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사산 설화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1438

  광주시 송정동 북동쪽에 광주고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를 왼쪽으로 끼고 얼마간 오르다 보면 숭고한 절개를 상징하는 칠사산에 이른다. 그리 큰 산은 아니지만 높이와 깊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산이라 광주시민들이 사시사철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팔당호가 애잔히 펼쳐져 있어 먼 세계에 대한 동경이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산 정상에 올라 망향가라도 한 마디 부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은 산이다. 이 산이 칠사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는 고려왕조가 무너진 후 조선을 새로 건국하는 과정에서 소용돌이쳤던 고려 충신들의 아픈 사연이 깃들어 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장군을 제거하고 조선을 건국한 후 당시 조정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썩어빠진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면 새로운 희망으로 천하가 자신의 뜻을 따르리라 짐작했는데 백성들은 오히려 무능한 옛 왕을 그리워하며 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어느 나라든 개국 후 기틀이 마련되기까지는 혼란이 따를 수밖에 없어서 희생되는 사람들 또한 많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야은(길재)이나 포은(정몽주)과 같은 훌륭한 충신들이 여럿 목숨을 잃었다. 사태가 이 지경이다 보니 신하들은 자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홀연히 행방을 감추는 일이 많았다. 그 중 한림학사로 있던 일곱 사람도 궁궐을 빠져나와 이곳 광주에 있는 산속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그때가 늦여름 무렵이었다.

 

가을로 접어들자 해가 부쩍 짧아져 어둠은 느슨한 저녁시간을 완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마치 이성계가 궁궐로 밀고 들어왔을 때의 말발굽소리처럼 적막도 맹렬하게 쟁쟁거렸다. 일곱 학사들이 땔감이나 해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덩치네 움막으로 찾아들었을 때는 이미 생의 부귀영화 따위는 모두 내다버린 차였다. 얼기설기 지붕을 덧 대 바람이나 막을 정도의 허름한 거처를 마련하고, 산중 생활을 시작했다. 거적 문틈으로는 황소바람이 숭숭 들어왔고, 곧 닥쳐올 겨울은 벌써부터 큰 얼음덩어리가 되어 마음 안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정녕 그 아무것도 없단 말이오?”

일곱 명의 학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지만 묘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고려는 이미 무너졌으므로 새 왕을 섬기든가, 아니면 어딘가로 숨어들든가, 그도 아니면 죽음을 택하든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너무도 뻔했다. 다만 충절에 관한 의식이 뼈에 사무친 선비들인지라 선왕을 배신하는 행위만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따름이었다. 선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자책이 가솔들에 대한 걱정과 뒤엉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깊은 적막을 깨는 헛기침소리가 예서제서 산속을 밝혔다. 날씨는 점차 추워지고 하늘은 더 팽팽해졌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멀어서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멀리 개경으로부터 이곳 광주까지 눈물로 파도쳐 오는 듯 했다. 잃어버린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나날이 절망에 싸인 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그들의 충절이 하늘에 닿았는지 일곱 사람의 소식은 멀리 개경에 있는 이성계에게까지 전해졌다. 이성계로서는 한 사람의 재원이라도 필요한 때라서 곧바로 신하들을 이곳 광주까지 내려 보냈다. 마음만 돌이킬 수 있다면 조선을 위해서 훌륭한 안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학사들과 정사를 의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 왕의 부름에 따랐을 리 없다. 하여 이성계는 다시 형조판서를 보내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그러나 학사들은 이성계를 마음속으로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황공무지로소이다. 허나 따를 수 없다 전하시오

그들의 어조는 너무도 분명했다. 이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염두에 둔 대답이었다.

입궐하시면 상감께서 큰 벼슬자리를 마련하신다고 친히 말씀하셨소.”

나라를 잃은 우리들이 맡을 수 있는 벼슬이 어디 있단 말이오?”

대감이나 어서 가서 오래 오래 복록을 누리시오

그들의 목소리는 야릇한 야유의 빛까지 띄고 있었다. 형조판서는 이를 꾹 물고 태연 한 척 애를 썼다.

고려는 이미 무너졌으니, 새 나라를 위해 대감들의 훌륭한 뜻을 모은다면 이 나라가 더욱 강성해지지 않겠소? 그리하면 백성들도 편하게 될 것이고, 선왕 또한 그리 나무라지 않을 것이니, 백성이 편안한 세상을 여는 길 또한 선비의 도리라 생각하오. 못이기는 척 궁궐로 들어갑시다.”

형조판서는 내심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성계의 뜻을 충분히 알기에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어 간곡히 청했다. 만약 청을 거절하면 큰 화를 입을 것이라는 염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 말씀을 하시려거든 차라리 우리들을 이 자리에서 대감의 손으로 죽이시오. 그리되면 대감은 돌아가서 후한 상을 받을 것이오.

가녀린 여인들도 지아비를 잃으면 죽을 때까지 정절을 지키거늘 어찌 신하된 도리로 두 왕을 섬긴단 말이오. 이는 차라리 죽는 일만 못한 일이오.”

한마디씩 말을 건네는 학사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형조판서는 자기를 은근히 비꼬면서 고고한 척 하는 그들을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형조판서가 돌아간 후 한참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그 푸르고도 차가운 침묵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개경으로 돌아온 형조판서는 방원에게 일곱 학사들의 확고부동한 뜻을 전했다. 그들의 비웃음이 온 몸으로 느껴져 진저리까지 쳐지는 터라 어차피 입궐할 가능성이 없다면 제거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음해의 말까지 곁들였다.

그들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일을 치를듯합니다. 각처에 사람을 보내 내통을 하며 역적모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후한이 두렵습니다.”

뭣이? 이건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로다. 당장 군사를 풀어야겠다.”

다급하기까지 한 방원은 군사를 대기시켜 놓고 어전으로 향했다. 방원은 이성계를 도와서 고려왕조를 뒤엎는데 큰 공을 세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세도가 당당했다.

전하! 형조판서로부터 일곱 학사들의 소식을 들었사온데, 역적모의를 하고 있었다 하옵니다. 하여 군사를 대기 시켰나이다.”

조선 건국을 도운 공로로 한껏 치기가 오른 방원은 아버지의 막강한 후원자로서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제거하리라 다짐을 단단히 한 터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이성계는 벌떡 일어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뭣이! 어찌 됐다는 게냐? 어서 군사를 거두어라. 그렇지 않아도 고려의 유신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고 날로 민심이 시끄러워지는데 그들마저 죽이면 민심이 더욱 소란스럽지 않겠느냐. 그들은 아무런 힘도 없는 그저 글만 읽는 늙은이들이거늘 무슨 역모를 꾀한단 말이냐? 당치 않은 소리로다.”

이성계는 형조판서의 보고를 일언지하에 묵살해버렸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 백성들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던 새 왕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자신의 행동을 치하 할 줄로 알았던 부왕으로부터 의외의 반응을 얻자 방원은 일순 당황하며 군사들로부터 명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각처에 사람을 보내 역모를 모의한다는 형조판서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승승장구 개국을 향해 달리던 방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은 있기 마련이어서 아직 마음 한 편에는 보이지 않는 적들이 자욱했다. 하여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마음을 먹고 수시로 염탐꾼을 보내어 학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케 했다.

겨울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산 속의 별들은 유난히 차갑고 가벼워보였다. 궁핍한 생활로 나날이 피폐해지는 동안, 이따금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긴 그림자를 끌고 소리 없이 다녀가곤 했다. 어떨 땐 자녀인 듯 한 젊은 사람이 손수 등짐을 지고 다녀가기도 하고, 어떨 땐 머리끝까지 장옷을 두른 눈물바람의 여인이 다녀가기도 했다. 별 대안도 없이 고뇌의 나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 그저 개경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는 일이 고작이었다. 어떤 의욕도, 어떤 묘안도 없었으며, 목숨을 잃은 왕과 충신들에 대한 슬픔으로 깊은 한숨만 겨울처럼 깊어지고 있었다. 수염은 덥수룩이 자라 마치 폐망한 나라의 추녀 같았고, 돌보지 않은 입성은 점점 허름해져 양반의 모습은 오간 데가 없었다. 다만 눈빛만큼은 누구도 감히 마주치지 못할 만큼 서기가 서려있었다.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중국의 백이숙제가 다름 아니었다. 무엇으로 이 을씨년스러운 황혼과 해답을 찾지 못하는 사념들을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움막생활을 한 지 달포쯤 지날 무렵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지 않소?”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학사가 입을 떼었다.

이 환란의 시국을 기록해봄이 어떨는지요?”

그리하는 것도 좋을 듯하오.”

남은 목숨이라도 나라에 바치는 뜻으로 이 참상을 낱낱이 기록하여 후대에게 알려야겠소.”

의견이 일치되자 지필묵을 준비해 요동정벌 계획부터 위화도 회군에 이어 고려를 멸망케 한 역모의 대역죄까지 낱낱이 기록하기로 했다. 그간 목숨을 달리 한 신료들은 얼마이며, 환란을 당한 집안들은 또 얼마인가? 그 일들을 기록하는 일만으로도 나랏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소 위로가 되었다.

 

계절은 기울어 죽음을 곡하는 여인들처럼 부엉이가 그들의 태고 적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웬만큼 불을 지펴도 벽으론 바람이 숭숭 들어왔고, 머리맡에선 물대접이 얼었다. 차츰 기록의 속도도 줄어들었다. 산간엔 어느새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옹이 투성이의 나무껍질들은 더욱 단단하게 기둥에 달라붙어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나무를 나갔던 덩치 부자는 근처에서 칼을 찬 사내들을 보았다느니, 마을에선 산 중턱에 있는 맑은 약수가 머지않아 피가 되어 아래 마을로 흐를 것이라고 수군거린다느니, 종종 괴괴한 소문들을 실어 날랐다. 그럴 땐 숲속은 낙엽 뒹구는 소리조차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궁궐로 들어가시면 봐주지 않겠어요?”

자기가 할 말은 아닌 줄 알지만 덩치아범은 하도 딱해 몇 마디를 거들었다.

너라면 그리 하겠느냐?”
우선 살고 봐야 하는 거 아녜요? 살어야 나라일도 하구. 아무래도 이러다 큰일 나것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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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아범의 말이 빈 가지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만큼 찰나적으로 달콤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중 누군가 한 사람 쯤은 처음과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은 없었다. 다만 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졌을 뿐이다. 덩치는 벼슬은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책만 읽고, 툭하면 산을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정은 이성계와 개혁의 뜻을 같이했던 정도전의 주도하에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여 개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들과 점점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깊은 겨울인데 나무엔 때 아닌 새파란 잎들이 햇살에 가득 출렁이고 있었다. 버섯이며 나물들이 산 가득 지천으로 깔려있었고, 꽤나 실한 열매들을 매단 나무들도 주변에 널려 있었다. 덩치어멈은 앞치마를 거둬 올려 닥치는 대로 뜯어 담았다.

양반님 네들이 하도 나라님을 생각하니까 하느님이 감동하셨나? 아직 겨울이 안 지났는데 이게 웬일이랴.”

나라님을 잘 모셔야 된다는 것은 일자무식이라도 다 아는 일인지라 일견 어르신들의 태도가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덩치어멈이었다. 겨우내 변변한 음식한번 먹지 못한 식솔은 물론, 어르신들께도 푸짐한 음식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덩치어멈은 신바람까지 났다. 그 때 유난히도 탐스럽고 신기한 버섯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따려고 허리를 막 구부리는데, 버섯은 돌연 뱀으로 변하더니 똬리를 풀며 스르르 발 앞을 빠져나갔다. 간이 철렁 내려앉은 덩치어멈은 발을 헛딛는 바람에 그만 어느 깊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한참 후에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서려는데 머리위로 빨갛고도 큰 열매가 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반가워 손을 뻗어 따려하자 열매는 일제히 붉은 물을 터뜨리며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붉은 물은 마치 피처럼 계곡 아래로 끝없이 흘러내렸다. 덩치어멈은 너무나도 소스라쳐 비명을 질렀다.

오마야! 사람 살려.”

이봐! 뭔 헛소리를 하는겨? 꿈 꿨는가?”

덩치 아범은 제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빌어먹을 꿈도 다 있구먼요.”

무슨 꿈인데?”

아무래두 무슨 큰 일이 날것 같어요,”

덩치어멈은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하늘엔 여명이 서서히 거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로 내려갔던 덩치가 헐레벌떡 돌아왔다. 온몸은 땀 냄새로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임박 했대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산 근처에서 피비린내가 난다고들 해요. 그리구 자꾸 임박했다구 해요

횡성수설 떠들어대는 덩치 녀석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지만 답답하기도 하고 일견 불안하기도 해서 덩치 아범은 애꿎은 덩치의 등짝을 후려쳤다.

뭣이 임박하댜 이눔아.”

글쎄 나는 몰러요. 사람들이 그냥 임박하다구 막 수군거려요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일자무식 덩치 놈이 띄엄띄엄 두서없이 들려주는 소리에 학사들은 솜털이 곤두서며 몸서리가 쳐졌다. 좌중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누군가가 한 마디 무겁게 툭 던졌다.

뜰 때가 된 것 같소이다.”

…….”

…….”

바람에 참나무 가지가 으스스 몸을 떨었다. 덩치 아범은 다른 날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장작을 안아다 꾸역꾸역 불을 땠다. 연기가 학사들의 거처까지 자욱이 밀려들어가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산을 뜨는 날 덩치네 일가는 차마 그 모습을 보기가 민망했다. 낡은 책가지들과 몇 벌의 옷, 얼마간의 식량이 전부였다. 학사들은 기록하다 만 종이 두루마리를 애지중지 끌어안고 길을 나섰다.

나리! 어디루 가셔요

글쎄다 딱히 갈 곳은 없다만 아무래도 북쪽으론 가야하지 않겠느냐.”

그 간 수고했다. 시절이 수상하니 몸조심 하거라.”

어딜 가시더래두 평안하셔요. 매일 치성 드리겠어요.”

두 내외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막막 산중 생활이라 외롭던 덩치도 그간 정이 들었는지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댔다. 추녀 끝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도 아침 햇살에 눈매를 풀어 글썽이고 있었다.

 

방원은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후한이 두렵다는 이유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판단을 내리고 형조판서를 불렀다. 방원은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계획대로 이행하시오.”

그 날 나무들은 발근발근 껍질을 부풀렸고 하늘은 다른 날보다 유독 새파랬다. 매서운 바람도 나무 가지 위로 사위었으며, 골짜기의 얼음도 햇빛에 반짝이며 제 몸을 풀어내고 있었다.

장작을 정리하라는 아비의 명을 받고 얼키설키 흐트러진 나무들을 주워 올리던 덩치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내들 때문에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칼을 찬 자객들이 신을 신은 채 남루하기 짝이 없는 움막 이 곳 저 곳을 휘휘 돌아다녔다.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 몰러요. 아무도 없어요.”

어른들은 어딜 가고 네놈 혼잔 게야?”

난폭하게 휘두르는 주먹과 발길질에 가뜩이나 찬바람에 툭툭 터진 볼이 여지없이 찢어졌다.

그 때 나무를 팔고 돌아오던 덩치아범과 어멈이 이 광경을 보고 혼비백산한 채 부들부들 떨며 덩치를 가로막았다.

다들 어디로 간 게냐?”

여남은 명의 자객들의 눈에선 불이 뚝뚝 떨어졌다.

북쪽으로 가신다고만 했어요.”

즈이들은 아무것도 몰러요.”

자식과 아내를 막으려는 덩치 아범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자객들은 그들을 밀치고 온 집안을 다시 들쑤셔댔다. 남루한 가재도구들이 여기 저기 뒹굴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 덩치 아범과 어멈이 몸 둘 바를 모른 채 이리저리 쏠려 다녔다. 덩치 어멈의 볼품없는 쪽머리는 어느새 헝클어져 어깨위로 흐트러졌고, 칼에 스쳤는지 옷자락이 찢어진 덩치 아범은 아이구소리만 연발하며 팔을 벌려 자식과 아내를 가로막았다. 덩치는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벌벌 떨었지만, 여차 하면 지차 한다고 제 부모가 어찌되면 죽더라도 덤벼보리라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그들을 숨기거나, 은신처를 일러주지 않으면 너희들은 죄다 죽는다. 알겠느냐?”

더 이상 뒤져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일행은 휭하니 산을 내려갔다.

에잇!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

게걸스레 웃으며 내려가는 사내의 한마디가 높은 나무 가지의 생살을 아프게 찢었다.

덩치는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사람이라고 여기며 어르신들이 참 잘 갔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매운바람을 입고 몇몇이 다녀갔으나 산속은 별 탈 없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고, 멀리서 아지랑이는 서서히 땅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송도 동쪽에 있는 광덕산 두문동으로 선비들이 들어갔다는 소문과 함께,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스스로 불을 질러 죽었다는 소문이 덩치의 귀를 뻐근하게 열었다. 덩치는 충절이라는 것은 하늘만큼 높으면서도 무서운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어르신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빠져나간 텅 빈 허름한 움막과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밑바닥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뭉클 넘어오는 듯 했다.

열 네 살의 덩치는 그렇게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뼈가 굵어갔고, 어르신들을 떠올리며 가족들이 염원 삼아 그러모은 돌은 어느새 일곱 개의 작은 탑이 되고 있었다. 기원의 마음으로 일곱 무더기를 만들고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들며 날며 번갈아 돌을 얹어두었던 것이다.

산 중턱에 드문드문 있었던 작은 돌탑들은 그 후로도 오랜 세월 칠사산을 지키며 인근 사람들에게 사람 사는 도리를 일깨워 주었다고 하는데 완고할 것 같았던 돌탑도 덩치일가의 움막과 함께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조차 묘연하다.

 

세월이 흘러 조선왕조도 흥성의 기틀을 마련하여 차츰 강성해졌다. 외세의 침입은 있었지만 면면이 민족의 자존을 지켜가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된 것이다.

조선 19대 왕인 숙종 때 충신 우암 송시열은 이 기막힌 칠학사의 소식을 전해 듣고 친히 이곳 광주의 산을 찾았다. 마침 열미리에 우암선생의 문하생으로 향()() 회덕에서 한양을 오가며 경학강론과 시문화답을 나누던 구문찬이 있었는데, 그로 하여금 제수를 마련하게 하여 애도와 존경의 마음으로 글을 짓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학사제를 지냈다. 그들이 충신으로서 고뇌했을 숲을 바라보며 이곳 광주의 산을 일곱 명의 학사들이 살던 산이라 하여 칠사산이라 이름 지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 후 산 중턱에 칠보사라는 절이 세워져 마치 그들의 원혼이라도 달래려는 듯 밤낮없이 향을 지피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숭고한 절개가 서린 산으로 기억하고 있고, 충효의 고장 광주의 의미를 거듭 되새기며 사시사철 칠사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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