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동(直洞)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2.09 조회 : 2004
마을의 유래와 위치

본래광주군 광주읍 직리 지역으로서 태전동으로부터 곧은 골짜기 속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곧은골’이라 하고 한자(漢字)로 ‘직동’(直洞)이라고 불러왔다. 어떤 문헌에는‘직곡’(直谷)으로 표기한 것도 있다.
이 마을은 의령 남씨(宜寧 南氏) 조선의개국공신(開國功臣) 충경공(忠景公)남 재(南 在)의 후손들 세거지(世居地)로서,현달한 조상들의 묘가 많이 있으며,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적어도 고려 때부터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의묘가 이 마을에 있어 신창 맹씨(新昌 孟氏)들도 몇 호 살아 왔다.
‘곧은골’과‘새터말’의 두 마을로 이루어졌었는데, 근래에 곳곳에 공장들이 들어서서 여러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마을은 광주시청으로부터 서남방면으로 약 8km정도 거리에 있으며, 인근 부락으로는 태전동(胎田洞)이 동쪽에 있고, 남쪽으로는목동(木洞), 북쪽으로는 삼동(三洞), 그리고 서쪽으로는 맹산(孟山)을 넘어 성남시율동ㆍ야탑동과 접해 있다. 산간 오지(奧地)마을로 예로부터 ‘피란곳’이라고 불러올만큼 산골 마을이다. 이왕현(利旺峴)이라는 고개를 넘으면 성남시의도촌동(島村洞)인데, 예전에는 이 고개를 넘어 송파 방면으로 걸어서 다녔다고 하는바, 지금은 이 고개가 폐쇄되었고, 맹산(孟山)이 둘러쳐져 있어 임목(林木)이 많이생산되었던 곳이다. 농경지는 많지 않아서 자연히 밭작물을 많이 재배 하였었다.지금은 전원주택지(田園住宅地)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이 마을에도 중소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문화유적

이 마을은 의령남씨(宜寧 南氏)의 세거지(世居地)이기도 하고, 신창 맹씨(新昌 孟氏)도 함께거주하여 왔는데, 경기도 기념물 제 21호로 지정되어 있는 맹사성(孟思誠)의 묘가이 마을에 있다.

맹사성(孟思誠)의 묘
고려 말 조선 초기의재상(宰相)으로 본관(本貫)은 신창(新昌)이고 호는 고불(古佛)이며, 시호(諡號)는문정(文貞)이다. 고려말의 최영(崔瑩) 장군의 손녀사위이며, 고려 때에는우왕(禑王)12년(1386)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우헌납(右憲納) 등을 역임하고, 조선조에는 수원판관(水原判官),이조참의(吏曹參議), 예문관 제학(提學),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거쳐, 1408년대사헌(大司憲)에 이르자 태종(太宗)의 허락도 없이 부마(駙馬)인 조대림(趙大臨)을국문(鞠問)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서 한주(韓州)로 유배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영상(領相) 성석린(成石麟)의 변호로 풀려나 다시 예조참판,이조(吏曹)ㆍ공조(工曹)ㆍ호조(戶曹)판서(判書)를 역임하고, 대제학(大提學)을겸임하였다. 1427년에 우의정(右議政)에 올랐고, 1429년에는 왕으로부터궤장(几杖)을 하사 받았다. 황희(黃喜)와 더불어 조선 초기문화창달(文化暢達)에 크게 기여하였다. 청백리(淸白吏)로 기록되고, 효성(孝誠)이지극하여 정문(旌門)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작품에 『강호사시가』가 있다. 경기도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령 남씨(宜寧 南氏)의 묘역에는 다음과같은 선현(先賢)들의 묘가 있다.

남세건(南世健)의 묘
조선 명종대의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의령(宜寧), 字는 백순(伯順)이며, 중종(中宗)2년(1507)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중종(中宗)19년(1524)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홍문관(弘文館) 직제학(直提學)과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거쳐예조참판(禮曹參判)을 역임 하였다.

남 호(南 琥)의 묘
선조(宣祖)대의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의령, 자는 중헌(仲憲). 선조(宣祖)1년(1568)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개성부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사후(死後)에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증직(贈職)받았다.

남이신(南以信)의 묘
선조(宣祖)대의 문신(文臣)으로 본관은의령, 호는 직곡(直谷)이다. 남 호(南 琥)의 아들이고 대사헌(大司憲)정윤복(丁胤福)의 사위이다. 선조(宣祖)21년(1588) 진사시에 합격하고, 2년 후에증광(增廣)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가 되었고,대사간(大司諫)을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르렀다. 사후에 영의정(領議政)이추증(追贈)되었다. 묘역 입구에는 1703년(숙종29)에 세워진 신도비(神道碑)가있는데, 대사성 김기국(金耆國)이 찬(撰)하고, 현손(玄孫) 한명(漢明)이 글씨를썼다

남두첨(南斗瞻)의 묘
효종(孝宗)대의 문신(文臣)으로 본관(本貫)은의령(宜寧), 호는 성와(醒窩)이다. 남이신(南以信)의 아들로 우의정(右議政)한응인(韓應寅)의 사위다. 광해군8년(1616)에 文科에 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가충주목사(忠州牧使)를 역임하고 해주목사(海州牧使)를 거쳐 병조참지(兵曹參知)에이르렀다. 사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증직(贈職) 받았다.

남선(南선)의묘
효종(孝宗)대의 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창명(滄溟)이고두첨(斗瞻)의 아들이다. 인조(仁祖)14년(1636)에 文科에 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가승지(承旨)를 거쳐, 외직으로 여주목사(驪州牧使), 충주목사(忠州牧使)를 거쳐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사후에 이조참판(吏曹參判)을증직(贈職) 받았다. 1749년에 세운 신도비(神道碑)가 있으며, 예조참판(禮曹參判)신유(申濡)가 찬(撰)하였다.


곧은골
직동의 중심 마을이다. 이 곳에맹사성의 묘가 있고, 의령 남씨의 선대묘역이 있다. 의령 남씨들의 세거지로집성촌이다. 맹씨의 후손들도 몇 집이 살고 있다. 맹산(孟山)에서 발원하여흘러오는 하천이 있고, 이왕현(이앵이고개)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이 이마을 어귀에서 합수하여 직리천(直里川)을 이루어 태전동에서 목리천(木里川)과합쳐져 경안천으로 유입된다. 지금은 전원주택(田園住宅)이 많이 들어서서도시사람들이 많이 와서 거주하고 있다.

새터말
태전동에서 ‘곧은골’마을에 다다르기 전에 예전에는 5~6호의 농가(農家)가 있었다. 곧은골 마을에서새로이 이 곳에 터를 닦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여 ‘새터말’이라고 이름 하였다.지금은 중소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논골
곧은골에서 이왕현으로올라가다가 우측으로 논이 많이 있었다. 논이 마을에서 제일 많은 곳이라 하여‘논골’이라고 불러왔다.

맹산(孟山)
곧은골에서 제일 높은 산이며,맹사성의 묘를 이 산에 설치한 후 ‘맹산’이라고 불러왔다고한다.

매지봉
맹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매지봉’ 이라고 불러왔는데맹산의 주봉이란 뜻으로 ‘맹주봉’이 변하여 ‘매지봉’이 된 것 같다.

구저바골
곧은골에 있는 골짜기로서, 이왕현고개로 올라가다가 고개 밑에있는 골짜기인데, 골짜기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다.

바른골
곧은골에있는 골짜기인데, 맹산의 주봉인 매지봉 바로 밑에 있는 골짜기를말한다.

샛골(느락골)
곧은골에서 목동(나무골)으로 넘어가는 골짜기를말한다. 예전에는 인가가 없었으나, 지금은 중소제조공장과 더불어 인가가 들어와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목동과 직동 사이에 있는 골짜기라 하여 ‘사이골’이‘샛골’로 되었다.

성지골
곧은골에 있는 골짜기로서 은행나무가 많아‘은행나무골’이라고도 하였다.

오봉산(五峯山)
샛골 옆의 산이 다섯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여 ‘오봉산’이라고 불러왔다. 지금은 석산(石山)을개발하여 채석하고 있는 곳이다.

원터
곧은골 입구 우측에 있는 과수원이있는 곳이다.

장고개
직동과 성남시 율동 사이에 있는고개이다.
곧은골에서 예전에 분당(盆唐)으로 장을 보러 다닐 때, 이 고개를넘어 지금의 성남시 분당구 율동(栗洞)으로 갔었다. 장을 보러 가는 고개라고 하여‘장고개’라고 불렀는데, 곧은골에서 맹산을 넘어가는 고개이다. 한편 성남시율동ㆍ서현동ㆍ수내동ㆍ분당동ㆍ이매동 등지의 주민들이 광주에 있는경안장(京安場)을 갈 때에도 이 고개를 이용하였다. 성남시 쪽에서는‘곧은골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왕이고개(利旺峴)
곧은골에서서북쪽으로 나 있는 고개이름인데, 옛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고,『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의하면, 이 고개가 남한산성을 방어(防禦)하는데군사요지(軍事要地)였다고 하였다. 예전에는 이 고개를 넘어야 송파(松坡)를 거쳐서울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고개를 넘으면, 지금의 성남시 도촌동(섬말)에이른다.

장자리
장고개를 넘기 전에 있는데, 편편한 자리같이 되었다하여 ‘장자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절앞
이왕현 밑에 예전에 절이있었으나, 빈대가 극성하여 폐사(廢寺)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이름이다. 지금은 전원주택(田園住宅)들이 들어서 있다.

종지봉
옛날 9년 장마(9년 동안 장마가 짐) 때 물에 잠겨 꿀 종지만큼만남았다 하여 전해 오는 전설적인 산봉우리이다.

큰능안골
의령 남씨(宜寧南氏)의 선대묘역(先代墓域)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큰 산소를 쓰면 능과 같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탑골고개
곧은골에서 성남시야탑동(탑골)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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