다. 흑흑 흐느끼며 설움에 겨운 무당의 통곡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둥, 둥, 둥, 둥, 북소릴 타고 아낙들이 들고 있는 대나무가지가 벌벌 떨렸다. 허공을 가르는 시퍼런 칼날이 햇볕에 반짝이며 무엇을 베는 시늉을 했다.
‘저 절벽이 기가 너무 세구나!’ 하는 혼잣말을 하듯 선비가 바라보는 건너편에는 마치 용트림이라도 하는듯한 기묘한 형태로 강물 속으로 뿌리가 박힌 거대한 바위가 있다. 검은 바위는 빨려들듯 맴도는 용소를 굽어보며 묘하게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준다.
그 절벽이 자리 잡은 승지골은 바위산이다. 사철 철따라 바라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워 천렵장소로 인근사람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늘 찾았다. 부근의 빼어난 경치와 어우러진 이른 봄부터 바위틈에 피어나는 진달래꽃이며 붉게 물든 단풍나무 층층나무 군락들이 빼곡했다. 골짜기마다 다래와 머루 덩굴들이 지천이었다. 더구나 이 산줄기가 있는 거물개산의 속살이 보이면 안 된다는 지관의 말에 땔나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해서 산의 정기가 마을을 보호 한다고 마을사람들은 믿었다. 곳곳에 즐비한 바위 너럭과 자갈밭이 모래사장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곳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굿 소리가 잦아들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선비는 문득 몇 년 전에 있었던 진사 댁의 참극이 떠올랐다. 온 마을이 놀라고 한 집안이 풍비박산 된 사건이었다.
따듯한 봄바람이 곧 매화꽃을 피울 듯 온 동네를 쓸고 가는 이른 봄 이었다. 진사 댁 기와지붕 위로도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올랐다.
“임자 아직 만복이가 안 왔소?”
사랑채 장지문을 열며 진사는 긴 장죽을 입에 물고 성냥불을 그었다. 서당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는 아들이 염려스러워 조바심이 난 터였다.
“내달에 있을 과거시험이 코앞인데 공부를 하느라고 늦는 건지 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진사가 마침 식혜를 갖고 들어오는 부인을 보고 또 말을 꺼냈다.
“임자, 이번 시험에는 아직 만복이가 어리니 내년에나 응시하도록 하면 어떻겠소?”
“영감, 만복이가 공부한지 벌써 십년이 다 돼가요 과거시험에 응시라도 해 봐야 내년에 더 시험을 잘 볼 것 아니요?”
부인은 안 될 소리라는 듯 도리질을 쳤다.
“글세 아직 어린애인데 올해는 장가나 들이도록 합시다.”
아들의 과거에는 크게 마음 쓸게 없다는 듯 진사가 다른 말을 꺼냈다.
“영감 마침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안거리 김촌말에 양반 댁 규수가 있다는 구려, 혼기가 찾는데 집안이 가난해 선뜻 시집보내기가 어려운 처지라고 하네요.”
“혼기가 찼다면 우리만복이 보다 나이가 많을 것 아니요 몇 살이나 된다고 합디까?”
“만복이가 열네 살이니 그 처녀는 열아홉 살이라고 합디다.”
“이제 민며느리를 들일 나이도 아니고 마땅한 처자를 물색하긴 해야 할 텐데······. 임자가 알아서 하구려.”
“하여튼 내일 중 이라도 매파를 넣어보겠어요 마땅하면 혼인을 정하든지 할게요.”
부인은 큰 근심 한 가지를 덜어낸 듯 환한 낯빛으로 사랑채를 나와 안채로 향했다. 그 집 진사부부가 삼대독자로 늦게 얻은 아들이 만복이었다. 늦게 얻은 아들에게 모든 복이 깃들라고 만복이란 이름을 지어줬건만 아들은 공부보다는 놀기 바빴다. 십리쯤 가야 있는 서당조차 몸이 아프다는 등 꾀를 부리며 가지 않고 맘에 드는 동년배들과 어울려 노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아직 철이 없는 어린아이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부부였지만 어떡하든 과거도 보고 장가도 들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만복의 얼굴에는 콩깍지처럼 얽힌 마마자국이 흉해서 ‘도련님’으로 부르던 상민들과 하인들도 뒤 돌아서서는 곰보도령이라고 몰래 불렀다.
장가갈 나이가 됐지만 유난히 아들을 위하는 그 집 부인이 남에게는 인정 없고 성질이 별로 안 좋아서 매파들이 들지 않았다.
어서 아들을 장가들여 손자라도 보고 싶은 마음은 부인도 진작부터 있었다. 아들이 장난이나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나이 들면 다 저절로 깨칠 것이다. 잘못을 방관하고 보호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대를 이어줄 아들을 얻은 것만 해도 삼신할미와 조상님께 고마웠다.
부인은 어제 종손 댁으로 마실을 갖다가 마침 그곳에 온 인근매파를 만나서 참한 규수가 있으면 며느리로 맞고 싶다는 부탁을 했다. 잘 성사만 되면 큰돈을 주겠노라는 언질까지 얹어주었다.
진사가 사는 마을은 오래전부터 양반 촌으로 알려졌다. 마을이 한 성씨로 이루어진 집성촌이었다. 마을 뒷산에 산소를 쓴 큰 벼슬을 한 윗대어른의 후광으로 나라에서 하사한 사방 십여 리가 넘는 문중 땅들과 병풍처럼 둘러친 산들이 모두 그 양반촌의 재산이었다. 초가집과 기와집이 대부분을 이루는 삼십 여 호의 집들은 양반들과 그 밑에서 농사를 짓는 상민들이 살았다.
진사 댁은 큰 재산이 있는 집은 아니었으나 논 스무 마지기와 밭 몇 뙈기를 부치며 유복한 생활을 하는 집이었다. 농사일은 마을에 있는 상민들이 주로 품삯을 받고 거들거나 만복이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은 노비 돌이와 그 어멈이 진사 댁 행낭 채에서 살면서 주인댁을 위해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돌이는 어느새 스무 살의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었다. 아비가 폐병으로 죽고부터 돌이는 이 집의 농사를 도맡아 지었다. 어려서부터 아비를 따라다니며 배운 농사일과 눈썰미까지 좋은 돌이로 인해 진사 댁은 해마다 곡식들이 광을 채웠다. 그도 장가를 들어야 할 나이였다.
“돌아, 네가 장가를 가야 할 텐데, 왜 주인마님은 네 장가보낼 생각을 안 하시는지 모르겠구나, 너도 살림을 꾸려 아들 딸 낳고 살아봐야지······.”
“어매, 장가들면 뭐 팔자라도 핀다고 그 소릴 하누, 새끼 나봤자 쌍놈밖에 더 되겠수, 장가들 생각 없어라우,”
돌이는 생각이 깊었다. 상놈은 대대로 양반을 위한 종살이로 한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모순된 세상이 싫었다. 타고난 팔자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할 것 같은 피가 끓는 청년이었다. 돌이 어멈은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모르는 주인이 만복이만 위하는 게 요즘 들어 부쩍 섭섭했다.
앞산 응달에 남아있던 잔설이 녹아내리는 이른 봄이 왔다.
“영감, 김초시네 집서 혼인날을 잡아 보냈어요. 우리도 서둘러 사주를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임자 그 김초시네 집에다 쌀 두어 가마니 실려 보내구려, 아무래도 우리가 그 집보다는 사는 게 넉넉하니 혼수도 우리가 장만하는 게 좋을 듯싶소.”
“그렇잖아도 좋은 혼수 감 몇 필 그 집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해 놨어요. 이제 우리 집도 식구가 늘게 생겼어요.”
혹시 혼사가 틀어질까봐 매파에게 돌 덤불 아래 있는 서너 마지기 논도 김초시가 딸을 주면 주겠다는 약속을 한 부인이다.
“안채 건넌방도 말끔히 손질 해 놓도록 하시오. 이제 만복이만 철이 들면 우리는 조상님께 할 일을 다 한 듯하오.”
“다 새 식구가 할 탓 이지요, 그 집 딸이 나이가 찬 만큼 알아서 잘 하겠지요, 영감!”
진사 부부는 가난한 집 딸을 데려오는 게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그 아버지가 초시에 합격한 양반집안인 것을 다행으로 삼았다. 윗대 조상님들이 큰 벼슬을 한 양반문중이 하대하는 상민 집안과 혼인을 할 수는 없었다.
혼인날이 되었다. 진사네 집은 혼인을 보러온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마당에 차일을 치고 초례청을 세웠다. 드디어 가마에서 내린 새 색시가 초례청 앞에 섰다. 보름달처럼 훤한 이목구비가 단박에 눈에 띄는 색시였다. 콧날이 오뚝했으며 거울처럼 빛나는 큰 눈을 내리깔고 족두리를 쓰고 원삼을 입은 신부를 보고 아낙들이 수군댔다.
“이집 신부가 집안 중에 제일 어여쁜가 봐요”
“세상에 만복이가 이제 이름값을 하는가벼, 저런 아낙을 배필로 맞아드리는걸 보니”
“신부가 저렇게 이쁘면 되려 복이 달아난다는 소리도 못 들었소, 어느 정도 신랑이랑 어울려야지 원,”
그들은 혹시라도 신랑부모의 귀에 들릴까봐 몰래 수군거렸다. ‘화용월태라더니 새 애기가 꼭 그 말과 같구나, 저 미색이 어쩐지 불안하네,’ 새 신부를 보는 순간 진사부인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초례청에 불안한 모습으로 엉거주춤 마주 선 신랑 만복의 용모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왜소하고 작은 체구 아직 소년티를 못 벗어난 모습이었다.
둘은 맞절을 하려고 두 손을 머리로 얹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었는지도 모르게 열두 폭 병풍이 신랑신부의 머리로 쓰러졌다. 그 바람에 신랑의 사모가 땅에 떨어졌다. 둘러선 사람들이 깜짝 놀라 병풍을 다시 세우자
“에그머니, 왜 이런대요, 오늘같이 좋은 날”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새 색시가 저리 꽃같이 예뻐서 바람이 심술을 부리는가 봐요”
신랑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다시 사모를 썼다.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일까’ 그림처럼 고요히 서 있는 새 며느리를 보는 부인의 마음이 마구 방망이질을 쳐댔다.
부모님의 종용을 견디지 못하고 가마를 탄 신부였다. 매파가 양반가문이며 부잣집으로 소문났다는 시댁에 대한 이야기는 장황히 늘어놓으면서도 신랑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가마에서 내려 첫발을 디디며 초례청으로 향한 신부에게 한 치 앞에선 신랑의 모습이 보였다. 콩 멍석처럼 얽은 얼굴 아직 젖내가 풍길 만큼 어린 신랑이 병풍에 맞아 머리에 쓴 사모가 떨어졌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놀란 시어머니의 얼굴도 슬쩍 보았다. 순탄치 않은 시집살이가 자신의 일생을 지배하리란 예감에 발끝이 저려왔다. 신부는 원삼 아래로 맞잡은 두 손을 피가 맺히도록 꼭 쥐었다.
시부모님과 친척들에게 공손히 절을 올리고 건넌방 방석위에서 긴 하루를 견뎌 낸 신부였다. 철없는 신랑은 첫 닭울음소리가 날 때까지 안방에서 건너오지 않았다. 하얀 찔레꽃이 뒤란 장독대 옆에 눈가루처럼 쌓인 유월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화용월태 같던 새아씨의 얼굴이 볕에 그을려 검게 탄 것을 본 돌이는 가슴이 아팠다. 공부를 하는지 노는지 밖으로 나도는 새 신랑 만복이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새 아씨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주인마님도 미웠다. ‘왜 나는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을 낳아준 노비출신의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한 때는 이 집을 나가 대처로 갈 꿈을 꾸기도 했지만 새 아씨가 시집을 오고부터는 은연중에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유일한 주인인 듯 기회만 있으면 새 아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주인도령님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씨였다. 선녀처럼 예쁜 새 아씨를 철없는 주인도령이 이런 저런 이유로 괴롭히는 게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주인마님의 눈초리가 한참씩 자신에게서 머물다 간다고 느끼기도 하였다. 그림처럼 고요한 새 아씨를 연모하는 마음이 남몰래 자리 잡기 시작한 그도 피 끓는 한창나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마님은 소꼴을 베어오다가도 새 아씨와 마주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돌이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이 ‘언제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 할 것이냐’는 걱정을 듣게 하는 아들과 며느리가 ‘철없는 남편 뒷바라지에 고생이 많겠다.’ 는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아들하나 바로잡지 못하는 며느리네 친정으로 떼어준 도장골 몇 다랭이 논도 아까웠다. 그런 날이면
“네가 이 집에 올 때는 대를 이어줄 손자라도 낳아주길 바랬다. 네 시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손자 보긴 틀린 것 같구나, 왜 소식이 없냐?”
“어머니, 아직 서방님은 공부에 바쁜 나머지······.”
공연한 트집을 잡는 시어머니에게 차마 만복이 사내구실을 못한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너 시어미 말이 우습냐? 남편하나 바로잡지 못하는 주제에 얼굴엔 늘 분을 처발라, 무슨 꿍꿍인지 하늘이 무섭다 너?”
“······.”
“네 친정에서 널 우리 집에 보낼 적에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던? 네가 만복이가 나이어리다고 함부로 하는 모양이니 만복이가 겉돌지 어휴 속 타!”
말도 안 되는 억지라도 퍼 부어야 속이 후련했다. 아무리 밭일을 해도 고운얼굴이 미웠고 트집거리였다. 그럴 때마다 며느리는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으로 시집살이를 잘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친정어머니 당부를 다시 새겼다.
혼인한지 이태가 지났는데도 태기가 없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구박이나 잔소리에 언제나 말이 없었다. 손자를 기다리던 영감은 시름시름 병을 앓는지 오래됐다.
그날은 장마를 앞둔 하지 무렵이었다. 돌이는 쇠꼴을 한 짐 해다 놓고 감자밭으로 나왔다. 바깥마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청마루에서 훤히 보이는 텃밭이었다. 새 아씨가 감자를 캐고 있었다. 그때 돌이의 눈에 확 스쳐가는 섬뜩한 물체가 보였다. 독사였다. 새아씨의 손에서 한 뼘쯤 떨어진 감자포기 사이에서 세모꼴 대가리에 독을 잔뜩 품고 아씨를 노리는 찰나였다.
“아씨! 비켜 유! 독사 유!”
다급한 소리와 함께 돌이가 독사를 내리치는 순간 깜짝 놀란 아씨가 일어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돌이의 발이 아씨의 치맛자락을 꾹 밟고 있었다. 중심을 잃은 돌이가 아씨의 몸으로 엎어졌다. 돌이의 육중한 몸에 아씨도 넘어지면서 둘은 서로 껴안듯이 감자밭 고랑으로 나뒹굴었다.
아주 잠깐 사이였지만 돌이는 아씨의 깊고 깊은 몸 냄새를 맡았다. 신비하고 아득한 냄새였다.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슬픔이 온 전신을 휩싸는 향기였다.
“아씨 괜찮아유? 큰일 날 뻔 했네유”
돌이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아씨의 손을 잡았다. 엉겁결에 잡은 손이었다. 돌덩이처럼 투박한 돌이의 손에 끌려 일어난 아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을 하인처럼 무시하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철부지 남편 사이에서 머슴 돌이는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도와주고 마음써주는 남자였다. 아침마다 물을 길어다 주고 새벽이면 가마솥에 장작을 지펴 불을 때놓았다. 방아를 찧거나 큰일을 할 때마다 성큼 나서서 힘에 부치게 일하는 남자가 돌이였다. 소꼴을 베러갔다가 한 움큼 딸기를 따다 부엌선반에 올려놓는 것도 돌이의 짓이었다. 이따금 마주보는 돌이의 눈에서 슬픔인지 분노인지 그녀를 향한 눈빛에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돌이는 천한 노비였다. 그녀가 눈물을 훔치며 밭고랑에 다시 앉았을 때 감자밭둔덕을 버선발로 쫒아오는 시어머니가 보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놈! 너 아씨에게 무슨 짓을 한 게냐? 바른대로 말해라?”
시어머니는 분했다. 백주 대낮에 며느리와 종놈이 밭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못 볼 꼴을 안방 문을 열고 나서다가 보고 말았다. 돌이는 며느리 손을 천연덕스럽게 잡고서 일으키기까지 했다. 집안이 망할 일이었다. ‘어떻게 저 연놈이’ 두 방망이질을 치는 가슴을 억누르며 ‘오냐, 이참에 이 연놈을 물고를 내리라 ’ 다짐을 했다.
독사를 잡으려고 했다는 돌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감자밭에 독사는커녕 도마뱀 한 마리도 없었다. 이번에는 요동도 없는 며느리에게 화살을 돌렸다.
“어디 네가 말해봐라 정말 이 놈이 독사를 잡으려고 네 몸에 엎어진 게냐?”
“네”
“그래, 뱀이 어디 있느냐? 또 너희가 서로 손을 잡고 희희덕 거리는 걸 내 눈으로 봤는데도 딴 맘이 없었다고?”
“······.”
“왜 대답을 못하냐? 네가 이집에 와서 잘한 게 뭐가 있냐? 애를 낳았냐? 남편 뒷바라지를 잘 했냐? 이제는 종놈하고··· 어이구 집안이 망하려니까 세상에······.”
시어머니의 추궁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엾고 죄 없는 돌이가 불쌍했지만 생트집을 잡으려고 날뛰는 시어머니였다. 모든 걸 체념한 듯 아씨가 눈을 감았다.
시어머니는 남모르게 건장한 집안 젊은이 서너 명을 불렀다. 평소에 아들을 위해 자주 술값이라도 건네 준 가난한 친족들이었다.
“저 놈이 감히 우리 며느릴 겁탈하려고 했다. 종놈이 상전을 욕보인 죄는 죽여도 마땅하다지만 죽이지는 말고 너희가 알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단속 좀 해다오”
“알았습니다. 저런 놈은 죽여야 합니다.”
“멍석말이를 시켜서라도 정신이 들게 해야지요. 종놈이 상전을 욕보이면 죄가 어떻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그 놈이 평소에 우리를 우습게보더니 이번기회에 혼을 내 줍시다”
그들도 은근히 새아씨를 흠모하며 만복에 대해 질투를 느꼈던 터라 돌이의 행동이 분했다. 하인답잖게 잘 생긴 돌이에게 느끼는 열등감도 있었다.
주인마님의 집요한 추궁에도 완강히 버틴 돌이는 자신이 도망가면 새아씨가 더 곤란을 겪으리란 걸 알았다. 아니 하루라도 새 아씨를 못 보고는 이미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행낭 채 담벼락에 기대서서 망연히 생각에 잠겨있는 돌이 앞에 몽둥이를 든 건장한 세 청년이 다가섰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을 때 그의 이마에 번쩍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돌이는 곧 멍석에 말렸다. 그들은 사정없이 멍석을 내리쳤다. 피가 튀고 살이 떨어졌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돌이어멈이 수백 배 그들을 향해 빌고 마님께 울며 매달려서야 그들은 매질을 멈췄다. 피 범벅이 된 멍석 속에 돌이가 죽은 듯이 엎드려있었다. 새아씨는 그 광경을 문틈으로 내다보며 절망했다.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 돌이가 가엾고 안타까워 온 몸이 떨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돌이를 외양간 기둥에 붙들어 매고 청년들이 떠났다. 그날 밤이 깊었다. 돌이가 매여 있는 기둥을 더듬는 손이 있었다. 아씨였다. 돌이 어멈이 마님에게 불려가 큰 꾸중을 듣는 시각이었다.
“어서 이집을 떠나 멀리가거라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잘살아야 한다. 너의 어멈도 같이 모시고 가, 내 생각 말고 아주 멀리 가야한다.”
새아씨가 돌이의 손에 주머니 한 개를 올려놓았다. 고요하고 낮은 음성이 바르르 떨렸다.
“아주 멀리 가거든 이 패물을 팔아 살림밑천을 하도록 해. 어멈이랑 네가 그동안 내게 잘 해준 보답이란다. 너무 고마웠다. 영원히 잊지 않을게.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산길을 택해 멀리가!”
“아씨··· 저는 안 가요. 아씨를 두고 어디를 가요?”
“바보 같은 소리 할 때가 아니야 이 집에 있다가는 너도 죽고 나도 죽어 서방님이 너를 가만 두겠냐? 네가 떠나야만 나도 살수가 있어, 어서 아무 소리 말고 떠날 준비나 해.”
벙어리처럼 살던 아씨의 입에서 나온 단호하고 부드러운 말들이 바늘처럼 돌이의 가슴을 찔렀다. 아씨가 눈물을 흘리며 등을 돌렸다. 돌이도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에 굵은 눈물이 흘렀다. 과거를 보러 집을 떠난 주인이 돌아와 부릴 패악이 떠올랐다. ‘아씨가 사는 길이라면 내가 없어지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구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돌이는 아씨가 사라진 어둠속을 응시하다 대문을 나섰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절뚝이는 다리를 끌고 동구 밖 느티나무아래까지 왔다. 이곳에서 길이 갈린다. 한참을 망설이던 돌이가 강변으로 나가는 샛길로 들어섰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 물 흐르는 소리가 작은 뱅대부터 큰 뱅대까지 이어졌다.
“아씨, 저는 아씨를 두고 갈 수가 없답니다. 어딜 간들 상놈이 사람대접 받겠습니까? 차라리 물귀신이 되어 대대로 착취한 양반문중 심장에 비수나 꽂으렵니다. 사랑하는 아씨, 부디 행복하세요. 저 세상에서 아씨를 기다리며 아씨와 못다 한 인연을 내세에서 이루도록 기다리겠어요.”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물소리에 잠겨들었다. 잠시 후 휘청휘청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내, 아씨가 준 주머니를 꼭 쥔 돌이였다. 절벽아래 회오리치는 물길이 자맥질 하듯 솟구치는 돌이의 몸을 몇 번 돌리더니 잠잠해 졌다. 피에 절은 짚신 한 켤레가 유일한 유품처럼 강기슭에 놓여있었다.
이튿날 사람들이 연못으로 흘러내리는 수로에서 돌이의 시신을 건져냈다. 그리고 그 밤에 절벽에서 용소로 몸을 던진 새아씨의 시신이 돌이의 시신을 건져낸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그 절벽에 새 아씨의 꽃신이 놓여있었다.
큰 뱅대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돌았다.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억울한 누명을 쓴 돌이가 물귀신이 되어 해마다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처럼 떠도는 건 연 이태 째 문중 아이 두 명이 이 강에서 희생되고부터였다. 아낙들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해서라도 원혼을 달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대동굿판이 절벽아래서 펼쳐진 것이다.
긴 생각에 잠겨있던 선비에게 문득 묘안처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번에 스승님이 오시면 이 절벽의 기를 누를 방법을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선비의 스승은 우암 송시열 어른이었다. 팔도에 가르치는 제자만도 수백 명이 넘는 그의 문하에 들었다는 것만 해도 영광인 당대에 가장 올곧은 학자로 존경받는 어른이셨다. 제자이면서도 가장 아끼는 수제자에 속했던 선비가 사는 이 마을로 스승은 곧잘 다녀가시길 즐겼다. 이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극찬한 스승을 모시고 이 절벽을 몇 번이나 올랐던 추억이 있다.
<百 仞 臺>한 획 한 획 용트림하는 일필휘지였다. 날아오르듯 움직이는 힘찬 서체 달필이면서 명필이었다. 만족한 듯 바라보던 우암 선생이 말문을 열었다.
“구공,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이 현판을 걸게! 인명은 하늘의 뜻이라서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으나 이 절벽의 드센 기운은 조금 누그러들 걸세, 사람 사는 마을에 희노애락에 있듯 천하의 명승지라도 타고난 기세를 사람의 힘으로 누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네 백인대라는 정자를 세워 이곳의 기를 위하세,”
충주에서 한양으로 가시던 스승이 제자인 자신의 집에 묵자 어렵게 말을 꺼낸 선비에게 써준 현판이다. 백인대, 백 사람이 나아가도록 길을 연다는 정자를 세우리라 그러나 우암선생의 수제자였던 선비는 우암선생을 시기하는 당파에 의해 귀양을 가야 했다.
그 후 선비가 누명을 벗고 다시 벼슬이 복직되어 한양으로 가던 길에 안타깝게도 운명을 하게 되었다. 백인대 현판을 단 정자가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였다.
백인대 정자는 1990년대에 새롭게 보수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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