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흠 묘역 및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21.03.12 조회 : 164
지정일 | 1994년 4월 20일 소재지 | 퇴촌면 영동리 산12-1
지정사항 | 경기도 기념물 제145호(보호구역 면적 : 29,097㎡)

신흠(申欽, 1566∼162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역임한 재상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
옹(放翁), 시호는문정(文貞)이다.
1585년(선조 18) 진사시(進士試)와 생원시(生員試)에 차례로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여 지평으로 승진되고, 이어 사성·대사간·부제학·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는 한성부판윤·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인조 때에 예문관·홍문관의 대제학과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한문학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장중하고 간결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인하여 선조의 신망을 받으면서 항상 문한직(文翰職)을 겸임하였다. 또한 대명 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 문서의
제작에참여하는등문운(文運)의진흥에크게기여하였다.
묘의 봉분은 원형봉토분으로 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와 단분합장묘이다.
묘역은 사성(沙城)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가까이 모여 있다. 상석 전방에는 장명등이 있으며,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
으로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배열되어 있다. 묘비는 1628년(인조 6)에 건립된 것으로 후면에는 그가 손수 작성한 비문이 새겨 있다. 1699년(숙
종 25)에 건립된 신도비는 거북 받침에 반원형의 용 문양 지붕을 올린 귀부이수(뿞趺 首) 양식으로 묘역의 동남쪽 약 200m 지점 묘역 입구에 세
워졌다. 총높이가 335㎝로 매우 크며,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비례 감각과 세부적으로 생동감 있는 조각표현 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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