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과정(枕戈亭)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3.11.17 조회 :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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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과정은 침괘정이라고도 하며 산성로타리에서 서북쪽으로 70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말단부로서 해발고도는 345m로 로타리 부분의 평지에서 약 25m의 높이이다.
『남한지』에 의하면 이곳의 원래 건물은 인조2년(1624) 남한산성 축성 총책임자인 이서가 울창한 나무숲 속에서 찾아낸 옛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 집은 몇 백년이나 됐는지 알 수 없엇으나 기둥과 초석이 모두 탄탄하였고 방을 덥히는 온돌도 말짱하였다고 한다. 특히 방 한복판의 온돌은 몇 척이 더 높았는데 시험삼아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보니 이 방이 먼저 덥고 차차로 낮은 다른 방으로 번져 가는데, 당시 이곳 촌로들은, 이곳이 온조왕의 궁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설은 병자호란 2년 전인 인조12년(1634)에 침과정 오른쪽 군기고 벽에 명나라 사신(부총병 정용)이 난초와 용을 그렸는데, 그후 비가 오려고 하면 구름기운이 그 그림에서 피어나고, 또 멀리서 보면 용이 날아가는 기운이 일어나므로, 이곳에 와서 비 내리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때의 난초나 용의 그림은 자취도 없어졌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이곳을 중수하고 ‘침과정’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침과’란 ‘창을 베개삼는다’는 뜻이다. 한시도 마음을 풀지 않고 국방에 전념한다는 뜻이 담긴 말로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스며 있다. 오늘날은 침과정이 이곳에서 ‘침괘정’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그 명확한 표기는 ‘침과정’이 옳다. 왜냐하면 ‘戈’는 ‘괘’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현재 성내 로타리에서 서북쪽으로 700m 지점의 구릉지에 잇는 건물인데 백제 온조왕의 왕궁지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현재 침괘정은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중수하고 침과정이라 칭하였다. 건물은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양식으로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이다. 네모지게 대충 다듬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4각의 모기둥이 특징이다. 그 위에 주심포양식의 기둥을 올렸으며 포는 이출목익공식이다. 건물의 남쪽 2칸을 제외한 나머지 방에는 툇마루를 둘렀으며 각 칸에는 2쪽 여닫이 격자문을 닫았다.
천장정식은 우물천정을 하였고 동쪽 툇마루 아래에 2개의 아궁이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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