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동문 쪽에 위치한 장경사와 망월사는 능선을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서쪽에 위치한 망월사는 1394년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한양의 장의사를 허물고 그 곳의 불상과 금자화엄경과 금정 1구를 이곳으로 옮겨 와서 망월사를 창건했다. 지금의 망월사는, 일제 때 불에 타서 절터만 남은 자리에 1990년 새로 건립한 비구니 사찰로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다. 특히 13층 적멸보궁 탑과 병풍산은 망월사의 보물로 불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석탑이 세워지기 이전, 그러니까 지금의 망월사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 그곳에는 한 여인이 속세의 사랑을 불심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수행하듯 하나하나 돌을 쌓아올린 탑이 있었다. 이 돌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출가한 두 남녀가 운명처럼 또 다시 만나게 된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었는데, 이 사연을 담은 돌탑은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대신 경내에 화려한 석탑이 눈부시게 세워져 그 옛날의 비화를 아련히 떠올리게 한다.
최씨 성을 가진 선비가 장경사로 들어온 지 만 2년이 되었다. 배움의 시간은 늘 길고 격리되기에 홀로 세상이 되기 위한 숭고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하여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자기 안에서 하나 됨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러한 깨달음은 비로소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익히게 해주었다. 그토록 애끓는 사랑도 결국 자신을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로 불러내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직 도량이 넓지 못해 정식으로 입적은 하지 못했고, 또한 잡다한 번뇌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잡념을 떨치기 위해 가끔 산책길에 오르곤 했었다.
남한산의 봄은 꽃들의 향연으로 시작되었다. 능선은 먼 곳으로부터 봄을 불러와 진달래와 벚꽃을 흐드러지게 펼쳐놓았고, 산새들로 하여금 그들의 청아한 곡조를 마음대로 읊조리게 했다.
그날도 선비는 사찰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능선마다 진달래는 붉게 피어 생의 환희를 일깨워주었고, 온갖 새들은 가지를 흔들며 날아다녔다. 청춘의 정점에서 사랑을 실현시키지 못한 아픔과, 중생들의 속된 생활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 그에게도 꽃들은 여전히 난해한 존재였다.
능선을 따라 얼마간 오를 때였다. 저만치 골짜기 아래 편편한 터가 있었는데 예전엔 보지 못했던 어떤 물체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곧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고개를 떨어뜨린 채 비탈에 기대어 있는 폼이 마치 어떤 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보여 그는 무척 놀랐다. 게다가 승복을 입고 있었으니 그 놀라움은 실로 컸다. 다급하게 내려가 자세히 살펴보니 젊은 여인이었다. 힘없이 주저앉은 허벅지 주변으로 쉬파리 떼들이 초록빛 등을 번뜩이며 “윙윙” 날고 있었다.
“여보시오.”
그는 어깨를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여인은 옆으로 픽 쓰러졌다. 아직 체온은 따뜻했고 가느다란 팔에선 힘없이 맥박이 뛰고 있었다. 승복은 입었지만 아직 머리모양은 속세의 그것이어서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덥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안색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젖혔다. 순간 선비는 숨이 멎는 듯한 충격에 휩싸여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놀랄 일이 면전에서 벌어진 것이다. 출가한 후 2년 동안이나 수행에 힘썼는데도 아직 가슴에 선연이 남아있는 사랑하는 여인, 바로 그 여인이, 그것도 승복을 입은 채 자신 앞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황황히 여인을 안아 올리는 동안도 무슨 연유로 이곳에 쓰러져 있으며, 앞으로의 목숨은 어찌 되는 건지, 또 어찌해야 되는지 두서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여인의 허벅지는 군데군데 곪아있었다. 이미 상당부분이 썩어 들어가 쉬파리 떼들이 버글거렸고, 구더기가 슬어 차마 볼 수없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선비는 닥치는 대로 풀을 뜯어 구더기 떼들을 털어내고 여인을 안아 올렸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여인은 미세한 숨결로 겨우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강둑이 무너져 거대한 물줄기가 자신을 덮쳐오는 것 같은 두려움에 그는 몸을 떨었다.
바람에 흔들린 꽃잎이 여인의 얼굴 위로 처연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 씨와 최 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양 가문 간에 결혼을 금한 의형제 집안의 자녀들이었다. 이러한 가문의 계율은 오래 동안 지켜져 내려왔으므로 규율을 어기고 사랑의 연을 맺는 것은 마치 근찬상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음양의 조화는 묘한 것이어서 계율과 상관없이 서로 통하게 되었으니 그들 앞에는 커다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랑의 장애물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문에 누를 끼침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꽃들이 만발한 달밤이었다. 그들이 은밀히 살구나무 아래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선비는 타오르는 열정을 삭힐 길이 없어 여인을 뜨겁게 끌어안았다. 천지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고, 세상은 새롭게 빛을 발하며 태어나고 있었다. 설령 죽음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이 크나큰 의미를 버릴 수는 없었다. 천지의 모든 것이 한 사람으로 해 생멸하는 오묘한 법칙 속에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비록 계모 밑에서 자라긴 했지만 행실이 그르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여인에겐 죽음처럼 참담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선비는 나이 어려 조실부모하고 큰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의 백부는 큰 재물과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 하였으며 따라서 가문에 욕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밑에서 자란 선비는 세상의 부조리에 남달리 민감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형식상 보여주는 그의 큰어머니의 사랑은 늘 가슴을 시리게 했다. 그는 양반이라거나 가문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지닌 속된 욕망을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질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분명 그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문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으니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 감정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의 사랑을 지켜주지 않았다. 소문은 금세 퍼져나갔고, 양 가문에서는 쉬쉬하는 가운데 선비의 혼사를 서두르게 되었다.
급기야 어른들끼리 서로 날을 잡고 성 씨 문중 규수와의 혼사를 진행시키게 되었다. 여인은 감금되어 일체의 외출을 저지당한 채 혹독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모든 고통들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견디고 있었다. 선비는 여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날마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의견과 무관하게 자신의 생이 결정 되는걸 참을 수 없었던 선비는 어느 날 홀연히 글 한편을 남기고 출가를 하고 말았다.
선비가 출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은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생의 모든 것이 오직 그와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없는 세상에선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여 크나큰 상실감으로 수차례 죽음을 생각했으나 죽음으로 불효를 저지르느니 출가해서 살아생전에 업이나 씻자고 입산한 것이 1년 전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지워진 가장 무거운 짐이며, 마지막 시험이자 시련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높고도 깊은 고독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또 사랑이 헌신하고 희생해서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이 성숙되고 홀로 세상이 되기 위한 크고 가혹한 요구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감당하기엔 아직 정신이 어린 청춘이었으므로 불법도 상실감에서 오는 아픔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입산은 했으나 삶은 허공과 같아 뜻밖의 연기로 마음은 금세 어두워졌고, 애써 얻은 위안도 순간에 사라져 삶을 홀로 감당한다는 것 자체가 나날이 두려워졌다. 하여 불가에서 금기시하는 집착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내지 못하고 급기야는 저승에서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리라고 그만 음독을 하게 된 것이다.
큰 스님은 우선 요사채 옆 보살의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곳에서 치료를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선 깨어나게 해야 할 테니 보살님이 잘 보살펴주시죠.”
“그래야지요. 어쩌다 이지경이 됐누? 쯧쯧.”
선비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보살은 약초를 짓이겨 상처에 덧대주고 약을 달여 먹이며 병구완에 최선을 다했다. 선비는 열심히 약초를 구했으나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안타까운 마음에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드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스님! 어제 저녁에 의식이 돌아왔어요.”
열흘 만에 보살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선비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보살님, 참 수고하셨습니다.”
“다 부처님 뜻이지요. 저 건너 망월사에 기거했다고 하는데 아직은 보내기가 이른 것 같아요.”
“뭐 그리 급할 게 있습니까. 몸이 충분히 회복되면 그 때 의논해도 될 듯합니다.”
선비는 큰 스님과 보살과의 대화를 통해 여인의 동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인은 의식을 회복한 후 보살로부터 그간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자기를 살린 사람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과 감동과 행복이 한꺼번에 몰려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속세에서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어쩌자고 출가한 후에, 그것도 서로를 지척에 두고 만나게 되었는지 실로 운명이 야속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야속함이란 자신의 소유욕 때문이지 사랑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맞지 않은 말이었다. 상대가 어디에 있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랑은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 소통하는 것이니 그리고 소통은 자연 소유욕을 갖게 마련이니, 이것이 중생이 평생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여인이 차츰 기력을 회복하는 동안 선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다시 만났다고 해도 사랑을 실현한다는 것은 출가하기 이전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이며, 여인을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만 출가 후에도 필연처럼 만나게 된 깊은 인연의 의미를 재차 되새겨 볼 따름이었다. 여인이 회복되기까지 스무날이 더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요사채 쪽의 동정만 살피며 애를 태우던 선비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뒤척이고 있을 때 요사채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희미한 달밤이어서 겨우 움직임만 포착될 정도로 사방이 어슴푸레했는데, 그 속에서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선비는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동정을 살폈는데, 놀랍게도 인기척의 실체는 여인이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닌데 저리 밤중에 떠나는 것은 더 이상 지체하기 민망해서일거라고 선비는 여기게 되었다. 순간 그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했다. 사랑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뭔가 사연이라도 들어야 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은 분명 어떤 뜻이 있을 텐데, 그냥 헤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여 그는 급히 멀어져가는 여인의 뒤를 따랐다.
“아가씨!…….”
“저, 아가씨!…….”
아무리 불러도 여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생각보다 여인의 걸음은 무척 빨랐다. 능선 중간쯤에서 여인은 어느 한 동굴로 들어갔는데 선비도 여인을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가느라 온 몸이 가시에 찔려 엉망이 되었다. 동굴로 들어간 여인은 선비를 보자 깜짝 놀라더니 와락 달려들어 어깨를 들먹이며 한없이 흐느꼈다. 선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함에 전신이 녹아드는 듯 했다. 그들은 그 간의 회포를 풀며 여한 없도록 사랑을 나누었다. 그날 밤 그들은 생의 모든 속박을 벗고 온전한 일체가 되어 꿈같은 하루 밤을 보냈다. 그 밤은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였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제3의 공간이 그곳에 있었고, 광활한 우주에 완벽히 밀착되는 충만 된 시간이었다. 오늘 밤 이 한 순간에 최대한 충실하리라 다짐하며 선비는 여인을 품에 안고 그 밤을 보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선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자신은 법당에 누워 있었다. 목탁과 염주는 머리맡에서 뒹굴고, 옷차림은 흐트러져 마치 바람에 채인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어제 밤 자신이 무엇엔가 홀렸었단 말인가? 그리고 동굴은 또 어찌된 것인가? 자신이 끌어안고 뜨겁게 뒹굴었던 것은 환영이었나? 한참을 넋을 잃고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관음보살이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굽어보고 있었다. 선비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허망함에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도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고, 그토록 사랑의 열정이라 믿었던 것도 한낱 집착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선비는 정식으로 불가에 입적하기로 결심을 했다.
선비가 몽유 속에서 여인의 환영을 따르던 그 밤, 여인은 선비가 허겁지겁 법당으로 오르는 것을 문틈으로 보았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마음은 예전처럼 뜨거운 것이 아니라 한없이 슬프고 허전했다. 저토록 잠을 못 이루고 한밤중에 법당으로 오르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 여겨져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메어졌다.
“나무관세음보살…….”
계절은 어느새 여름으로 치닫고 있었다.
여인이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떠나기로 한 하루 전 날 선비는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부처님이 함께 하실 겁니다. 더 높이 더 넓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쓱한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 돼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손을 모으고 있었다.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하건 그것은 이미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침묵 아닌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그 무거운 침묵 사이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죽음을 넘어선 지점에서 그들의 사랑은 또 다른 색깔로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 스스로는 애틋함과 허망함으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있었다. 다만 슬픔으로 표현하기엔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뿐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속세의 사랑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각자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할 터였다.
여인이 합장을 하고 장경사를 떠나는 날 선비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요사채 보살을 통해 망월사로 돌아가 쌓던 돌탑을 마저 쌓을 것이라는 말만 전해 들었다.
여인이 합장을 하고 장경사를 떠나는 날 멀어져가는 여인의 등에 대고 큰 스님이 엄숙한 목소리로 멀리 한마디를 건넸다.
“강을 건너면 배가 필요 없지요. 저 넓은 우주의 뜰을 다들 그리 혼자 걷는 겝니다. 허나 어디 혼자가 혼자이겠습니까?”
여인의 등 뒤로 오뉴월 햇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선비는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서서 여인에게 합장했던 자세 그대로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오래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그악스럽게 나무를 쪼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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