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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마을의 유래와위치
신월리는 조선조 말 대한제국(大韓帝國)시대에는신단리(新丹里)ㆍ두월리(斗月里)ㆍ탄동(炭洞) 등 3개리가 있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行政區域)을 통폐합하면서, 신단리의 '신'(新)과 두월리의'월'(月)을 따서 '신월리'(新月里)라고 하였다. 현재 자연부락으로는두월ㆍ신단ㆍ숯골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행정 편의를 위하여 3개 행정리로 나누어져있다.
이 마을에는 여흥 민씨(驪興 閔氏), 광주 이씨(廣州 李氏) 그리고 밀양박씨(密陽 朴氏)와 인동 장씨(仁同 張氏)들이 세거(世居)하여 오고있다.
신월리에는 초월초등학교가 있는 마을로, 이 학교는 1931년에개교하여 역사가 오래된 학교이다.
이 마을은 남쪽으로는 초월읍 선동리와연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초월읍 무갑리, 서쪽으로는 초월읍 서하리와 연해 있다.중부고속도로가 이 마을 앞으로 지나가고 있으며, 108번 지방도가 마을 앞으로개통되어 예전에는 교통이 아주 불편하였으나, 지금은 교통이 좋아졌다.
마을의 문화유적
이양중(李養中)의 묘
신월리에는고려유신(高麗遺臣)이며, 광주 이씨(廣州 李氏) 석탄공파(石灘公派)의 시조(始祖)인석탄공(石灘公) 이양중(李養中)의 묘와 그의 사당(祠堂)인 고덕재(高德齋)가 있다.이양중은 고려 충신으로 조선 태종(太宗)과 동문수학한 절친한 친구이면서도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켜 태종(太宗)의 간곡한 권유에도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이 손(李 蓀)의 묘
또한이양중의 증손(曾孫)으로 이 손(李 蓀)의 묘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이 손은조선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학문은 물론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하여 왕명으로선전관에 제수되었다. 1470년(성종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각도의 관찰사(觀察使)를역임하고,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공을 세운 정국공신(靖國功臣)이며,의정부(議政府) 우찬성,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러 궤장( 杖)을 하사 받았으며,중종(中宗)8년(1513) 한산군(漢山君)에 봉해졌다.
이 래(李來)의묘
신단 마을 초월초등학교가 있는 곳에는 이 래(李 來)(1362~1416)의 묘와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그는 조선 태종대(太宗代)의 문신(文臣)으로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고려 우왕(禑王)9년(1383)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관직에 나아가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지냈으나, 1392년 포은(圃隱)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계림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공주(公州)로 낙향했다. 조선이 개국하자 출사(出仕)하여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가되고 왕자의 난 때는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에책훈되었다. 태종4년(1404)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여러 요직을 거쳐,병조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사후 태종(太宗)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고계성부원군(鷄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시호(諡號)는 경절(景節)이다.
옥산사(玉山祠)
신월리 숯골 마을에는 〈옥산사〉(玉山祠)가 있는데,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 장 돈(張 暾)의 사당이다. 그는 인동 장씨(仁同 張氏)로인조(仁祖)2년(1624)이 괄(李 适)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으며,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성천진관병마절제사(成川鎭管兵馬節制使)로서청군(淸軍)과 맞서 싸우다가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전사하였다. 사후(死後)에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사패지(賜牌地)로 지금의 선장골 마을일대를 하사(下賜) 받았다.
두월(斗月)마을(두둘기)
마을의 형태가 마치반달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반월'(半月)이라 하다가, 변하여 '두월'이 되었다고한다. 속칭 '두둘기' 라고도 한다.
선동리에서 퇴촌방면으로 108번 지방도를따라 1.5km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신단(新丹) 마을 -사기막골
조선시대에 백자를 굽던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탄동마을-숯골
조선조 말엽, 이 마을에서 숯을 구워 한양에 내다 팔아서 생활하는사람들이 집단으로 부락을 형성하여 살았으므로 '숯골' 이라고 하였다.
학교말
초월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벌담
두월마을이양지말과 음지말로 나누어져 있는데, 음지말을 '벌담'이라고부른다.
산수골
초월초등학교 뒷산에 큰 산소가 있는데, 그 곳을'산수골'이라고 한다.
방언으로 '산소'를 '산수'라고 부르기때문이다.
바른골
원래는 '바튼골'이라고 불렀는데, 변하여 '바른골'이되었다. 숯골마을 무갑산 아래 산골짜기를 말한다.
장변골
숯골마을이있는 '기장변골'이 변하여 '장변골'이 되었다.
깃대봉
숯골마을 옆에있는 작은 산봉우리를 말한다.
복사골
두월 마을회관 앞에 있는 골을'복사골'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복숭아나무가많았다.
막은골
신월리에서 지월리로 가는 길 좌측에 있는 공동묘지가있는 골짜기인데, 지금 〈광주장례예식장〉이 있는 곳이다.
틍성이
두월마을 앞 뒤에 있는 작은 산등성이를'틍성이'라고 부른다.
절골
두월마을에 작은 암자가 있는골짜기를 말한다.
새번덕이
두월마을 동북쪽에 있는 작은 동산인데,초입에는 은행나무들이 있고, 억새가 많이 자라는 곳이어서 '새번덕이' 라고부른다.
능재
두월마을과 숯골마을 사이에 있는 능선을 '능재'라고부른다.
배매골
두월마을 앞의 논들인데, 뱀과 같이 길어서 '뱀의골'이변하여 '배매골'이 되었다.
매봉
두월마을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를말하는데, 매가 망을 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장터골
숯골마을기장변골 위에 있는 골짜기를 '대장터골' 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이곳에 대장간이있던 터라고 한다.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이 상존하고있다.
사랑말랭이
두월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 보면 면적이3정보가량 되는 편편한 산이어서 사랑마루 같다고 하여 붙여진이름이다.
굴바위골
두월마을 동쪽 무갑산에 있는 큰 바위에 동굴이 있어'굴바위골' 이라고 부른다.
돼지골
두월마을 무갑산 아래에 있는 작은골짜기를 말한다.
비아메기
용수리와 신월리 사이에 있는 작은 고개를말하는데, 한자(漢字)로는 '비아현'(飛蛾峴)이라고 쓴다
큰골
숯골마을에 있는 무갑산 자락의 골짜기를 말한다. 우측으로감투봉이 있다.
두루봉
상동막골 마을과 숯골마을 사이에 있는산봉우리를 말한다.
함장곡
선장골마을과 숯골마을 사이를 넘어 다니는고개를 말하는데, 예전에 함장을 팠던 고개여서 붙여진이름이다.
뒷골
두월마을 북쪽에 있고, 마을 뒤에 있어서 '뒷골'이라고부른다.
배나무골
신단마을에서 도평리로 가는 산골짜기를 말하는데,예전에는 통학로로 이용하기도 했다. 배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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