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촌읍(實村邑)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2.13 조회 : 1676
실촌읍의 위치와 읍명의유래

실촌읍은 광주시(廣州市)의 동남(東南)부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며,동쪽은 여주군(驪州郡)금사면, 남쪽은 이천시(利川市)신둔면, 북쪽은 초월읍과퇴촌면, 남서쪽으로는 광주시 도척면과 접해 있다.앵자봉(鶯子峰:667m)ㆍ천덕봉(天德峰:635m)ㆍ정개산(鼎蓋山:407m)ㆍ원적산(員積山)등에둘러싸여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地形)을 이루고 있다. 곤지암천 유역에취락(聚落)이 발달하여 왔으며, 중부고속도로(中部高速道路) 곤지암 인터체인지가실촌읍 곤지암리와 삼리 일대에 설치되어 있고, 3번 국도 경충선(京忠線)이지나가고 있으며, 도척면으로 향하는 지방도(地方道)와 양평군(楊平郡)으로 가는지방도가 있어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실촌(實村)이라는 지명(地名)은예로부터 명당(明堂)이 많고 기인(奇人)ㆍ재인(才人)이 많이 태어났고, 고을이견실(堅實)하다고 하여 실촌면(實村面)이라고 칭하게 되었고, 이런 면명(面名)은조선(朝鮮) 초기(初期)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실촌읍의 연혁

실촌읍삼리(三里)에서는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의 유물이 발견되었고,신대리(대석동)에서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연곡리에서는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실촌읍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실촌읍의行政區域의 변천(變遷)을 보면 조선조 말인 1904년 대한제국(大韓帝國) 때의실촌면은 다음과 같이 행정구역이 편성되어 있었다.

곤지암리(昆池岩)복상동(卜尙) 외선동(外仙)
묵방리(墨坊)상조현동(上鳥峴) 내선동(內仙)
구양리(九陽)하조현동(下鳥峴) 상탑선리(上塔仙)
구수동(九水)설월리(雪月) 하탑선리(下塔仙)
신촌(新村)우항동(牛項) 만곡동(晩谷)
유여리(柳余) 사동(寺洞)지음리(知音)
야포동(冶浦) 국정포동(國井浦)건업리(建業)
동심리(洞深) 장재동(長在)연곡동(烟谷)
부곡동(釜谷) 오향동(五香)하열미동(下悅美)
중열미동(中悅美) 상열미동(上悅美)대석리(大石)

이상 30개 동리(洞里)로 되어 있었다.

1914년일제(日帝)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 조정 하면서 다음과 같이통폐합하였다.

곤지암리(昆池岩)- 곤지암리와 묵방리ㆍ대석동을합침
수양리(水陽)- 구수동ㆍ구양리 그리고 복상동을 합침
봉현리(鳳峴)-상조현리ㆍ하조현리ㆍ설월리를 합침.
부항리(釜項)- 부곡동과 우항동을합침.
만선리(晩仙)- 만곡동ㆍ상탑선리ㆍ하탑선리를 합침.
이선리(二仙)-외선동과 내선동을 합침.
유사리(柳寺)- 유여리와 사동을합침.
삼합리(三合)- 국정포동ㆍ야포동ㆍ지음리를 합침.
장심리(長深)-장재동과 동심리를 합침
상열미리(上悅美)- 상열미리와 중열미리를 합침.
하열미리(下悅美)- 하열미리를 그대로 둠.
신촌리(新村)- 신촌을 신촌리로만듦.
오향리(五香)- 오향리를 그대로 둠.
건업리(建業)- 건업리를 그대로둠.
연곡리(蓮谷)- 연곡리를 그대로 둠.

1963년 오향리를 상오향과하오향으로 분리하였고,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척면 삼리(三里)와 초월읍신대리(新垈里)가 편입되어 현재는 16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1956년에는처음으로 지방자치가 실시되어, 동년 8월 8일에 면장과 면의회 의원을 선출하는선거가 있었는데, 초대 민선 면장에는 구직서(具直書)가 당선되었고, 다음과 같이면의회가 구성되었다.

의 장 송수현(宋秀顯) 실촌면 오향리
부의장이강윤(李康潤) 곤지암리
김두식(金斗植)수양리
구연두(具然斗) 열미리
박래호(朴來浩)오향리
김동섭(金東燮)
이종만(李宗萬)연곡리
오덕규(吳德圭) 이선리
이종환(李宗煥)유사리
박익신(朴益信) 건업리
신철영(申徹永)곤지암리

과거 농업에 주력하던 시대에는 벼농사를 주로 하며, 밭작물로는콩, 감자, 고구마 등을 생산하였고 과수재배와 낙농업, 한우사육(韓牛飼育)도활발하였으며, 양잠(養蠶)도 많이 하였다. 최근에는 인삼재배(人蔘栽培)도 많이했으나, 현재는 많은 중소 제조업체가 들어서서 농사에 주력하기보다는농외소득(農外所得)이 더 많은 실정이다. 또한 삼리의 옛 경기도 종축장(京畿道種畜場) 자리에는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개최한 바 있고, 그 곳에조선관요박물관(朝鮮官窯博物館)이 세워져 상설 전시되고 있다. 또한 실촌면에는5개의 골프장이 있다. (중부CC, 그린힐CC, 남촌CC, 이스트벨리CC 그리고경기CC.)

실촌읍사무소는 대한제국 때 면제가 실시되면서 오향리에있었으나, 1920년에 곤지암리로 옮겨, 현 위치인 곤지암리 346-6번지에 소재하고있다.
역사적으로 실촌면은 광주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을 일으킨 지역으로,당시 면사무소가 있던 오향리 면사무소 앞에서 실촌면 주민들이 크게 봉기(蜂起)하였다

실촌읍의 문화유적

신립 장군(申砬 將軍)의 묘
경기도기념물 제95호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충주 탄금대(彈琴臺)에서 장렬히순절(殉節)한 신 립 장군묘(申砬 將軍墓)가 신대리 산1-1번지에 있는데, 신 립(申砬)은 평산인(平山人)으로 시호(諡號)는 충장(忠壯)이다. 조선 선조(宣祖)원년(AD1567)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온성부사(穩城府使), 함경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을 거쳐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내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되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背水陣)을 치고,북상(北上)해 오는 왜적(倭敵)과 대결하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배, 부하장수인 김여물(金汝勿)과 함께 강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후에 영의정에추증(追贈)되었다.

곤지암(昆池岩)-곤지암바위
경기도 문화재자료제63호인 곤지암(昆池岩)바위는 곤지암리 453번지에 있는데, 이 바위에 전해오는전설에 의하면, 신 립 장군이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달천에 몸을 던져순국(殉國)한 후 시신(屍身)을 못 찾아, 후손들이 그의 옥관자(玉貫子)만을어부(漁夫)를 통해 찾아서 지금의 묘가 있는 신대리 산1번지에 산소를 쓰려고하였으나, 묘자리가 쥐혈인데, 묘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고양이와 똑같이 생긴바위가 있어 묘를 쓸 수 없다고 하므로, 상여(喪輿)가 대쌍령리에서 하룻밤을 자고있었다. 그날 밤 광풍(狂風)이 불고 벼락이 고양이 바위를 쳐서 두 동강이 나고 그앞에 연못이 생겼는데, 그 바위가 없어졌으므로 묘를 쓸 수 있다고 하여, 다시상여를 메고 되돌아 와서 지금의 묘(墓)자리에 산소를 썼다고 한다. 바위가 벼락을맞고 갈라진 틈에서 향나무가 나와 자라서 지금도 300년이 넘도록 잘 자라고있다.(이상은 후손인 平山 申氏들의 증언)

지금 곤지암바위의 안내판에는위의 설화와는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구전(口傳)으로전해오는 설화(說話)에서 나온 것이어서 어느 설화가 진실에 가까운지는 자료가없어 찾을 길이 없다.

선사유적지와 조선백자도요지

실촌읍에는 많은 선사 유적지(遺跡地)와 조선백자도요지(朝鮮白磁陶窯地)가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 유물이 삼리에서 발견되었고,곤지암리(대석동)에서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연곡리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발견 되었다.
조선백자 도요지는 읍내 거의모든 마을에서 발견되어 50여 곳에서 청화백자ㆍ분청사기 등 15세기부터 18세기에걸쳐 생산되던 귀중한 백자 유물이 많이 출토 되었다. 사적(史蹟) 134호로 지정된곳만 해도 곤지암리에 1개소, 신대리에 6개소, 상열미리에 4개소, 상오향리에1개소, 그리고 유사리에 3개소가 있다.

선현들의 묘소와신도비

선현(先賢)들의 묘소도 많아서 열미리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세종(世宗)대로부터 성종(成宗)대에 이르기까지 명신(名臣)으로 알려진세조(世祖)조에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치관(具致寬)의묘와 비문(碑文)을 서거정(徐居正)이 쓴 신도비(神道碑)가 있고, 연곡리에는 조선숙종(肅宗)대의 문신(文臣)으로 도승지(都承旨)와 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쳐좌참찬(左參贊)을 역임한 이현석(李玄錫)의 묘가 있으며, 삼합리에는 고려충신김약시(金若時)의 묘가 있다.
한편 신 립 장군의 묘역에는 그의 후손인 신완(申 琓)의 묘가 있는데, 그는 숙종(肅宗)대의 문신(文臣)으로 벼슬이영의정(領議政)에까지 이르렀던 인물로 평천군(平川君)에 봉해졌다. 그 외에도 많은선현들의 묘가 각리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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