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리(鎭牛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2.13 조회 : 1179
마을의 유래와위치

진우리는 조선조 말까지 진촌리(鎭村里), 우치동(牛峙洞)으로 두동리가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었다.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개편하면서 두 마을을 합쳐 진촌리의 진(鎭)과 우치동의 우(牛)를 따서진우리(鎭牛里)라고 하였다.
도척면 소재지인 노곡리(老谷里)에서실촌면(實村面) 곤지암리 방향으로 갈 고개를 경계로 하여 곤지암 방면에 조성된마을이다.

지금은 1, 2, 3리로 행정리를 만들었다. 1리는진말ㆍ옛진말ㆍ주막거리ㆍ낡은 터 등 4개부락이고, 2리는우치ㆍ새터말ㆍ큰골ㆍ원터로 되어 있으며, 3리는부채골ㆍ웃말ㆍ아랫말ㆍ점말이다.

진우리(진말)는 1400년 경에 신안주씨(新安 朱氏)가 처음으로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하고 배포하기 시작하였다고한다. 지금은 진우1리에 신안 주씨(新安 朱氏)와 김해 김씨가 대성을 이루고있으며, 여타 성씨들과 함께 10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진우2리 우치마을에는경주(慶州) 이씨, 김해(金海) 김씨, 경주(慶州) 김씨가 대성(大姓)이며 60여 호가거주하고 있다.
진우3리(부채골)는 평산 신씨 · 경주 김씨 · 경주 최씨가대성이며, 6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진우리에는 저수지(貯水池)가 있어농용(農用)수로 사용함은 물론 낚시터로도 시설이 잘 되어있다.
근래에는 진우리산 번지 일대에 별장(別莊)촌이 생겼는데, 약 50호가 들어섰다.

마을의문화유적

신경인(申景 )의 묘
진우2리에는 조선 인조대(仁祖代)의무신(武臣)인 신경인(申景湮)의 묘가 있다. 신경인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서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倭敵)과 싸우다 장렬히순절(殉節)한 신립(申砬)장군의 3남으로 광해군7년(1615) 무과(武科)에 급제하여선전관(宣傳官), 오위도총부도사(五衛都摠府都事)를 역임하고,인조반정(仁祖反正)에 형(兄)인 신경진(申景鎭), 신경유(申景裕)와 함께 참여하여정사공신(精社功臣)에 책훈(策勳)되고 동성군(東城君)에 봉해진 인물로, 이후포도대장(捕盜大將), 호위대장,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으며,청렴(淸廉)하고 신중(愼重)하였다.
같은 묘역에 신탁(申琢)의 묘가 있는데,신경인의 증손으로 조선 숙종(肅宗)대의 문신(文臣)으로 동릉군(東陵君)에봉해지고, 이조참판에 추증(追贈)된 인물이다.

옛진말
1400년 경에 신안주씨(新安 朱氏)가 최초로 입향(入鄕) 배포하여 부락을 형성하였고 그 후일제(日帝) 강점기에 공동묘지를 설치하게 되면서, 마을로 상여(喪輿)의 왕래가빈번하여 사람살기가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주씨(朱氏)들이 '진말'로 이거(移居)하게되어 가구 수가 감소하고 있었으나 예전에 살던 곳이라 해서 '옛진말'이라고 부르고있다.

진말(鎭村)
'옛진말'에 공동묘지가 들어섬으로 인하여 이 곳으로이거(移居)하여 마을을 만들고 '진말'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마을은 신안주씨(新安 朱氏)가 배포하였으며, 지금도 대성(大姓)을 이루고 있다. 그 외 김해김씨(金海 金氏)도 대성을 이루고 있으며, 진말에서도 주막거리는 상가(商街)가많이 들어서 있다

사장터
지형(地形)이 편편하고 넓어서, 예전에 활쏘기대회와 궁술(弓術) 연마장으로 활용하였다고 하여 '사장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마을에는 1550년 경, 신경의(申景毅)공이 식재(植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느티나무가 있다. 광주시 지정 보호수로서 마을의 휴게소 겸 정자(亭子)로 이용하고있다.

움터
전에 움을 묻고 사람이 살던 움터가 있었다고 하여'움터'라고 불리우고 있다.

산제단(山祭壇)
진말 뒷산에 위치한제단(祭壇)인데, 설치 년대는 1400년 경 진말이 배포되면서 마을 신앙으로 함께설단(設壇)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매년 음 10월 10일을 제사(祭祀)일로정하고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生氣福德)과 부정(不貞)을 엄히 가리어 제주(祭主)를선정하여 조용한 야간(夜間)을 이용하여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부락의안녕을 기원하는 제단이다.

우치(牛峙)-소티
이 마을은행정리(行政里)로 진우3리에 속한다. 예전에 이 산에 있는 바위들이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 돌들을 삼각산(三角山)에 갖다 놓으려고 바위에 구멍을뚫어, 소가 끌고 가다가 이 우치고개에서 소의 봇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소가넘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고개를 우치(牛峙)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순우리말로 '소티'라고 한다. 지금은 웃말 · 아랫말로 나누어져 있다.

새터말
옛날에 동리가 있었으나 한동안 폐동(廢洞) 상태로 있다가, 근래150년 전부터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동리가 새로이 생겼다고 하여 그 때부터'새터말'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주 김씨와 전주 이씨가 대성(大姓)을 이루고30여호가 거주한다. 지금은 진우2리이다.
진우리 503번지에는 1820년 경부터한학(漢學) 서당(書堂)이 있어 8.15 광복 후 까지도 있었다. 이 마을 앞에 아름드리참나무 한 그루가 있으니, 1920년 경에 식수된 것으로, 지금은 큰 나무가 되어훌륭한 쉼터 겸 더위를 피하는 정자목(亭子木)이 되어 있다. 진말 동쪽에 자리 잡고있는 마을이다.

큰말(큰골)
이 마을은 300여 년 전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처음 배포하고, 큰골이라 했는데, 이는 뒷산이 대곡산(大谷山)이므로 산이름을 따서 대곡(大谷) 즉 '큰골'이라고 부르다가 '큰말'이 되었다. 경주 이씨가대성(大姓)이며 3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마을 복판에 이 마을에 살던 고이덕조씨가 식목한 느티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100년이다. 이 부락의 유일한정자목으로 이용되고 있다.

원터
전해오는 얘기로, 옛날 길가는 행인을위하여, 작은 집을 지어 놓고 행인이 원하는 대로 그 집에서 자고 싶으면 자고,자고 갈 수도 있으며 또한 시장한
행인에게는 식사도 할 수 있도록 항상 곡식을준비하기를 잊지 않고 늘 준비하였다가 행인에게 편의를 도모하였다 하여 지금도'원터'라 부르고 있다.

부채골
예전에 이 곳에 큰 절이 있었으며 절에부처님을 모신 곳이라 해서 '부처골'이라 했는데, 변하여 '부채골'로 전해지고있다. 새터마을 불당골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점말-모롱고지
이 부락은예전부터 '옹기'를 구웠다고 하여 '점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토질이 질그릇을만드는 점토(粘土)이어서 '점말'이 되었다.
진촌에서 북쪽으로 500m 지점에 있는마을이다.

불당골(佛堂谷)
예전에 이 곳에 사찰(寺刹)이 있어불당(佛堂)이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하여 '불당골'로 전해지고 있다. 새터마을뒷산에 있다.

이용산
이 산은 '각씨봉' 아래에 위치한 산으로 이 산형세가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엎드려 있는 듯 하다고 하여 '이용산'(二龍山)이라부르게 되었다. 우치 마을 저수지 남쪽에 있는산이다.

각씨봉(閣氏峯)
예전에 산 정상 봉우리에 각씨(閣氏)가 살던곳이라 하며, 이곳 산봉우리에는 큰 소나무가 지금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우치마을 저수지 동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국사봉(國思峯)
글자 그대로나라를 생각하며, 봉우리를 오르내리던 곳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칭한다. 일설에의하면, 산줄기가 박덩굴에 박이 주렁주렁 달린 듯한 형상이라고도 한다. 우치 마을저수지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안산
우치 마을 앞 맞은편에 위치한산으로 '안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먹뱅이고개
이 고개를 넘으면, 실촌읍곤지암리 묵방동(먹뱅이)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이름이다.

방아골마을
전에 디딜방아가 있던 곳이라고 하여 '방아골'로전해지고 있다

진우연못
오래 전부터 있었던 연못으로 개인의 저택경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1,000평 정도이고 연못 물 가운데는 아담한 정자가있다.

원수골
진말에서 곤지암리 방향으로 500m 거리 서쪽에 있는골짜기를 말하는데, 더운 물이 많이 나와서 '온수골'이라고 했는데, '원수골'이라고부르고 있다.

음터골
진촌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를말한다.

벼락바위
진촌 마을 서쪽 '섭산'의 큰 바위를말한다.

돈터골
진촌마을에서 노곡리가는 길에 '갈고개' 옆에 있는골짜기를 말한다.

두루봉
진촌마을 서북쪽에 있는 산봉우리를말한다.

둔지들
새터마을 앞에 있는 논들을말한다.

방아골
새터 마을과 소티마을 중간에 논다랑이가 있었던골짜기인데, 지금은 중소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섭산고개
진말마을에서상림리 사기소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소토고개
소티마을에서동남쪽에 이천시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여우고개
진말에서 노곡리노루목마을 용머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주막거리
진말마을 앞삼거리를 주막거리라고 하는데, 이 곳에 예전에는 주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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