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사와 무병소년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1176

  뜰에는 초록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지난해 가을 이래 자취를 감추었던 풀들이 싹을 틔우더니 급기야 뜰 앞까지 찾아와 떼쓰듯 앉아 있는 것이다. 섬돌 밑에 숨어 있다가 천진난만하게 꽃을 들어 올리는 냉이를 보며 스님은 또다시 무병이 생각에 정신이 산란스러웠다.

그는 모든 생각을 버리고, 생각한다는 것까지도 끊어져 온전히 쉬게 될 때 어떤 환경에도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안전지대를 갖게 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찍이 속세의 연을 끊고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그러자니 갈 곳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닌 터라 이 산 저 산을 짚어 다니다가 능선과 계곡이 그윽한 게 마음에 들어 이곳 남한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수십 년 정진해온 덕에 나이 예순에 이르러서야 그의 일상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그런대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유지하게 되었는데, 무병이를 통해 그만 애()의 고통스런 고()를 또 다시 짊어지게 된 것이다.

금단선사는 법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날이 저물도록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목탁소리는 산속의 깊은 적막을 타고 무병이에게로 흘러가는 듯 했다.

 

금단선사가 소년을 만난 건 이태 전이었다. 그날도 넓은 바위에 앉아 삼라만상의 조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산비둘기가 두 마리씩 시야를 가로질러 날아가다 백양나무가지에 안절부절 못하듯 내려앉곤 했다. 바람은 산 너머에 있는 뻐꾸기 소리를 실어 날랐는데 그 소리에 간간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뻐꾸기 소리는 산을 넘어 멀리 사라지는 반면, 아이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이 세상 나온 사람 뉘 덕으로 나왔었나·····.”

아버님 전 뼈를 타고 어머님 전 살을 타고, 한두 살엔 철을 몰라, 부모은공 아올쏘냐…….”

일정한 선율도 없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며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한 내용을 담고 다가왔다. 그 소리가 하도 청아하고 담은 뜻이 예사롭지 않아 금단은 목소리를 따라 목을 길게 늘인 채 내려다보았다. 저만치 열 두어 살의 사내아이가 망태를 어깨에 걸러 메고 흥얼흥얼 올라오는 게 보였다.

나물하러 가는 게로구나. 웬 목청이 그리 좋으냐? 꾀꼬리가 날아드는 줄 알았구나.”

마치 익숙한 사이처럼 금단은 다정스레 말을 건넸다. 사내아이는 뜻밖이라 당황했는지 눈을 들어 빤히 쳐다보는데 행색은 남루했으나, 가을하늘처럼 시린 눈총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 그거요. 우리 엄니가 노상 하시는 소리예요. 그래서 저두 그냥 따라하지요.”

뭔 소린지는 알고 하는 거냐?”
그걸 모르는 바보가 어디 있어요. 부모님께 잘 하라는 거잖어요.”

허허 녀석 참......”

아이는 갈 길이 바쁜지 몇 마디를 던져 놓고 이내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이런 저런 일로 아이와 만나는 일이 잦아졌고, 마치 십년지기 친구처럼 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소년이 금단의 움막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아이는 안됐다는 듯 허리를 짚고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할아버지두 되게 가난뱅이네요.”

눈에 가득 안쓰러운 기색을 담고 이것저것을 거푸 물어보았다.

그럼 할아버진 천하 고아예요? 집도 절도 없구요?”

도대체 이 나이까지 무얼 했느냐고 다그치듯 이런저런 말들을 두서없이 내던지고는, 이런 산 속에서 혼자 살면 무섭지 않느냐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잔소리를 끓어 붓는 것이었다. 하긴 이날까지 무얼 했는지 금단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허허 녀석도 참......”

그날 이후부터 아이는 무언가를 자꾸 실어 날랐다. 살림이 궁색하긴 저 또한 마찬가질 테지만 제 딴에는 불쌍한 할아버지라 생각됐는지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실어 날랐다. 윗마을 부자집네 잔치였다며 녹두 지짐이를 가져오는 날도 있었고, 시어터진 고구마나 보리개떡을 가져오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은 제 아비가 목수였다며 살아있을 때 만든 거라고 바둑판을 낑낑거리며 지고 올라오기도 했다. 짬을 내서 아이와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일이란 정말 신선노릇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뭐 하는 게냐? 잠이라도 자는 게야?”
아유, 가만 있어봐요.”

허허 녀석도 참……. 한 점 물러주랴?”
뻔 하게 질 상황인데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 일쑤였고, 한 점 물러달라는 비겁한 말 따윈 죽어도 하지 않을 녀석이었다. 그 바람에 실력이 날로 늘어 몇 점을 깔면 맞수가 될 만큼 제법이어서 아이와 함께 바둑을 두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둑판에 정신을 놓다가도 제 어미의 끼니때를 맞추는 일에는 어김이 없어 도중에도 쏜살같이 내려가곤 했다. 아비가 죽고 병든 어미와 사는 녀석으로선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테지만 제 어미에게 하는 노릇을 보자면 뼈에 사무치는 무언가가 있어보였다. 바둑에 지기라도 하는 날엔

왜 사람이 일은 안 하고 쓸데없이 논대요? 나두 할아버지만큼 늙으면 이길 수 있어요

하면서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이는 순전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마을 잔심부름이며, 나무하는 일이며, 생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엇이든 하고 있었다. 부실한 영양에다 거친 일들을 대하다보니 늘 상처를 달고 다녔는데, 약초라도 이겨서 붙여줄라 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곧 나을 것이라고 태연해했다.

우리 아부지가 저 아홉 살 때 돌아가셨걸랑요. 엄마는 그때부터 앓증을 하셨구요. 근데 제 이름이 무병이잖어요. ‘병 없이 살아라하고 무병이라 지었대요. 그러니까 전 절대로 안 아플거죠.”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다. 금단은 무병이를 보며 자신이 평생 동안 터득하려 했던 삶의 이치를 어쩌면 무병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순수함과 단순함 앞에선 자신의 잡다한 지식들이 허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처가 따로 없었다.

나물을 하다 날이 저물어진 어느 날 스님은 부러 산짐승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려가다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는 둥, 호랑이는 밤에만 나타나는데 두 눈에 황소 불을 켜고 덤빈다는 둥,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재주를 넘는 걸 봤다는 둥……. 속 보이는 거짓말을 해서 하루 밤을 데리고 잔 적이 있었다. 스님 옆에서 꼭 붙어 자던 무병이는 할아버지에게도 자기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알고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그 날 금단선사의 마음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 올라 그들을 혈육처럼 대해주었다.

소쩍새가 소쩍소쩍 어둠 속에서 한참을 울다 사라졌다.

 

스님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벌써 한 나절 째 꼬불꼬불한 산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오지 않으려나?”

한 나절이 지나도 무병이가 오지 앉자 덥수룩이 자란 수염을 연신 쓸어내리며 초초해하고 있었다. 여간해선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던 터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가 하여 내심 걱정이 되었다. 순간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적적함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스님은 연()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고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왔는데 그런 생활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저물녘이 되었을 때 멀리 흔들리는 들풀 사이로 아이의 머리가 언뜻언뜻 보였다.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아래쪽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며 볼멘소리 겸, 반가운 소리 겸,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좀 오너라. 목이 빠지겠구나. 오다가 호랑이에게라도 잡혀 갔다 온 게냐?”

할아버지두 참, 그게 아니구요

그럼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도 잡다가 오는 게로구나?”

어찌나 급히 올라왔는지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해명을 하느라 연신 숨을 헐떡거렸다.

그게 아니구요, 우리 엄니가……. 많이 아퍼서……. 못 올뻔 했어요. 아침나절 내내 미음도 안 드시구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금세 안색이 창백해지며 힘에 겨운 듯 주저앉았다. 혼자 애태웠을 아이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혼났구나. 어디가 어떻게 아프시든?”

이젠 괜찮어요. 의원이 다녀갔는데 얼마동안은 괜찮을 거래요. 그래서 왔어요. 근데 대추 하구, 곶감하구, 늙은 호박하구 다려 먹어야 병이 낫는대요.”

그것들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금단선사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이를 진정시킨 후 금단은 그 약들을 구할 방도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여름에 그것들을 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3년간이나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을 말려서 남겨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러니 대추와 곶감을 구하기도 힘들 판인데 늙은 호박을 구하기란 어려움이 많을 터였다.

숨을 돌린 아이는 내일 당장 약을 구하러 떠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산만 넘으면 자신이 얻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일념이 너무 커서인지 눈매가 어느 먼 곳을 더듬듯 한결 깊어져 있었다.

근데 큰일이구나. 어디서 이 여름에 늙은 호박을 구한단 말이냐?”

북쪽은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고 했으니 북쪽 어딘가에는 그 약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아무튼 저는 내일 떠날 거예요. 할아버진 심심 하더라도 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셔요.”

아이는 약을 반드시 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 확신이야말로 가당치도 않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세상의 끝, 아스라이 보이는 산등성 위로 거대한 붓으로 칠해 놓은 듯한 붉은 노을이 드넓은 서쪽 하늘에 가득 깔려 있었다. 들꿩 한 마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숲을 향해 날아들며 불안에 가득 찬 이상한 울음을 울었다.

얘야, 너하고 나하고 누가 발짝이 더 크더냐?”

뜬금없이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스님을 근심스레 올려다보며

그야 할아버지지요.”
그럼 누가 걸음이 더 빠르겠느냐?”

기가 막힌다는 듯 아이는 힘없이 한 마디 툭 던졌다.

그것두 할아버지잖어요.”

것 봐라, 그래서 내가 가야하는 거다. 북쪽에 말이다. 거기 북쪽에 묘향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정말 깊어서 가을이 일찍 온단다.”

아이는 가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이미 약을 구한 것처럼 갑자기 생기를 찾으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하지만 이내 풀 죽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두 할아버지잖어요.”

허허 녀석도 참……. 네가 그 곳에 가면 석 달 열흘도 더 걸릴 터인데 그동안 늬 엄니는 누가 보살핀단 말이냐? 그러니 내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무병이는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도 되겠냐며 이제는 애절한 눈빛까지 보냈다. 그렇게만 해주면 평생을 할아버지와 바둑을 둬 줄 수 있다고 은근히 흥정까지 하는 것이다.

자신이 도사라는 것도, 축지법을 써서 다녀올 수 있다는 것도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도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고, 정체가 드러나면 여태까지 지니고 있었던 순진무구한 동심을 잃어버려 본능에 가까운 인간 속성으로 자기를 대할 것은 뻔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무병이를 놓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내일 떠나서 이레 만에 돌아오겠다는 스님의 약속에 무병이는 허리를 연신 구부리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오늘부터 이렛날 후에 해가 네 머리 꼭대기에 오거든 이곳에 와서 날 기다리거라.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오마.”

아이는 마치 제 어미 병이 다 나은 것처럼 감격하고 있었다. 아이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나타나기 전에 내려가야 하므로 내려가야 할지 할아버지와 여기 더 머물러야 할지 망설이는 듯 했다.

그래서 바로 내려가겠다는 게냐?”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면 못 내려 가잖어요.”

허 허 녀석 참.”

 

금단 선사는 행장을 꾸렸다. 행장이래야 지팡이와 삿갓, 바랑이 전부였다.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고는 했으나 호박이 늙어있을지, 대추와 곶감은 과연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고, 또 축지법을 쓴다 해도 한참 걸릴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병이네 오두막에선 등걸만 남은 무병어미의 신음소리가 밖으로 간간 새어나갔다. 영혼이 빠져나간 마른 통나무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움막 앞에 덩그마니 서 있었다. 홀어미를 단신으로 봉양하는 무병이로선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그만큼 애절한 일이기도 했는데 열 두어 살의 사내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금단이 묘향산으로 떠난 후 병세는 점점 악화돼서 무병이는 밤낮을 쉬지 않고 제 어미 곁에 붙어 있었다. 먹을 것이 따로 있을 리 없고, 약 또한 딱히 쓸 방도가 없었다. 이웃들이 안됐다며 쒀다 준 멀건 보리 미음만 입으로 연신 흘려 넣었지만 그것마저 입술 밖으로 내뱉어지기 일쑤였다. 무병이의 애끓는 간호도 소용없이 금단선사가 길을 떠난 지 나흘 만에 무병 어미는 병색이 갑자기 짙어지더니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무병이는 다리를 놓고 울다가 긴장과 슬픔이 뒤엉켜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의 온정으로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날 이후 식음을 전폐했다. 이웃들이 걱정하느라 음식도 권하고 휴식도 권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더운 여름인데다 형식을 따질 형편도 아니어서 바로 장사를 지냈다. 무병이는 제 어미를 장사 지낸 무덤가에 꼬박 삼일을 등신불처럼 앉아 있었다.

 

이레 만에 금단선사는 약속대로 대추와 곶감과 늙은 호박을 구해서 돌아왔다. 그러나 약속장소에 무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스님은 마을로 내려갔으나 흉물스런 움막이 통나무와 함께 서 있을 뿐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괴괴한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여기 말 좀 물읍시다. 이 움막에 살던 사람들 어디 갔는지 아시오?”

에구, 그 집 무병 에미가 그만 일을 당했에요. 안됐지 뭐요. -

지나가는 사람을 통해 비보를 들은 금단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산 중턱쯤 숲을 파헤친 흔적이 멀리서도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다급한 마음에 달려가 보니 봉분이고 뭐고 할 것도 없는 밋밋한 무덤 하나가 생 흙 냄새를 풍기며 허술하게 안치돼 있었다. 바로 그 앞에 무병이가 쓰러져 있었다. 금단은 급히 아이를 안아 올렸으나 이미 싸늘히 식은 채 얼굴과 눈자위는 푹 꺼져 있었다. 얼굴엔 검푸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금단은 무병이를 안아 올렸지만 가슴과 목으로 뻑뻑하게 차고 올라오는 슬픔 때문에 한동안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바람과 새들만이 주위에서 곡이라도 하듯 숲을 넘나들고 있었다. 한참 만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무병이를 제 어미 곁에 묻어주었다. 너무도 쓸쓸해 비석 삼아 돌 하나를 무덤 앞에 세워두고 어둔 움막으로 돌아왔다.

 

안개 같은 날들이 몇 날 며칠이 지났다. 그간의 모든 기억들이 마치 몸에서 빠져나가듯 삶 전체가 텅 빈 듯 했다. 출가를 할 당시처럼 생에 대한 번민이 또다시 밀물처럼 밀려왔다. 육십여 평생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여름도 어느새 주춤하더니 무병의 죽음을 곡이라도 하듯 난 데 없는 가을 폭우가 일주일 내내 천둥 벼락을 동반한 채 쏟아져 내렸다. 나무가 쩍쩍 갈라지는가 하면 산이 무너져 내리고 계곡이 뭉청 떨어져나갔다. 한 이레 물난리를 겪고 무덤을 찾아가 보니 나무들이 무덤 위로 쓰러져 있었다. 금단은 무덤을 정리하기 위해 우선 흉물스럽게 나자빠져 있는 나무부터 들어올렸다. 비석 삼아 세워둔 돌도 벼락을 맞았는지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돌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여기저기 금이 간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각들이 떨어져 나간 돌에 부처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자세히 보니 눈매며, 살포시 다문 입술이며 영락없는 부처상이었다. 금단은 집으로 안고 돌아와 겨우 내내 정으로 돌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인자한 부처님의 형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금단선사가 겨우내 돌을 다듬는 동안 매일을 꿈에 시달렸다. 꿈속에 무병이가 나타나 반가운 나머지 소리쳐 부르면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어느새 불상으로 변하곤 했다. 나무도 돌도 그 일대가 모두 불상천지여서 불상에 빽빽이 둘러싸여 있다 깨어나곤 했다.

봄이 되자 만물은 생기를 찾기 시작했고, 무병이가 오르내리던 산길도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봄이 왔음을 알렸다. 모든 존재의 뿌리는 하나라고 했으니 영혼이 있다면 그 또한 존재이므로 나무에, 숲에, 꽃에, 하다못해 구르는 돌에라도 무병이가 깃들어 있으리…….

금단선사는 무병이가 쓰러진 자리에 불당을 짓기 시작했다. 겨우내 다듬은 불상을 무덤 위에 앉히고, 조촐하고도 소박한 법당을 마련하였다. 법당에 꿇어앉아 목탁을 두드리면 꿈인 듯 생시인 듯 무병이가 늘 가슴에 아른거렸다. 무병이의 해맑은 미소가 동자승의 웃음과 일치하여 가슴을 따듯하게도 해주었다.

스님은 불당을 짓고 날마다 무병네 모자의 명복을 빌며 다시 정진에 힘썼다. 작은 불당에 불과해 이름도 없이 그저 불공에만 힘썼는데, 어느 날 법당 앞에서 웬 사슴 한마리가 마치 무병이처럼 맑은 눈을 대록거리며 스님을 한동안 바라보다 사라졌다. 그때 마침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불당을 장경사라 이름 지었다. 길 장()에다 경사 경()을 붙였으니, 두 모자가 저승에서라도 오래오래 경사스러웠으면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원래 경사 경()상서로운 사슴의 마음이 천천히 걷는 듯한 상태에서 비롯됐다니 이 불당의 이름이 장경사인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 후 이 장경사의 불상은 금단선사가 저승으로 입적할 때 동시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유난히 폭우가 심했던 그 해 9, 산사태로 휩쓸린 게 아닌가 하는 설들이 나돌았지만, 무병이의 혼이 서려 있던 불상이 필경 금단선사를 따라 간 것일 거라는 무성한 소문도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렸다 한다.

 

1624(인조 2) 남한산성의 축성이 시작된 후 1638(인조 16)에 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장경사의 옛 터에 승군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의 장경사를 세웠다. 장경사를 건립할 당시 이름 모를 새 한마리가 사람을 겁내지 않고 승려들의 등을 타고 일을 진두지휘하듯 지저귀어서 무병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무병이의 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경사는 전부터 있었던 망월사(望月寺옥정사(玉井寺) 외에 개원사(開元寺한흥사(漢興寺국청사(國淸寺천주사(天柱寺동림사(東林寺남단사(南壇寺)등 새로운 사찰을 창건하였을 때 함께 창건되어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다.

축성 뒤에도 승군을 주둔시켜 수성(守城)에 필요한 승군의 훈련뿐 아니라 전국의 승군을 훈련시키는 한편 고종 때까지 250년 동안이나 전국에서 뽑은 270명의 승려들을 교체하며 항상 번승(番僧)을 상주입번(常駐立番)하게 되었으니 외로웠던 금단선사도, 막막했던 무병모자도 혼으로나마 승려들과 함께 연()의 가장 한가운데 머물렀으리라 짐작해본다.

남한산성 동문 쪽에 위치한 이 장경사는 경기도 문화제 제15호로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찾아들어 그 때 금단 선사가 그랬듯이 중생의 영생복락을 빌며 불심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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