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리(陶水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06.02.10 조회 : 2041
마을유래와 위치

이마을은 조선조 말 대한제국(大韓帝國) 시대에는도지동(陶池洞)ㆍ수동리(水東里)ㆍ탑선동(塔仙洞) 등 3개 행정구역으로 되어있었으나, 1914년 일제(日帝)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도지동의'도'(陶)와, 수동리의 '수'(水)를 따서 '도수리'(陶水里)라고 부르게되었다.
퇴촌면 소재지인 광동리와 연접해 있는 마을로서 이 마을에도수초등학교와 광수중학교가 있다.

마을의 문화유적

조선백자도요지
이 마을에는 15~16세기에 조선백자(朝鮮白磁)를 굽던 도요지(陶窯趾)가9개소 발굴되었다. 발굴된 유물을 보면, 청화백자ㆍ분청사기ㆍ철화백자 등 다양한사기(砂器)를 굽던 가마터였다. 그 중 3개소는 문화유적으로지정되었다.

심우승(沈友勝)ㆍ심 액(沈  )의 묘
도수리 산70번지에는심우승(沈友勝)의 묘와 신도비(神道碑)가 있는데, 심우승은 조선 선조대(宣祖代)의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1580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자 진주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구원을요청하러 다녀왔다. 이후 승지(承旨), 호조참판(戶曹參判),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훈되고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심 액(沈  )의 묘도 나란히있는데, 그는 효종대(孝宗代)의 文臣이며, 대사헌(大司憲)과 이조판서(吏曹判書)를역임하였다.

순흥 안씨묘역
안 향(安 珦)의 7대손인 안 근(安 瑾)의묘는 도수리 산72번지에 있는데, 그는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관직이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을 역임하였고 그의 후손들의 묘가 같은 묘역(墓域)내에있다.

숙안공주(淑安公主)의 묘
조선 세종대의 인물로 회천위(懷川尉)황유(黃裕)의 묘와 그의 부인 숙안공주(淑安公主)의 묘가 도수리 산75번지에있는데, 황유는 태종(太宗)의 사위이고, 숙안공주는 세종대왕(世宗大王)의누이이다.

도지동(陶池洞)
예전에 이 마을 앞에 연못이 하나 있었고, 그연못가에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있어서 그 연못의 이름을 '도지'(陶池)라고불렀는데, 그로 인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광동리에서 88번 도로를 따라천진암 방면으로 올라가다가 도수교(陶水橋)를 건너 왼쪽에 있는 마을이다. 순흥안씨(順興 安氏)의 집성촌이며, 도수1리이다.

수동리(水東里)-참샘이
조선조 초기부터 불려온 이름인데, 이 마을에살던 김생원의 집 안마당에서 물이 솟아올라 샘을 파고 보니 그 물이 매우 차고맑아서 '참샘'이라고 했으며, 이 마을을 '수동리'라고 부르게 되었다.도수초등학교와 광수중학교가 이 마을에 있다. 도지동에서 남쪽으로 연해 있고,농경지가 비교적 많아서 풍요로운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농경지에 많은 주택들이들어서 있다.
청송 심씨(靑松 沈氏)의 집성촌이며, 심우승(沈友勝)의 묘가 이마을에 있다.
도수2리이다.

삼백골(三白谷)
예전에 이 마을에백(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세 사람 살았다고 하는데, 이들은 부유하게 살면서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인정이 넘쳐 존경을 받고 살았다. 그래서 이마을 이름이 '삼백골'이 되었다고 한다.
88번 도로를 따라 양평방면으로 좌회전하면서 처음 닿는 마을이다.
전주 이씨(全州 李氏)가 대성(大姓)을 이루고있다. 도수3리이다.

탑선동(塔仙洞)-탑선이
조선조 초기에 이 마을에탑이 있었는데, 그 부락에 살고 있는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이 탑 앞에서 소원을빌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백골에서 양평 방면으로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조선백자(朝鮮白磁)도요지(陶窯趾)가 8개소 발굴되었으며,도수3리이다.

능안
참샘이(도수2리)의 심우승 묘 밑에 있는 골짜기인데,심우승의 묘가 능(陵)과 같이 모셔져 있어 '능안'이라고불러왔다.

기새울
도지동에 있는 골짜기인데, 예전부터 순흥 안씨의 묘를관리하던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동동산
참샘이 마을에 있는데,산이라기보다 조그마한 구릉인데 마치 물동이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그 곳에 개인 묘가 1기 있다.

된양지
도수3리에 있는데, 양지가 바르고볕이 잘 들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골짜기가 가파르기 때문에 '된양지'가 되었다고한다.

마산(馬山)
참샘이에 있는 산인데, 능선 모양이 말잔등과 같다하여붙여진 이름이다.

사기장골(砂器匠谷)
도수3리의 된양지 옆에 있는마을인데, 옛날 사기장이(도공)들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이름이다.

하랑방ㆍ학아동(學兒洞).
참샘이(도수2리)의 도수초등학교가있는 자리이다. 예전에는 서당이 있었는데, 이 곳에 글공부하러 학동들이 모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한절
도지동(도수1리) 국사봉 밑에예전에 3간 정도 되는 작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절은 없고 이름만남았다.

섬말
참샘골의 산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참샘이 마을과동떨어져있어 '섬말'이라고 불러왔다.

쇠메기-쇠뫼기
88번 도로를 따라영동고개(염티고개)를 오르기 전에 있는 마을인데, 예전에는 이 곳에 풀이 많이나서, 소먹이를 이 곳으로 베러왔다고 한다. '소의 먹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쇠메기-쇠뫼기'가 되었다.

오래실마을
도수2리의 있는 작은 부락인데,이 곳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와 익산 임씨(益山 林氏)들이 세거(世居)하여왔다.

지새울 마을
도지동(도수1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재각(齋閣)이 있고, 묘지기들이 살던마을이다.

국사봉(國思峯)
도지동의 뒤에 있는 산인데, 도수리와 오리의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봉우리이다. 이 곳에서 옛날 몰락하여 이곳에 와서 우거하던선비들이 이 산에 모여 나라일을 걱정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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