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증 묘역 내 석물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5 조회 : 212
지정일 | 2011년 7월 26일 소재지 | 초월읍 지월리 산37
지정사항 | 광주시 유형문화유산 제4호

이극증(쐥克增, 1431∼1494)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경위(景祁), 시호는 공장(恭長)이다.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아들로 1456년(세조 2) 식년문과에 병
과로 급제하였다. 1468년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으로 광천군(廣川君)에 봉해졌고, 1470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국가 경비의 식례(式쎑)인『식례횡간(式쎑
橫看)』을 찬정(撰定)하였다. 1471년(성종 2) 순성명량좌리공신(純誠明싒佐쐧功臣)의 호를 받았고,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승계되어 호조판서가 되었다. 1482년 병조판서를 거쳐, 1484년 겸동지성균관사(兼同知成均館事)로서 문묘를 수축하고 동무(東 )와 서무(西 )를 넓혀 위판제도(位版制쇐)를 일신하였다. 또 향관(享官)
의 재숙소(齋宿所)를 정록청(正錄廳)의 북에 두었고, 관사의 무너진 곳을 고쳐 새롭게 하는 등 학궁(學宮)에 공이 컸고, 1488년한성부판윤이되었다.
이극증 묘역은 원래 성남시 야탑동에 있었으나 분당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원래 단분(單墳)이었으나 묘를 새로 조성하면서 합장하였다. 옛 석물과 새로 제작한 석물이 함께 있는데, 옛 석물은 묘표·상석·장명등·문인석 1쌍·향로석이 있고, 묘를 새로 조성할 때 묘표와 혼유석·상석·향로석을 추가로 조성하였다. 묘역 내 석물은 15~16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시대적 변화 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작품으로 서학술적·조형적 가치가 커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묘표는 사각형의 받침에 비의 윗부분이 둥근 방부원수 형태이다. 전면에“輸忠保社錦靖難 翊戴純誠明싒佐쐧功臣 崇政大夫廣川君 兼知 經筵事同知成均館事 □□□ 諡恭長公李公之墓”라 되어 있으며, 글씨의 일부는 낡고 오래되어 판독이 어렵다. 4각 형태의 장명등은 체석(體石)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체석은 하단과 중단 사이에 홈을 내었고, 중단에는 4각형의 테두리를 만들어 문양을 새겼으나 판독이 어려워 확실하지는 않다. 화창(火窓)은 凹자 형태로 한쪽만 내었다. 지붕돌인 개석은 사각 지붕 형태로 만들고 꼭대기에 원수를 올렸다.
망주석은 하나의 돌로 대석(臺石)과 몸돌을 조각하였고, 기둥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문인석은 복두공복 식으로 15세기말 연산군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며, 얼굴 표현에서 입주변이 뭉툭하게 표현되었다. 홀을 잡은 손가락의 표현이 미숙하며 옷 주름은 선으로 길게 발등까지 내려왔다. 허리에는 야자대를 둘렀는데 뒤로 끄트머리가 선으로 흘러내리게 조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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