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 옆 느티나무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388

남한산성은 산줄기를 따라 성이 둘러서고 성 안의 물줄기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농경지를 만들고 작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 같은 장날 숯가마와 푸줏간이 들어선 마을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는 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로 꽤나 북적인다. 반면 건너편에서 한참 들어가는 행궁 옆의 느티나무에는 쉬는 사람도 없고 오가는 사람마저 흔적을 찾을 수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무라곤 기둥이 배배 꼬여 말라비틀어지고 가지도 삐죽삐죽 잎새도 듬성듬성.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못난이 느티나무라 부르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장이 파하면서 사람 그림자가 하나 둘 사라질 즈음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곳에 한 젊은이가 비틀비틀 걸어오다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나무 밑둥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옷이 넝마처럼 헐고 피골이 상접한 몰골은 귀신같았다. 못난이 느티나무는 이 젊은이에게 어떻게 해 줘야 좋을지 몰라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 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뜬 눈으로 밤을 새며 지켜주었다. 드디어 날이 밝아 잠이 깬 젊은이에게 물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 내 모양을 보고는 느티나무 구실도 못한다며 나를 못난이 느티나무라고 부르지. 보아하니 너도 업신여기며 버림받은 처지가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사연으로 여기까지 왔느냐?”

저는 남쪽 경상도에 살던 김정수라고 합니다. 저에겐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가 있었지요. 한 동네에 살면서 여름이면 함께 미역 감고 겨울이면 산에서 눈을 타며 토끼도 잡고 놀았던 친구였어요. 그러면서 함께 공부도 하며 입신양명하기를 약속했지요. 죽을 때까지 우정을 버리지 말고 훗날 누가 먼저 출세를 하더라도 반드시 복과 재앙을 함께 나누자며 굳게 맹세하고 형제의 의를 맺었답니다.”

친구가 있어 좋겠다, 나는 지금껏 혼자였어.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거야. 내가 이렇게 자기들과 얘기할 수 있는데도 말이야. 그래 그 친구와는 어떻게 되었지?”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난 후 저와 친구의 처지는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어요. 친구는 과거에 거뜬히 합격하더니 벼슬을 얻고 형편이 날로 부유해갔지만 저는 과거에 실패만 거듭하다가 가세마저 몰락하여 끼니를 굶을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러니 저는 친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친구 역시 저를 안 도울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마치 거지에게 동정하듯 하여 저는 창피함과 야속함을 참지 못했으나 장차 벼슬에 올라가면 그 때 가서 충분히 돌봐 주겠다며 저를 위로했어요.”

그 후에 드디어 친구는 평양 감사가 되었지만 양식을 보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아예 소식을 끊어버렸답니다. 친구만 의지해오던 저의 살 길이 끊어진 셈이었죠. 과거 시험 준비로 일도 않다보니 사실 저의 배고픔보다 식구들의 굶주림이 더 견딜 수가 없어 천리가 넘는 평양으로 찾아갔어요.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노자 한 푼 없이 길을 떠나게 되었어요. 걸식을 하며 겨우겨우 부르튼 발을 끌고 평양에 가까스로 닿긴 했지만, 거기서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꼴을 당하고 말았어요.”

평양감사라면 그 당시 누구보다 권세 있고 호강스러운 벼슬자리였는데 그 녀석은 불쌍한 친구를 마지못해 맞아 주고, 조금도 반가워하지 않았어요. 그뿐 아니라 식은 밥 한 그릇을 마룻바닥에 차려 주며 당장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설움이 복받쳐 울먹이면서 뜰로 내려가는데도 차디찬 눈길로 바라보면서 문 밖에 나갈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대동강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집 식구들이 어른거려 차마 그러지 못하고 하염없이 이렇게 걸어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는데 듣고 보니 참 딱하구만. 집까지 가려면 아직도 온 만큼 가야하니 그동안 식구들은 어찌 살까?”

안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든 먹고살고 있을테니 이번엔 꼭 과거에 급제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내가 잠도 재워주고 공부도 하도록 해줄테니 나와 함께 사세.”

저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죠. 이 나무아래에서 추위를 어떻게 막을 거며 더위는 어떻게 견딘단 말입니까? 또 먹을 것은 어찌 해결하고요? 더구나 당신은 마을에서도 내놓아 돌보지도 않고 누구 하나 정성을 들이지도 않는데요.”

물론 공짜는 없지. 일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공부를 해서 과거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은 자네가 할 일이지.”

정수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믿고는 그리하자 약속을 해버렸다. 자기와 대화를 하는 나무인 것으로 보아 굉장한 신통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날부터 둘은 한 나무아래 동고동락하는 가족이 되었다. 그동안 느티나무 아래 근처에는 사람이 얼씬도 하지 않고 버려진 돌멩이만 뒹구는 척박한 곳이지만, 원래 땅이 좋고 물도 많아 농사가 잘 되는 이곳 산성 마을은 잘만 가꾸면 먹고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정수는 낮에 열심히 일을 하고 또 밤에는 힘들어도 꾹 참고 글공부에 열중했다. 정수가 낮에 일하러 가는 동안 말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던 느티나무는 정수가 돌아오면 마을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재미있는 일은 없는지, 아니면 하다못해 누구에게 장난칠 일이라도 없는지 정수에게 시시콜콜 물어보는 것이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밤에 정수가 공부를 할 때는 꾹 참고 있다가 한마디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수다쟁이 느티나무이기도 하다.

 

정수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해도 산과 마을에 봄꽃이 남아있던 철이었는데 어느덧 신록이 푸르른 여름이 되었다. 그러나 볕이 좋은 것도 잠깐, 무더운 여름이 가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수가 말라가는 논밭을 둘러보다가 막 느티나무로 올라오고 있을 때 행궁을 지키던 한 병졸이 찾아왔다.

사람만 못난이가 있는 줄 알았더니 나무도 이렇게 형편없이 못생긴 나무가 있네. 얼른 베어버리고 튼튼하고 잘생긴 놈으로 심어야겠다. 임금님이 보실 느티나무가 이렇게 초라해서야 원.”

하며 도끼로 나무를 찍으려 했다.

안돼. 나무에 손대면 안돼요.”

정수가 황급히 뛰어가 느티나무를 가로막았지만 벌써 한 뼘 흉악한 도끼 자국이 나고 말았다. 도끼를 찍다가 정수의 소리를 듣고 놀라 힘이 빠져서 그 정도로 그쳤지 그 약한 나무가 한 방에 잘려질 뻔했던 것이다.

아니 이 사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우리 일에 방해하는 자가.”

저는 이 나무와 함께 사는 김정수라고 합니다. 나무는 살아있는 생명이기도 하고 저에게는 함께 사는 가족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제발 나무를 베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 사람이 여기가 어디라고, 이 곳이 어딘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임금이 머무실 행궁인데 그 옆에 이렇게 못생기고 말라비틀어진 초라한 나무가 있으면 임금님이 노여워하실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당장 비키지 못하겠나?”

병졸은 정수를 밀어버리곤 다시 나무에게 다가가 당장이라도 도끼로 찍을 참이었다. 그때 정수는 다시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정히 그렇다면 차라리 나를 베시오. 이 나무 베는 걸 보느니 차라리 내 눈을 감는 것이 더 나을테니.”

하고 버티자 병졸은 차마 도끼를 찍지 못하고 내려놓고는

그렇다면 하루 말미를 줄테니 내일까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결정해라. 어떻게 하는 것이 임금님을 위한 백성의 도리인지. 내일 다시 오겠다.”

말을 마친 병졸은 마치 큰 적선이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행궁으로 다시 가버렸다. 임금님께 방해가 된다면 없애야하는 것이 백성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나 그것은 자신과의 인연을 끊는 것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느티나무에게 어떡하면 좋겠냐고 상의를 하려고 하니 그 험한 꼴을 당하는 동안 느티나무가 말 한마디 하지 않은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수다쟁이야,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정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눈만 휘둥그레 뜨고 난처한 표정만 짓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그놈이 휘두른 도끼에 나무가 찍혀나간 것이 나무의 말문을 막은 것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니 가슴이 미어져왔다. 순간 귀찮기도 했던 나무의 수다를 이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먹먹해졌다. 나무의 찍힌 곳을 보듬어 안고 밤을 새웠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들 때까지 나무에 쓰러졌던 정수가 부스스 눈을 부비며 일어서려할 때 갑옷 입은 장군과 그 병졸들의 호위 속에 인조임금이 납시었다. 오랜 가뭄에 고통 받는 백성들을 직접 돌보기 위해 행차하신 것이었다. 정수는 너무나 망극해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 얼굴을 들지 못했다. 어제 자신이 병졸에게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이 느티나무를 베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게로군. 보아하니 글공부하는 선비 같기도 한데 차림이며 행색이 남루하고 거처도 없이 여기에서 머무는 까닭이 무엇이냐?”

정수는 이곳에 머물게 된 사연을 소상히 밝히고 되든 말든 다시 한번 사정하기로 작정했다.

임금님 비록 이 나무가 가늘고 마른 몸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있지만 이 나무는 보통의 나무가 아닌 신통하고 영험한 힘을 가진 나무이오니 부디 베지 마시고 잘 보살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분명히 마을과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 낼 것입니다.”

신통하고 영험하다? 그렇다면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

정수는 급한 대로 말을 내뱉긴 했는데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난감해서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말도 더듬거렸다.

이 나무는 사람과 대화할 줄 알아요. 할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말이 아주 많아서 제가 오죽하면 수다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또 제가 거처가 없다고 하지만 이 나무아래가 모두 저의 집입니다. 그동안 따뜻하게 온기를 뿜어주고 여름엔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어 제가 지내기엔 전혀 불편이 없어요. 또한 동네사람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곳에 제가 왔다며 반갑고 고마워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는, 말하자면 우리네 사람과 똑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허무맹랑한 거짓을 고하느냐?”

옆에서 듣고 있던 장군이 호통을 치며 다가갔다.

황당하지만 흥미롭게 듣고 있던 임금은 장군의 거친 행동을 자제시키며 정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어디 대화를 한번 해 보아라.”

정수는 당황했지만 어제 병졸이 찍은 도끼에 나무가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못하니 장군이 책임져야 한다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로구나.”

장군이 눈을 부릅뜨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임금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정수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너의 말을 믿으마. 저 나무를 잘 돌보고 앞으로도 둘의 정을 끝까지 이어가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정수는 감사의 말을 몇 번을 되풀이하며 자애를 베풀고 돌아가는 임금의 뒷모습을 보았다. 잠시 휘청거렸다. 신하가 부축을 하여 행궁으로 들어가야 할 만큼 임금은 수척해 있었다. 몇 달째 이어지는 가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임금의 근심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도 임금은 잠 못 들고 행궁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못난이 느티나무 앞에서야 발길이 멈췄다.

전하 밤바람이 차니 오늘은 침소에 드시옵소서.”

행궁에 와서 며칠을 불면의 밤으로 지낸 임금이 걱정되어 말없이 따르던 신하가 간청했다.

백성이 무슨 잘못이 있어 이런 고통을 받는가. 하늘을 다스리지 못하는 과인 때문에 이렇게 가뭄이 계속되는 것을.”

임금은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백성의 고통을 차라리 자신이 대신하기를 바라며 느티나무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었다.

다음날 임금은 마을에 기우제를 지내도록 했다. 벌써 두 번째 지내는 기우제였다. 그러나 날씨는 계속 찌는 듯이 덥고 땅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뿌리와 줄기가 말라가고 있는 판이 될 뿐 하늘은 도무지 응답하지 않았다.

다시 사흘이 지났다. 그날도 임금은 수라상에 수저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물리셨다.

전하, 옥체를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신하의 말에 대답할 힘조차 없는 임금은 또 한번의 기우제를 명했다. 지난밤 정수가 찾아와 못난이 느티나무에서 기우제 지낼 것을 간곡히 청했기 때문이었다. 신통하고 영험한 나무라는 정수의 말에 임금도 마지막 희망을 걸게 된 것이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정수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나무를 타박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라도 해서 비가 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애타는 심정으로 못난이 느티나무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나무아래 제단을 만들었지만 오랜 가뭄으로 젯상에 올릴 음식이 마땅치 않았다. 어렵게 술과 떡을 만들고 말려놓았던 곶감과 대추 밤 등의 과실도 올려놓고 정성을 다해 기우제를 드렸다. 정수와 마을 사람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한마음이 되어 함께 제사를 지내고 음식도 나눠 먹으며 비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빌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하늘은 너무나 쨍쨍하여 비가 올 기미가 없었다. 정수의 마음속은 타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임금도 신하들이 따르지 못하도록 하고 행궁을 나와 백성들과 함께 느티나무에 기대어 비가 오기를 간절히 빌고 있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느티나무에 무릎을 꿇은 채 며칠 밤을 새웠다. 서로간의 인심이 흉흉해 지던 마을 사람들은 임금의 이런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어 행궁으로 들기를 간청했으나 임금은 몇 날을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지쳐가던 마을사람들 중 이제 포기하자고 선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늘이 임금을 저버린 것이라며 하나 둘 자리를 뜨며 어수선해 졌다. 구름 한점 없는 들판을 나는 새도 더위에 지쳤는지 헉헉, 더운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더니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흩뿌리는가 싶더니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다. 비가 온다. 비가 와!”

그곳을 떠나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모여들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서로 부둥켜안고 두 팔을 벌려 비를 맞으며 입을 벌려 단물처럼 받아먹기도 하였다.

, 하늘이시어 감사합니다. 이제야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신을 잃다시피 한 임금도 장대비를 함께 맞으며 그동안의 근심을 말끔히 씻어내었다.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억수비로 길고 길었던 가뭄이 완전 해갈되었다. 온 산야가 촉촉해지면서 메말랐던 대지는 잃었던 생명을 되찾았고 마을사람들의 가슴도 촉촉하게 여유를 가지며 그 해의 농사 또한 풍년이 되었다.

하늘이시어 감사합니다. 임금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을사람들은 이 모두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살리려 한 임금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통력 있는 느티나무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보답으로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점점 늘어갔다. 다음해 여름엔 심한 돌림병으로 마을사람들이 차례로 죽어가자 이 느티나무에서 제사를 지냈더니 신기하게도 병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병이 다 낫게 되자 그동안 나무를 외면했던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나무를 섬기고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희한하게도 제사를 한번씩 지내고 나면 나무는 조금씩 몸집이 불어나고 사람이 다녀갈 때마다 가지도 늘어나는 것이었다. 나무아래에서 마을잔치로 한바탕 떠들썩하면 나무에 잎이 무성하게 자라나며 웃음꽃이 피는 것이었다.

그 다음해 역시 정수가 과거에 장원급제하면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무라는 믿음이 확고해졌다. 어느새 근처 어떤 느티나무에 뒤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고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어 지금까지 마을의 복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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